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겨울 아침 6시 반이면 아직 해도 안 떴을 시간, 집을 나오면서 엄마한테 잘 다녀오겠다고 말하고 제일 처음 내뱉은 말, 아직 잠에서 덜 깼을 때 내가 뱉은 말이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3교대 중, 아침 출근이었다. 아침 출근은 다 힘들지만,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것이 제일 힘들다. 눈을 뜨는 둥 마는 둥 고양이 세수를 하고, 칫솔질을 한다. 스킨, 로션을 바르고 생기가 돌아 보이기 위해 까맣고, 하얗고, 빨간색을 찾아 얼굴에 덧바른다. 온종일 돌아다닐 내 다리를 책임져줄 압박 스타킹을 신고, 밖에 바람 소리가 장난이 아닌 거로 봐서 대충 따뜻해 보이는 옷들을 집어 최대한 두껍게 입는다. 그리고 엄마가 미리 깎아둔 사과를 한 입 베어 물고, 해가 뜰 기미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나는 시내버스를 타고 출퇴근을 한다. 집과 버스정류장의 거리는 걸어서 15분 정도 소요된다. 시내버스를 타러 가는 길에는 언제든 환하게 불이 켜져 있는 편의점, 희미한 불빛을 내는 빵집, 각자의 회사 통근 버스를 타기 위해 하나둘 모이는 사람들, 빨간 불이 그리 길지 않은 신호등, 그러다 작은 시장을 하나 지나친다. 그곳엔 몇 시부터 나와서 두부를 팔고 있는지 모를 할머니와 김이 모락모락 나는 두부를 사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삼삼오오 모여드는 사람들이 줄을 서고 있다. 고소한 두부 냄새가 코를 찌를 때쯤엔 생선 장수 아저씨가 그 추운 겨울에 아저씨 자신의 상체만 한 얼음을 깨고 있다.
정말 평소와 다를 것 하나 없는 출근길이었다.
코너만 돌면 버스 정류장에 도착할 때쯤, ‘펑!’ 하는 소리는 잠이 덜 깬 나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이게 무슨 소리야?’ 소리가 난 곳을 황급히 보니 버스 정류장 앞이었다. 택시가 한 대가 비상 깜빡이를 켜고 서 있었고, 그 뒤엔 형태를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다.
내 시력이 나쁜 탓도 있지만, 아직도 해는 뜨지 않았다. 나는 귀신에 홀린 것 마냥 끊임없이 ‘저게 뭐지? 쓰레기봉툰가? 설마 사람이야? 아닌데? 쓰레기봉투 같은데?’라고 끊임없이 생각하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처음엔 정말 쓰레기봉투 같았다. 하지만 내 심장이 엄청난 속도로 요동치고 있을 때는 이미 사람이 누워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였다.
쓰레기봉투인 줄 알았던 알 수 없는 물체는 백발의 왜소한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도로에 엎드려 누워있었다. ‘할머니가 여기 왜 누워 있는 거야? 저 택시가 할머니를 친 거야?’ 나는 할머니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할머니의 가슴팍은 오르락내리락하지 않았다. 코에 손을 가까이 대보았다. 숨을 쉬지 않았다. 황급히 경동맥에 손을 짚어보았다. 맥박은 뛰지 않았다.
멈춰있는 택시로 갔다. 다급하게 택시 창문을 두드렸다. 창문은 한 박자 쉬고 내려갔다. 안에 계시던 택시기사님도 많이 놀란듯해 보였다. 기사님은 큰 소리로 어딘가에 전화하고 계셨다. 119에 전화를 하는 것 같진 않았다. “119에 신고는 하셨나요?” 전화에 정신이 팔린 건지 내 물음에 대답해 주지 않았다. “제가 신고를 할게요!” 나는 119에 신고를 했다. “여기 할머니가 보행자 TA(교통사고)를 당했어요! 숨을 안 쉬어요! 심폐소생술을 해야 할 것 같아요!” 또 무슨 말을 어떻게 한지 모르겠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위치가 어디냐기에 어딘지 말하고 싶었지만, 매일 오가던 위치를 나는 설명하지 못했다. 그저 빨리 와달라고만 울부짖었다. 정확한 건 신고하는 동안 내 심장이 너무 빨리 뛰어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신고하고 주위를 둘러보았을 때 차들만 쌩쌩 달리고 있다. 마치 자기들과는 상관없는 일처럼 다들 매정하게 출근하는 것 같았다. 나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은 없어 보였다. 아니 없었다.
119에 신고를 하고 고민할 겨를도 없이 나는 할머니에게 다가갔다. 엎드려있는 할머니를 바로 눕히려니 언제 택시에서 내리셨는지 택시기사님이 소리쳤다. “손대지 마세요!!!” 깜짝 놀랐다. 나는 원래가 잘 놀랜다. 누군가가 내 이름을 불러도 깜짝깜짝 놀래는데 그렇게 큰 소리로 말을 하니 깜짝 놀랄 수밖에. 그리고 사실은 그 말에 움찔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내 행동은 할머니를 바로 눕히고는 있었지만, 머리로는 ‘만약 내가 손을 댔다가 잘 못 되면 어떡해? 내가 책임질 수 있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웃긴 것은 “저 간호사예요!!”라고 이미 말하고 있었다. 내가 어쩌자고 그런 말을 뱉었을까? 하지만 똑같은 상황으로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나는 똑같은 말을 하고 행동했을 것이다.
추운 겨울 차가 쌩쌩 달리는 차가운 도로 갓길에 누워있는 할머니가 너무나도 불쌍했다. 단지 그 이유였다. 다들 그 할머니가 자기 가족이었어도 가만히 놔뒀을까? 순간 나도 모를 분노가 저 마음 깊숙한 곳에서부터 치밀어 올랐다. 그래서 내가 간호사니까 내가 하는 일에 관여하지 말라는 양 버릇없이 “저 간호사예요!!”라고 말한 것도 있었다. 딸보다 어려 보이는 것이 지가 간호사라고 소리 지르니 어이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택시기사님도 내가 잘못했다간 상황이 더 악화되지 않을까 걱정하셨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어쨌든 그 할머니를 살리고 싶은 것이 먼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