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나팍 Aug 30. 2024

나의 바람은 그저 소박한 테라스 1평이었다

삼성 퇴사 후 유럽여행기 3

독일 뉘른베르크에 입국했다. 크리스마스 시즌이라 거리 곳곳이 한국과는 다른 유럽만의 매력을 뽐내 반짝였다. 낯선 거리를 감탄하며 걷기도 하고 눈을 뗄 수 없는 화려한 크리스마스 소품샵에 끌리듯 들어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구경하기도 했다. 잔잔하고 아름다운 선율로 느리게 돌아가는 회전목마 오르골처럼 내 시간은 천천히 흐르고 있었다. 꼭 해야만 하는 일도 없었고, 데드라인도 없었으며, 시간에 쫓길 일도 없었다. 그저 발길 닿는 대로 하나의 목적지를 향해 천천히 걸을 뿐이었다. 느린 걸음으로 거리의 풍경을 두리번두리번, 천천히 감상하며 평소와 다른 내 모습을 꺼내 놓았다. 종종걸음으로 뛰다시피 다니며, 빠르게 내도 언제나 산더미처럼 많아지는 일로 분주한 내 모습. 메일 확인과 메신저 응대, 전화받는 걸 동시다발로 처리하며 고군분투하는 모습의 나는 어디에도 없었다.


뉘른베르크는 동화 속 요정이 나올 것 같은 매력적인 도시였다. 관광객의 시선을 끌 만한 화려함은 없지만, 도시 전체가 중세의 유럽풍으로 가득한 평화롭고 아름다운 곳이었다. 한가로운 분위기 이면에는 세계 최대의 장난감 박람회 열리고, 400년 전통을 자랑하는 독일 최대 규모의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리는 내실 있는 도시이기도 했다.


유럽에서의 첫날밤, 방안에 차가운 공기가 몸을 휘감았다. 이전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종류의 차가움이었다. 히터가 틀어져 있었지만 한국의 온돌 시스템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실내에서 난방효과로 느낄 수 있는 따뜻한 온기가 없었다. 이불을 덮어 봐도 찬 공기가 틈새를 비집고 들어온다.


낯선 공기의 느낌이 내가 여행지에 와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준다. 어쩌면 내가 앞으로 부딪히게 될 세상이 이런 차가움의 연속일지도 모른다. 아늑함과는 거리가 먼 차디찬 냉정한 현실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이불속 아늑함을 바랐다면 나는 퇴사를 하면 안 됐다. 그러나 이불속에 갇혀 있는 것이, 미지의 광야에서 뺨을 때리듯 날카로운 찬바람을 맞는 것보다 더 괴로웠다. 이불 속이라고 마냥 따뜻하고 평화로운 것 아니었다. 오히려 어둠으로 가득했다. 지금 나는 차갑지만 이 바람을 온전히 맞을 준비가 되어있다. 두꺼운 외투로 단단히 무장하고 한 번도 걸어본 적 없는 거리로 나설 것이다.






뉘른베르크 거리로 나왔다. 내 발길은 도시의 랜드마크인 '뉘른베르크 성'으로 향했다. 세계적인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리는 뉘른베르크 중앙광장을 지나 조그만 골목길을 오르니 성이 나왔다. 시끌벅적한 광장과 다르게 성은 고즈넉하고 한산한 느낌이었다. 어쩐지 외롭고 쓸쓸한 느낌도 들었다. 계단을 오르다 좁고 길게 난 손바닥 만한 폭의 작은 창문이 눈에 들어왔다. 성은 크고, 성 밖의 세상도 넓지만 만일 이 창문 앞에 서서 밖을 바라봤다면 좁고 답답했을 것이다. 드넓은 세상을 품기에 창문은 비좁았다.


문득 '프레임'이라는 책이 떠올랐다. 어떤 현상이든 그것을 바라보는 내 안의 레임에 의해 세상이 비친다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같은 일도 각자의 프레임에 따라 다르게 다가온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나는 어떤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가? 나는 어떤 모양의 프레임을 가지고 있는가? 나 역시 저 창문과 같이 좁고 가느다란 프레임을 가지고 얄팍게 행동한 건 아닌가? 내가 옳다고 믿는 것들이 어쩌면 단지 어떤 모양의 프레임 때문에 옳다고 여겨졌던 건 아닐까?


'대기업에 가면 행복할 것이다' 명제는 사회통념적인 프레임으로 바라봤기 때문인 거지, 절대적 사실은 아닐 수 있는 것이었다. '윤택해질 것이다'에는 동의하지만 마음까지 윤택해지는 건 전혀 별개의 문제였던 걸 직접 부딪혀보고야 알았다. 내 마음의 공간에 '행복'이 찾아들기 위해선 나만의 기준이 있어야 하고, 나만의 기호와 가치관, 나의 성향, 나의 성격, 나의 관심사 등 나를 기준으로 하는 모든 것들이 조화롭게 고려되어야 한다는 걸 온몸으로 겪어내고야 깨달았다. 그것들이 고려되지 않은 선택 결과는 방황의 연속이었다. 남들의 기준과 프레임의 잣대에 나를 끼워 넣는 건, 남들을 만족시킬 순 있지만 나를 만족시킬 순 없는 길이라는 걸, 늦게나마 깨달은 것이다.


성에 오르자 뉘른베르크 도시가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세 건축양식과 뾰족뾰족 지붕들이 모여 있는 기자기한 마을은 바라보기만 해도 힐링이었다. 저 멀리 굴뚝에서 연기가 몽글몽글 피어오른다. 누군가의 집에서 정다운 풍경이 펼쳐지고 있을 것만 같다. 바삐 움직이는 번잡함을 벗어난 마을, 그것을 바라보기만 해도 마음의 안정을 느낀다.


그러다 한 풍경이 내 눈을 사로잡았다. 카메라를 확대에 사진을 찍었다.



어느 주택의 작은 테라스였다. 편안함을 주는 나무로 된 데크엔 작은 의자 2개가 놓여 있었다. 작지만 초록빛이 가득한 식물들도 있다. 이 광경을 보고 많은 생각이 스다.



그래, 내가 바랐던 건
이 작은 테라스에서 누리는 행복이었어



나는 테라스에서의 삶을 상상했다. 비록 작은 집이지만, 그 안에 넘치게 담겨 있을 여유로운 라이프스타일이 그려졌다. 회사에서 일하고 돌아오면, 사랑하는 사람과 마주 앉아 차 한잔 마시며 여유를 누리는 모습이 떠올랐다. 선선한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는 테라스에선 웃음과 담소가 흐를 것이다. 하기 싫은 일에 허덕이다가 집에 와서 쓰러지듯 잠만 자는 모습이 아니라 테라스에서 해가 지는 노을을 바라보며 나를 위한 소중한 시간을 가지는 모습이 그려졌다. 오늘도 어제와 같이 의미 없이 흘러가는 하루가 아니라, 내 일에 흠뻑 빠져 시키지 않아도 열정적으로 일하며 내일이 기대되는 하루를 보내는 나를 떠올렸다. 신나게 일하고 집에 와서 꿀맛 같은 휴식을 취하는 모습은 생각만 해도 즐거웠다.


테라스는 일과 쉼을 연결시키고, 직장과 가정의 균형 잡힌 삶을 유지하며, 작지만 소중한 것들에서 나만의 행복을 느끼며 살아가는 모습을 상징적으로 나타냈다. 충만함과 만족감을 결정짓는 요인은 크고 넓은 집이 아니었다. 크고 좋은 회사가 아니었다. 


작아도 나에게 꼭 맞는
내가 원하는 것들로 가득 찬
나답게 살아갈 수 있는 작은 테라스가 있는 집이 바로 내가 편히 쉴 수 있는  곳이었다.


테라스를 바라보며 다짐한다.

그래, 내가 진짜 원하는 삶을 찾아가자. 나만의 기준을 가지고 내게 가장 어울리는 직업을 찾자. 더 이상 남의 기준과 시선에 맞추지 말자. 사회적 편견에 흔들리지 말자. 화려하고 비싼 집이 좋은 게 아니라, 작지만 아늑하고 그 안에서 사랑과 기쁨이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집이 좋은 집이다.


소소하지만 행복으로 가득 찬 일상을 꿈꾸며, 한 번도 가보지 않은 험난한 로 내디뎠다. 깨지고 상처 나고 아플지언정 그 길 끝에선 웃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나만의 테라스가 있는 공간을 만날 수 있길 꿈꿔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프롤로그: 삼성 퇴사 후 유럽여행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