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소한 할머니지만 혼자 할머니를 똑바로 눕히려니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마침 택시에 타고 있던 내 또래의 남자 승객이 택시에서 내려와 주춤주춤 다가왔다. “제발 한 번만 도와주세요!! 제발요!!” 내 간절함이 통했을까? 택시기사님은 더 이상 아무 말 하지 않고 하던 통화를 하시고, 내 또래의 남자 승객은 나를 도와주었다. 그렇게 할머니를 똑바로 돌아 눕혔고, 나는 소리쳤다. “할머니! 할머니! 눈 좀 떠보세요!!!” 의식이 없는 할머니는 내가 가슴팍을 때리고 어깨를 흔들 때마다 축 늘어져 흔들거렸다. 의식과 호흡이 없고 경동맥의 맥이 짚어지지 않아 내 기준 심폐소생술을 하기에 충분한 판단 조건이었다.
뭘 더 생각하고 잣이고 시간을 더 끌 필요가 없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 열..............” 내 입은 숫자를 세고 있었고, 내 손바닥은 할머니의 가슴 중앙 흉골의 아래쪽에서 양손을 깍지를 끼고 열심히 가슴 압박을 했다. 가슴 압박을 하면서 입으로는 숫자를 세며 머리로는 분당 100~120회의 횟수가 되는지, 누른 가슴이 다시 원 상태로 팽창이 되는지, 5cm 이상의 깊이는 되는지 내 팔은 할머니의 흉골이 맞닿는 부위와 수직인지 끊임없이 의식하며 가슴 압박을 했다.
가슴 압박을 몇 회 안 했을 때, 할머니의 갈비뼈는 우두둑거리며 부서지는 소리와 느낌이 할머니의 갈비뼈에서 내 손바닥을 타고 온몸으로, 내 머리털까지 쭈뼛 설 정도로 전달되었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그렇게 가슴 압박을 30회 하고 나는 주저 없이 한 손으로는 할머니의 턱을 올리고, 다른 한 손은 할머니의 머리를 뒤로 젖혔다. 기도를 개방하기 위해서였다. 머리를 젖힌 손의 엄지와 검지는 할머니의 코를 막았다. 인공호흡을 2회 실시하는 동안 나의 인공호흡으로 인해 할머니의 가슴이 상승하는지 확인했다. 정확히 두 번 오르락 내르락 했다. 그 후 다시 가슴 압박을 시작했다.
내 힘이 서서히 부족하다는 것이 스스로 느껴졌다. 사람들이 몰려왔다. 다들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수군거리며 보고 있었다. 그중엔 내가 간호사라고 하더라는 아줌마도 있었다. 옆에 아까 도와주던 남자 승객에게 물었다. “심폐소생술 하실 수 있으세요?” “네!” 또 가슴 압박을 30회 하고 내가 인공호흡을 2회 했을 무렵 저 멀리서 119 구급대가 엄청난 소리를 내뿜으며 오는 소리가 들린다. 병원에 있을 때는 그 소리는 썩 달가운 소리는 아니었다. 왜냐하면 또 어떤 환자가 왔으려나 싶었던 소리가 그때는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구급대원이 도착했을 때 나는 가슴 압박을 하고 있었고, 마지막 30회에 나와 손을 바꿔주었다. 나는 자리를 확보해 주기 위해 빨리 일어났다. “택시에 치였고 의식, 호흡이 없어서 심폐소생술 2 cycle 하고 가슴 압박만 한 cycle 더 했어요!” 일어나자 그제야 긴장이 풀렸는지 다리에 힘이 풀려 온몸이 휘청하는 느낌이었다.
뒷 일은 구급대원이 알아서 잘하실 것이라 생각했고, 나는 빨리 버스를 타든 택시를 타야 했다. 출근길이었으니까.
“아가씨 왜 그냥 가요!!” “저 출근해야 해서요.” “지금 출근이 중요한 게 아니잖아!!” 심폐소생술을 하고 있을 때 간호사래요! 라고 말하던 아줌마가 소리쳤다. ‘그럼 뭐가 중요한 거지? 심폐소생술이 필요한 사람을 발견했고, 119에 신고를 했고, 심폐소생술을 했고, 구급대원이 와서 손을 바꿔주고 내 갈 길 가겠다는데 왜?’ 순간 짜증이 확 났고 대답을 하기 싫어 아줌마의 말을 무시하고, 오지도 않는 택시를 잡기 위해 인도에서 차도를 샅샅이 뒤졌다.
이미 내가 타야 하는 버스는 지나간 지 한참이었고 평소에는 그렇게나 잘 보이던 택시가 그날따라 한대도 보이지 않았다. 어째서 택시는 타려고 마음을 먹으면 보이지 않는 걸까? 그렇게 발을 동동 구르고 있으니 오토바이 한 대가 내 옆에 섰다. “출근하시나 봐요?” “네? 네...” “타세요. 이상한 사람 아니고요. 와이프 출근시켜주고 저도 출근길에 봤습니다. 타세요”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 바쁜 출근길에 날 데려다주겠다니 이런 은인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자기는 퀵을 하는 사람이라며 와이프가 쓴 듯한 헬멧을 나에게 씌어주셨다. 오토바이에 올라 타고나서 내가 살다 살다 오토바이를 타다니 라고 생각하는 순간 꽉 잡으라는 말과 함께 출발했다. 이른 아침부터 나에게 스펙타클한 일만 생기는 것 같았다. 진짜 너무 무서웠다. 무서운 놀이기구를 타는 사람처럼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 태워주신 분은 아마 괜히 태워줬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지금 생각하면 놀이공원에서 회전목마도 못 타는 내가 어지간히 급했구나 싶다. 병원까지 가는 길에 이 모든 것이 꿈처럼 느껴졌다. 내가 아직 잠에서 덜 깼나? 오토바이에서 내리면 내 볼을 꼬집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오토바이에서 내 볼을 꼬집을 수는 없었다. 너무 무서워 태워주시는 분의 허리춤에서 손을 떼지 못했으니까.
내가 일하는 병원에 도착하고 오토바이에서 내려 헬멧을 벗어 전달해 드리고 연신 고맙다며 허리 숙여 인사를 했다. 나는 무언가에 쫓기듯이 병원으로 들어가 엘리베이터를 누르고 1층으로 내려오기를 기다리며 내 볼을 꼬집고 손을 꼬집어봤다. 너무 아팠다. ‘꿈이 아니었어!’
일하는 내내 손에 일이 잡히지 않았다. 온통 길에 엎드려 있었던 할머니 생각뿐이었다. ‘할머니는 어떻게 됐을까? 대학병원에 갔을 거야. 살았겠지? 친구한테 수소문해볼까?’ 내 생각은 거기서 멈췄어야 했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온통 그 생각에 빠져 집에서도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병원에서는 어떻게 일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결국 늦은 밤이 되어서야 내 궁금증을 스스로 이겨내지 못하고 친구 수영이에게 연락을 했다. 할머니의 생사가 궁금했다. 그뿐이었다. 무엇보다 나는 할머니가 살아 계실 거라 믿었다. 나의 심폐소생술은 완벽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