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친할아버지 덕분에 간호사가 되었다. 당시 중학교 2학년 한참을 방황하고 있던 와중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나는 살면서 부모님이 그렇게 슬퍼하는 모습을 처음 봤다. 충격이라면 가장 큰 충격이었다. 크게만 느껴지던 부모님이 세상에서 제일 작은 사람이 된 것만 같았다.
밖에서 숨만 쉬어도 입김이 뿜어져 나오는 추운 겨울, 부모님은 집과 병원을 교대로 오갔다.
새벽 늦게까지 부모님 두 분 다 병원에 계신 날이 있었다. 어쩐지 그날따라 잠이 오지 않아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보며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있었다.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에 나는 황급히 자는 척을 했다. 늦게까지 자지 않고 있어 괜히 부모님의 심기를 건드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빠는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집 안으로 들어왔다. 들어오는 소리에 잠이라도 깬 듯이 눈을 비비며 이제 들어오는 거냐며, 할아버지는 좀 어떻냐고 물었던 것 같다. 할아버지는 돌아가셨다고 했다. 아빠는 방에서 이것저것 챙기시는 것 같았다. 그리곤 동생을 잘 챙기고 있으라며 다시 어둠 속으로 자신의 몸을 밀어넣었다.
아빠가 다녀간 자리는 겨울 새벽 공기 탓인지,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사실 때문인지 차가운 공기만 남았다. 그때 내 나이 15살, 동생은 12살이었다.
그 후로 10년이 더 지난 간호사가 된 지금 드는 생각은 ‘아빠는 병원에서 집까지 오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DNR (심폐소생술 거부에 동의하는 문서, Do Not Resuscitate) 동의서에 아빠가 서명했겠지 서명했다면 어떤 심정이었을까... ’
그 심정이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심정이다. 병원에서 일할 때 심폐소생술을 거부하는 것에 대한 동의서를 작성하는 보호자들을 종종 보곤 한다. 그들은 단번에 서명하는 사람들과 다른 가족들과 몇 날 며칠을 상의해 보고 결국 동의하는 사람들이 있다. 긴 글이 빽빽하게 나열되어 있고 제일 아래 칸에 서명만 하게 되면 환자의 심폐소생술을 거부하는 것에 동의하게 되는 것이다.
임종에 가까워져 오는 환자들은 이따금 호흡을 놓치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그 옆에 보호자의 채근 횟수도 늘어난다. 동의서에 서명했지만, 마지막은 최대한 늦추고 싶어 한다.
그 끝내 환자의 산소포화도 수치가 (정상:95~100%) 점점 떨어져 측정되지 않고, 부착해 있는 심전도의 선이 드라마에서 보듯 일직선으로 그이고, 알람이 미친 듯이 울리면 보호자들은 울부짖는다. 그런 상황이 이제는 눈에 보이니 그때 아빠의 심정은 어땠을지 생각만 해도 눈시울이 붉어지고 가슴 한 곳이 아려온다.
각자 안녕을 고하고 나면 장례식장과 연계된 곳에서 고인을 모시러 온다. 그렇게 고인은 고통스러웠던 하루하루를 보내던 병실에서 떠나게 된다.
나는 정신을 차려보니 검은색 옷을 입고 매 끼니때 마다 절을 했다. 아무 생각 없이 절을 하고 슬픔으로 친척들을 맞이했다. 마지막 3일째가 되던 아침, 작은 생각 하나가 내 머리를 스쳐 지나갔고, 그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만약 병원에서 일하는 사람이었다면 할아버지를 조금이라도 더 오래 볼 수 있지 않았을까? 병원에서 일하는 사람은 누가 있지? 환자 가까이에는 항상 간호사가 있는 것 같던데, 그럼 나도 간호사를 해야겠다. 남은 가족들을 위해서.’ 그런 생각 하나로 약 10년 후 나는 간호사가 되었다.
강정수 할아버지! 할아버지 저 은정이에요. 어렸을 때 할아버지 이름이 뭐냐고 물으면
“강, 정자! 수자! 입니다!”라고 외치던 것이 어젠지 가물가물하네요. 할아버지 그곳에서는 편하게 걸어 다니시는지요? 아직도 할머니 댁에 갈 때면 저 멀리서 할아버지가 웃으면서 절룩거리는 다리로 천천히 저한테 걸어오실 것만 같아요. 그만큼 할아버지가 그립다는 거겠죠?
할아버지 저는 할아버지 덕분에 간호사가 되었어요! 간호사 국가고시에 합격한 날, 면접 본 병원에 합격한 날, 할아버지가 제일 먼저 생각났어요. 간호사가 된 제 모습을 보시면 할아버지가 참 좋아하실 텐데, 너무 아쉬워요.
저는 할아버지랑 나눠 먹던 빠다코코넛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인 줄만 알았어요. 지금 먹으면 똑같은 맛이 안 날 것 같아서 못 먹겠어요. 한 번은 혼자 먹어본 적이 있었는데 왜 때문인지 목이 너무 막히는 것 있죠?
할아버지! 우리가 다시 만나게 된다면 같이 손잡고 슈퍼 가서 꼭 빠다코코넛 사 먹어요. 저 돈 많이 벌었어요. 다시 만날 때는 제가 살게요. 제가 먹은 맛있는 것들도 하나씩 같이 먹어봐요! 할아버지 너무너무 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