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 인가 나는 출퇴근을 제외하고는 밖에 나가는 횟수가 현저히 줄었다.
의욕이 없어지니 모든 것이 귀찮아져서 친구들을 만나면서 스트레스를 풀던 내가 사람도 만나려 하지 않았다. 쉬는 날은 물론이고 퇴근하고 친구들을 만나 힘들고 지친 하루를 커피 한잔이나 맥주 한 잔에 털어 버리며 수다를 떨며 마무리했지만, 쉬는 날은 무조건 집에 붙어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워있었고, 퇴근하면 내 발걸음은 곧장 집으로 향했다. 사실 집에 가기 싫었지만 갈 곳은 집밖에 없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을 보냈을까? 딸의 마음은 엄마가 제일 잘 안다더니 그때쯤 엄마가 내게 물었다.
“은정아 요즘 고민이 있나?”
“아니?” 엄마가 다른 질문을 하기도 전에 잠시도 쉴 틈을 주지 않고 대답했다. 큰일 났다. 엄마가 눈치를 챘다. 쿵쾅쿵쾅 심장 뛰는 소리가 귓가에 들리고, 손에서 식은땀이 났다. 마치 초등학교 때 엄마 몰래 돼지 저금통을 털어 문구점에서 불량식품을 사 먹고 걸린 기분이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가족에게 만큼은 비밀로 하고 싶은 일이었지만 지난날의 나를 떠올려보니 엄마가 고민 있냐고 물어 볼 만했다.
집에서는 든든한 큰딸로, 멋진 언니로 자리 잡고 있었고 끝까지 그 자리를 지키고 싶은 마음에 집에서 만이라도 밝게 있어 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잠 못 자고 먹지도 않고 누워서 지낸 지 얼마나 되었을까? 나도 모르는 사이에 야위어가며 체중은 점점 줄어서 2주 만에 6kg이 줄었다. 우울해지기 전 친구들과 함께 맛집과 새로 생긴 카페를 찾아다니는 재미로 살던 나로서는 살이 빠질 수밖에 없었다. 운동도 하지 않았는데 강제 다이어트가 되었다. 그냥 입맛이 없었다.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았고, 음식을 보는 것과 냄새를 맡는 것조차 싫었다. 그 때문인지 누워있거나 앉아있다가 일어날 때면 어질어질해서 휘청거리며 쓰러질 것만 같았다.
출근 안 하고 쉬는 날 엄마의 불같은 성화에 못 이겨 숟가락을 들 때와 출근해서 어쩔 수 없이 먹는 한 끼는 먹을 수밖에 없었다. 그마저도 하루에 한 끼었고 온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은 날은 샐 수 없었다. 같이 일하는 선생님들에게는 나의 바뀐 모습을 보여 주기 싫었다. 괜히 걱정거리를 만들고 싶지 않아서 처음엔 악착같이 밥 한 공기를 다 비웠다. 밥만 먹는 한이 있어도 밥 한 공기는 다 먹었다. 맨밥만 먹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평소 밥 한 공기는 그냥 비우던 애가 반도 안 되는 양을 못 먹으니 선생님들은 어디 아프냐고 물으셨다. 그때마다 친구와 맛있는 걸 먹으러 갈 거라며 아무렇지 않게 말하고 그 상황을 넘기곤 했다.
같이 맛집을 찾아다니고 카페를 가던 친구들이 약속을 잡을 때마다 나는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거절했다. 먹을 힘도 없고 먹고 싶지 않았다. 그뿐이었다. 먹는 게 싫었지 친구들이 싫은 것이 아니었다.
친구들아, 나는 너희들이 싫은 게 아니었어.
뛰어내리고 싶은 날이 있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눈 딱 감고 뛰어내리고 싶은 그런 순간이 내게 불쑥불쑥 찾아왔다. 뛰어내리면 다 해결될 것만 같고 이제는 모든 것을 그만두고 싶다고 스스로 느껴지는 순간순간이 제일 무서웠다.
우울함이 나를 벼랑 끝까지 몰고 갔다. 나는 끌려가기 싫어도 등 떠밀려 벼랑 끝까지 몰렸다. 높은 건물을 보고 있자면 저기서 떨어지면 한 번에 끝날 수 있을까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등골이 서늘한 생각이다.
지금 돌아갈 수 있는 건지 다시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인지 끝은 보이지 않고 길고 긴 터널을 혼자 걸어가는 느낌이었다. 빛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긴 터널은 너무 어둡고 쓸쓸했다. 앞으로 걸어 나가며 헤쳐나가야 하는데 나는 계속 멈춰서 자꾸만 왔던 길을 곱씹어 보고 오로지 나에게 밝은 빛은 없나, 누군가 비춰줬으면 하는 빛만 찾으려 애썼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반복되니 뛰어내리고 싶을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