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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하리 Aug 18. 2021

10. 내가 나에게 하는 미술치료

   우울에서 조금 벗어난 나를 위해 동진이는 ‘혹시 1달 지난 생일 선물 받아 봤냐’며 택배를 보냈다. 택배는 오일 파스텔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모든 것이 들어 있었다. 약을 먹고 괜찮아진 내가 처음으로 하고 싶은 것이 생겼는데 그것은 오일 파스텔로 그림 그리는 것이었다. 흘러가는 말로 했던 말인데  세심한 동진이는 잊어버리지 않고 기억을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파스텔 상자를 열어보는데 입이 ‘쩍’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120가지의 형형색색의 파스텔들이 가지런히 누워서 나를 반겨주었다. 짙은 삶보다는 밝게 살아가고 싶은 내 바램 때문일까? 노랑, 주황, 하늘색 같은 밝은색에 먼저 눈이 갔다. 얼른 하얀 도화지를 꺼내서 밝은 삶을 그려내고 싶었다. 그려 보고는 싶었지만, 막상 그리려고 하니, 때 타지 않은 흰 도화지를 채워야 한다고 생각을 하니 정말 막막했다. 우울증이 많이 나아진 지금이야 ‘못 채우면 어때? 일단 시작해 보는 거지’라며 그리지만, 이 전엔 이렇게 큰 도화지(실제 사이즈는 그렇게 크지도 않다.)를 어떻게 채우지? 라는 생각에 한동안 골머리를 앓았다.


  제일 먼저 그리려고 생각해낸 것은, 바다가 보고 싶어서 바다를 떠올렸다. 푸른빛 바다가 떠올랐다. 나는 모래사장이 있는 바다를 그리고 싶었다. 그리고 뜨거운 모래사장을 맨발로 거닐 수 있는 그런 바다를 가는 것도 좋아한다. 그리고 싶은 바다를 떠올렸으니, 푸른빛 색깔들을 더듬더듬 하나씩 꺼내 본다. 색깔을 선택하는 내 모습이 마치 ‘어디 정신건강의학과를 갈지 고민하던 지난날의 나’처럼 고르고 있어서 괜히 웃음이 났다. 지금이야 웃음이 나오지만, 그때 나는 그 누구보다 진지했기에 바다색을 고르는 것 또한 중요한 일이었다.


  꺼내 본 색깔을 비교해 보며 연습장에 괜히 한 번씩 색칠해 보았다. 색을 보고 맘에 들어서 흰 도화지에 그어 봤지만 그어 본 색은 달랐다. 같은 색인데 왜 흰 도화지에 그으면 달라 보이는지 모르겠다. 약물치료로 겉으로는 웃고 있어도 아직 마음은 우울한 나와 같아 보인다.

뭐든 처음과 끝이 똑같을 수 없다. 그래서 연한색 중간색 진한색 모두 선택해서 한 그림에 다 담았다. 연한색에서 진한색까지 색을 고르다 보니 거의 6가지 색 정도 골랐다. 각각이 어울려 내가 생각하는 바다가 아니어도 괜찮으니, 맑은 물을 하고 있는 바다가 되어 주길.


  그림을 그리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시간은 훌쩍 가 있다. 정말 신기하게 1시간은 훌쩍 가 있다. 그만큼 울지도 않고 한 가지 일에 집중하고 있다는 좋은 뜻인 것 같아 스스로 뿌듯했다. 그리다 보면 어느 순간 흰 도화지가 선명한 바다를 품고 있다. 손이 빠른 편인 덕분에 하얗던 종이가 점점 푸른빛을 품기까지 결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어느 정도 색을 입혔을 때 나는 깊고 긴 한숨을 쉰다. 깊은 바닷속을 헤매다 물 위로 올라 온 해녀처럼 숨을 내쉰다. 어쩌면 그래서 바다를 그리는 것을 좋아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림의 결과가 항상 좋을 수는 없다. 스스로 관대하지 못해서 만족하지 못하는 날은 열에 아홉이었다. 그래서 항상 자책하는 시간이 많다. 자책하려고 그림을 그리는 것은 아니지만 의도치 않게 그런 일이 많았다. 하지만 못 그리면 어떤가? 못 그린 그림도 나름의 매력이 있다. 선을 너무 두껍게 쓴 경우, 생각했던 색이 아니었던 것, 이유는 여러 가지다.

내가 완벽하지 못한 이유도 여러 가지다. 눈이 조금 작다고 느끼는 것, 머리카락이 좀 꼬부랑거리고 많은 것, 사소한 것에 신경 쓰는 것, 이유는 여러 가지다. 완벽하지 못하는 이유는 많지만, 하루하루 만족하며 살 순 없다. 그마저도 나의 매력이다.

열에 아홉 날을 울며 보내도 하루 웃는 날을 보고 살아간다.

 

  다 그리고 나서 주위를 둘러보면 항상 엉망이다. 파스텔에 묻은 색을 지워 낸다고 쓴 나뒹굴고 있는 휴짓조각들, 번지는 효과를 쓰기 위해 쓴 찰필, 많이 써서 찢겨 있는 팔스텔을 감싸고 있던 종이들, 자기 자리를 잃어버리고 나와 있는 파스텔들. 마치 내 마음속의 정리되지 않은 나 같다. 정리되지 않은 물건들도 보기 싫고 정신없는 내 마음속도 싫어 얼른 정리한다. 더 이상 필요 없는 것은 쓰레기통으로 버린다. 내 마음속에도 머릿속에도 필요하지 않다고 판단되는 것은 버릴 수 있는 쓰레기통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마음 아픈 일이 생긴다면 바로바로 버릴 수 있는 그런 쓰레기통. 나는 스스로 쓰레기통 역할을 하고 있었다. 마음 아픈 일도, 머리 아픈 일도 모두 나에게 버렸다. 또 힘든 건 나 자신이었다. 그러니 나 자신이 아닌 진짜 쓰레기통이 필요하다는 것.

 

  그림을 다 그리고 나면 내 손은 항상 짙은 색이다. 색깔을 알 수 없는 여러 가지 색들이 섞여 알 수 없는 색을 만들었다. 항우울제를 먹다가 이따금 조울증 증세를 나타내는 나를 표현하고 있는 것 같다. 최근엔 우울함이 나를 지배하고 있지만, 하늘색 같은 밝은 나도 있고, 군청색 같은 조금은 칙칙한 나도 있다. 그렇게 하나하나 모여 검은색에 가까운 색을 만들고 있었다. 어쩌면 이 검은색에 가까운 색이 나를 표현하고 있는 것 같아 얼른 화장실로 달려간다. 황급히 수도꼭지를 틀어 뽀얀 비누를 꺼내 들어, 내 어둠을 가리고 싶은 만큼 하얀 거품을 낸다. 뽀득뽀득 소리가 날 정도로 깨끗이 씻고 물기를 닦아 낸다. 그리고 다시 내 손을 보고 있자면 아직 채 지워지지 않은 색깔들이 있다. 그 색이 밝은색이면 좋으련만 항상 밝은색은 먼저 지워진다. 남은 색은 온통 짙은 색이다.


행복도 얕고 잔잔하게 오래가는 행복이었으면 좋겠다.

더 이상 어둠은 찾아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약을 먹고 나서 어느 정도 괜찮아졌다고 느낄 무렵, 친구들이 보고 싶어져서 카카오톡을 켰다. 누구에게 먼저 연락을 해야 할지 몰랐다. 우선 내가 답장을 안 보내도 한 번 더 연락이 왔던 친구들을 보았다. 그리곤 답장이 늦어서 미안하다고 진심 어린 사과를 하고,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친구들은 나보다 더 기뻐하고 반겨주었다. 얼른 만나서 맛있는 것도 먹고 수다를 떨고 싶었다. 이토록 사람을 찾는 나였는데, 어떻게 한순간에 단절했을까 싶다. 우울증이라는 친구는 참 알다가도 모를 신기하고 이상한 친구다.


  연락하지 않았던 친구들도 있었다. 찾지 않는다면, 돌아봐 줄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그 친구들은 과감히 삭제했다. 우울증 덕분에 사람도 거르다니, 이렇게 좋을 수가 없다.


  이따금 우울함이 몰려오든, 주체할 수 없을 만큼의 붕 뜨는 기분이 몰려올 때쯤에는 펜과 종이를 꺼냈다. 그리고 나에게 쓰는 짧은 편지들을 써 내려 갔다.

‘은정아 무엇이 너를 그렇게 힘들게 하니?, 내가 때려줄까?, 우리 오늘 하루를 살았으니까 내일 하루를 더 살아보자!, 오늘은 한 번도 울지 않았어 정말 멋진데?, 너 오늘 주사를 한 번도 실패하지 않았어, 진짜 짱이다~, 나는 감정이 없는 사람 같아, 괜찮아 슬픈 것도 감정이잖아~, 오늘 기분 진짜 죽여준다. 내일은 뭘 해볼까?, 차라리 감정이 없는 사람이었다면 어땠을까.’

읽다 보면 두 명이 썼나 싶지만, 평소에는 다른 사람들에게 칭찬하기 위해 입 밖으로 꺼냈던 말 들을 나에게 해 주었다. 주어만 바꿨는데 색다른 느낌이다. 단 한 번도 나에게 물어 봐주고 힘을 준 적이 없는 것 같다는 생각에, 크리스마스에 다른 친구들은 다 선물을 받았지만 혼자 선물을 못 받은 아이처럼 스스로가 너무 불쌍했다.

다들 잠시 멈춰서 스스로에게 괜찮은지 물어봐 주었으면.


  생각하는 것에서 끝내지 않고 종이에 직접 써서 기록을 남기는 것은 도움이 된다. 꼭 칭찬이 아니더라도 누구와 무엇을 먹었다든지, 어딜 갔다든지, 그날의 기분은 어땠는지 자신에게 조금 더 솔직하게 다가갈 수 있었다. 우울증 덕분에 얻는 것도 하나씩 생겨나서 이가 뽑혔던 자리에 새 이가 빼꼼 나온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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