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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하리 Sep 04. 2021

14. 나는 간호사이자 조울증 환자입니다.

사람 사는 것은 다 똑같다고들 하더니, 내가 사는 삶은 남들과는 달랐다. 날마다 울고 또 웃으면서 보냈다. 하루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온종일 누워서 자기만 했고, 하루는 24시간이 부족한 사람 마냥 바쁘게 다니면서 내가 살고 있는 삶을 너무나 만족하고, 친구들을 만나고, 돈을 쓰고 다니기를 얼마나 반복했다. 그러는 동안 시간은 지나고, 약의 종류가 늘었다가 줄었다가, 용량이 늘었다가 줄었다가를 반복했다.

서서히 남들과 같은 보통의 삶을 살아가려고 스스로 부단히 노력했다. 그리고 더 이상 울지 않았다. 슬플 때 눈물이 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그 전의 나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울었더라면 지금은 감정이 없는 채 살아가고 있다.

감정이 없다는 것은 참 슬픈 일이다. 기쁠 때 웃지 못하고, 슬플 때 울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슬픈 일인가. 그래도 다행인 건 기쁜 일은 어느 정도 감정 표현이 가능하다. 맛있는 것을 먹고 “와 진짜 맛있는데?”라고 표현할 정도면 큰 노력과 발전이 있다고 본다.

슬픔에 대한 충격은 너무나도 컸는지 슬픔을 표현하는 것은 스스로가 거부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평생을 살아가면서 슬픔을 표현하지 않고 살아갈 수는 없는 법, 이 또한 노력하고 있다.


살아가면서 해야 할 숙제가 너무나도 많다. 학교에 다닐 때는 학교에서 내주는 숙제를 잘해 가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로 나왔을 때는 해야 할 숙제가 너무나도 많다. 하지만 자발적으로 숙제를 찾아서 해낼 뿐 그 누구도 나에게 숙제를 내주지 않았다.

내게 제일 어려운 숙제는 “행복하기”

물론 조울증이 많이 나아진 지금은 지난날 보다 행복하다고 판단된다. 하지만 “앞으로도 행복하기”라는 숙제는 지켜낼 수 있을지 사실 잘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물 흘러가듯이 살아가기로 했다. 우울증과 조증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허우적거리는 게 아닌, 물 흘러가듯이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것을 택했다. 우울증일 때도 나고, 조증일 때도 나는 나, 이기 때문이다. 우울증일 때는 힘껏 우울해할 것이며, 조증일 때도 힘껏 신나 할 것이다. 매 순간순간을 최선을 다해 살아낼 거다.


트라우마로 인해 우울증, 조울증이 생긴 것처럼 살다 보면 예상치 못한 일들이 일어난다. 글을 쓰고 있는 나는 이번 기회에 많은 것은 느끼게 되었고, 새로운 일들을 하게 되었다. 그중 하나를 고르자면 글을 쓰게 된 일. 예상하지 못한 일들은 또 다른 뜻밖의 기회가 생긴다고 나는 믿는다. 글 쓰는 일이 이렇게 재밌는 일인지 내가 조울증에 걸리지 않았더라면 평생 모르고 살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만 살고 싶다고 생각해도 좋다. 지금 당장 우울하다고 뭐든 포기하려고 하지 말자.  다른 기회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오늘 하루를 살았으니, 내일 하루를 더 살아갈 것이다.

너도, 나도, 우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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