힘든 데이 근무를 마치고 버스를 타고 곧장 집으로 향했다. 버스에서 내려 터벅터벅 집으로 걸어가던 중 갑자기 드는 생각이 있었다.
‘나 내일 쉬는 날인데, 내가 내일 없어질 수도 있을 것 같아.’
정신을 번뜩 차리고 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서 버스정류장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정신건강의학과를 가기 위해서였다.
그전에도 계속 가야지, 가야지 생각만 하고 있었지 한 번 가본다는 것은 마음먹은 만큼 쉽지 않았다. 정신과라는 문턱을 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병원에서 일하다 보면 자가약으로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약을 처방받아 먹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특히나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라고들 하니 ‘약 먹을 수도 있지’라며 별로 특별하지 않게 생각했지만, 막상 내가 정신건강의학과를 가려고 하니 그게 왜 그렇게 어렵게 느껴지는 것인지 도통 알 수가 없다.
인터넷으로 할 수 있는 우울증이란 우울증 검사는 혼자 다 해보고 스스로를 이미 우울증이라고 생각하고 결론 내렸다. 그리고 유튜브에 끊임없이 검색해 보았다. 우울증, 우울증 상담, 정신과 상담, 정신과 상담 비용 등등 집에서 이불 뒤집어쓰고 찾아서 본 영상들만 보면 차라리 병원을 한 번 다녀오는 게 나를 정도로 끊임없이 검색해서 보고 울고 또 확신하고 울었다.
어쨌든 내일 당장 내가 사라지고 없어질 것만 같으니 다급했다.
살기 싫었지만, 죽고 싶지는 않았다.
평소 검색해서 사진첩에 캡처해 둔 여러 곳의 병원 중에 오가기 편한 직장 근처의 병원으로 향했다. 버스를 타고 가고 있는 길은 내가 일하는 병원으로 가는 같은 길이지만, 정신건강의학과를 간다고 생각하니 또 심장이 미친 듯이 쿵쾅거리며, 불안하고, 식은땀이 비 오듯 주룩주룩했다. 그래도 이왕 크게 맘먹고 가는 것이니 오늘은 기필코 꼭 상담을 받고 오겠다고 스스로 다짐하며, 의사 선생님을 만난다면 나의 증상들에 대해 어떻게 설명할지 생각해야 했다.
‘지난한 달 동안 계속 무기력하고 우울해서 별일 아닌데 계속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나와요. 며칠 동안 잠을 제대로 잔 적이 없어요. 많이 자도 2시간을 못 자고 식욕도 없어서 체중도 엄청나게 줄었어요. 일할 때 집중력도 많이 떨어져서 일상생활에 지장이 커요.라고 말하면 되겠지? 빠진 건 없겠지? 다시 연습해 볼까? ’ 그동안 있었던 일을 다 설명하려고 하니 버겁게 느껴져 또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이렇게 있었던 일을 정리해보니 이상하게 속이 메슥거렸다. 그러는 사이에 내려야 할 버스정류장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려 사진 속의 1이라는 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혹시 지금 가면 진료를 볼 수 있을까요?”
“오신 적 있으세요?”
“아니요...”
“신분증 들고 방문해주세요.”
“네...”
신분증은 항상 들고 다니니 나는 이제 병원만 가면 된다.
‘나는 마음이 아프니까 마음을 치료하러 가는 거야 나쁜 일을 하러 가는 게 아니잖아. 겁먹지 말자 제발.... ’
이렇게 마음먹기가 무색하게 병원 앞에 도착하고 나는 절망했다. 병원 바로 앞은 횡단보도와 차도가 있었고, 사람들과 차들이 꽤 왔다 갔다 하는 거리였다. 무엇보다 2층짜리 건물에는 정신건강의학과 하나밖에 없었다.
‘이 건물에 들어간다면 나를 정신병 있는 사람으로 볼 게 뻔해. 이 건물에 있는 거라곤 이 정신건강의학과 하나밖에 없잖아.’
혹시나 내가 정신건강의학과 앞을 서성이는 것을 누가 보기라도 했을까 봐 두리번거리며 도망치듯 집으로 가는 버스정류장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잘 못 한 게 하나도 없지만, 괜히 누가 보면 큰 잘못을 저지른 사람 같았다. 한 건물에 정신건강의학과밖에 없는 그곳을 다니게 된다면, 안 그래도 직장과 가까운데 나와 같이 병원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내가 이 건물로 들어가고 나오는 것을 보게 될까 봐 두려웠다. 굳이 병원 사람들이 아니라고 해도 다른 누군가가 볼까 봐 무서웠다.
정신을 차려보니 집으로 가는 버스정류장에 앉아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아니야 어떻게 결심한 일인데 오늘은 꼭 진료를 봐야 해! 다른 곳도 찾아봤잖아. 그곳으로 가보자. 이제 병원 밑에 가서 전화해보는 거야.’
그렇게 또 멀지 않은 2라는 병원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으니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딸! 아직 안 마쳤는가? 아직 집에 안 왔네~?”
정말이지 엄마의 타이밍은 죽여준다. 혹시나 어디서 나를 몰래 보고 있나 싶어 주위를 한 번 둘러보았다. 예상은 했지만, 엄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나 필요한 것들 좀 사고 집 갈게!” 황급히 전화를 끝내고 2라는 병원 앞에 도착했다.
내 마음에 쏙 들었다. 처음 찾아봤을 때, 병원 이름이 뭔가 모르게 따뜻하게 느껴지더니 이 건물에는 피부과도 있고, 한의원도 있었다. ‘이 병원에 다니게 된다면 내가 피부과에 가는지 한의원에 가는지 정신건강의학과를 가는지 어떻게 알겠어?’ 바로 병원으로 전화를 걸었다.
“지금 가면 진료를 볼 수 있을까요?”
“오신 적 있으세요?”
“아니요...”
“바로 오실 수 있으신가요?”
“네! 병원 바로 밑에 있어요.”
“그럼 신분증 들고 바로 방문해 주세요!”
집을 왔다 갔다 하고 다른 병원을 왔다 갔다 하는 사이에 시간이 많이 흘러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