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절로 숙여지는 고개. 다 나 때문이라는 죄책감 때문이었다.
일할 때만큼은 그날 있었던 사고에 대한 생각이 나지 않았지만 일하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죄책감에 빠져 살았다.
‘내가 바로 심폐소생술을 안 해서 그런 거야’, ‘내가 심폐소생술을 바로 했더라면 할머니는 살았을 텐데’, ‘다 나 때문이야.’
이런 생각들은 나를 바닥으로 끄집어 당겼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더 깊이 빠지게 되는 것이 마치 개미지옥 같았다.
이렇게 얼마나 생각했을까? 언제부턴가 “삐—” 소리와 풀 벌레 같은 소리가 귓가에 맴돌기 시작했다. 풀 벌레 같은 소리는 자려고 누우면 가끔 들렸지만, “삐 “하는 소리는 계속 가끔 들려 나를 힘들게 만들었다. 특히나 죽고 싶다고 생각을 하거나 죄책감에 빠져있을 때, 마치 그 생각을 그만두라는 것 마냥 소리가 들렸다.
집 밖에서 나는 소리인가 싶어 옆에 있던 동생에게 몇 번이고 물었다. 분명 나에게만 나는 소리였다. 온 신경이 쭈뼛쭈뼛 곤두 서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귀를 후벼 파 보기도 하고 침을 있는 힘껏 꼴깍 삼켜 보았지만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들렸다 안 들렸다 했다. 또 언제 들렸다가 멈출지 몰라 나를 두렵게 만들었다.
머리에 먹구름이 낀 것 같은 느낌과 기분이 도저히 ‘생각’이라고는 할 수 없게끔 했다. 분명 내 몸으로는 익숙한 일을 하고 있지만, 머리로는 이다음은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때도 있었고,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조차 모를 때도 있었다. 분명 내가 해야 하는 일이 있고, 부탁받은 일도 있었지만, 의욕이 없어 일은 일대로 하기 싫었고 생각만큼 머리도 몸도 따라주지 못했다. 마치 일 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규 간호사처럼 버벅거리며 일을 하고 있었다.
까마귀 고기라도 삶아 먹은 듯이 뒤돌아서면 까먹는 것도 모자라, 뒤돌아서기 전에 까먹어 버리곤 했다. 우울은 나를 잠시라도 집중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마음대로 되지 않아 울었고, 별일 아닌 것에 또 눈물이 터지곤 했다.
일을 잠시 쉬어야겠다고 생각을 하루에 수백 번도 더 했다. 내가 하는 모든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는 환자의 생명과 직결되는 일이었기에 이런 정신과 집중력으로는 도저히 일할 수 없겠다고 판단되어 수간호사 선생님께 면담을 신청해 볼까도 한참을 고민했다. 하지만 우울함이 오기 전 나는 학교에 다니며 아르바이트를 할 때 아르바이트 자리에서 잘릴 때까지 하는 성격이었다. 공부에 지장이 되어도 아르바이트를 그만둬야 한다는 아쉬운 소리 한번 못하는 바보 같은 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