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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나팍 Oct 19. 2024

뉴질랜드에서 온 남자와 백만불짜리 맥주 한 잔

퇴사 후 나홀로 유럽여행기 7

뮌헨으로 돌아온 우리는 톨우드페스티벌이라는 축제에 갔다가 마리나광장 어딘가에서 저녁을 먹기 위해 식당으로 향했다. 피곤하다며 숙소로 돌아 간 일행을 빼고 나는 1명의 일행과 돌아다니다 눈에 보이는 식당 아무 곳이나 들어갔다. 넓고 밝고 깔끔한 곳이었는데 앉을자리가 없 테이블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그때 창가의 한 테이블에서 30대 후반에서 40대로 보이는 외국인 남자 1명이 혼자 맥주 한 잔을 하고 있었다. 그의 옆자리 의자 3개는 텅텅 비어있었고 일행이 없는 빈자리가 유독 눈에 띄었다. 어물쩍 걷는 우리와 눈이 마주친 그는 자연스럽고도 환한 미소를 씽~긋 보내주었고, 누가 먼저 말을 걸었는지 모르게 우리는 매우 자연스럽게 합석을 하게 되었다. 리가 생긴 나는 러키! 를 외치며 앉았다.



그는 인심 좋은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 환하게 웃으며 우리를 너무도 다정하게 반겨주었다. 그 모습에서 친근함과 고마움을 느끼며 우리도 역시 맥주 한 잔씩 시켜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었다. 그는 퇴근 후 혼자 맥주 한잔을 마시며 저녁 시간의 여유를 즐기고 있는 중이었다. 퇴근 후에 종종 이렇게 혼자 맥주를 마시며 시간을 보낸다고 했다.


그는 좋은 맥주를 구별하는 꿀팁도 알려주었다. 맥주를 마신 뒤 맥주 거품이 컵 표면에 남아 있는 것이 좋은 맥주라고 했다. 대부분의 독일 맥주를 마실 때마다 컵 표면에서 미끄러지는 부드러운 거품의 향연을 감상할 수 있다. 그게 좋은 맥주의 구별법이라니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그는 인상이 유독 편안해 보였다. 황금 같은 저녁에 꿀맛 같은 휴식을 보내고 있어서라기 보단 그가 풍기는 특유의 분위기였다. 사람은 살아온 세월의 흔적이 얼굴에 나타난다고 생각한다. 마음의 여유 없이 쫓기듯이 사는 모습도 드러나고, 괴팍한 성격에 구두쇠 같은 사람도 얼굴에 드러난다. 욕심보 얼굴, 나긋나긋하고 다정한 느낌을 주는 사람, 새침데기 같은 사람, 순수하고 맑은 사람, 근심걱정이 많은 사람, 아프고 지쳐 보이는 사람, 사랑스러운 사람 등 저마다의 풍기는 분위기와 이미지가 있다. 내가 보는 그의 이미지는 '어떤 말도 다 공감하며 들어줄 것 같은 사람, 근심걱정이 별로 없고 있더라고 유연하게 대처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대화를 점점 나눌수록 그가 유독 그런 분위기를 풍겼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는 알고 보니 뉴질랜드 사람이었다. 뉴질랜드에서 온 이 남자는 독일에 오기까지 화려한 변천사가 있었다.


"저는 뉴질랜드에서 홍콩, 싱가포르를 거치며 10여개국을 일하고 현재는 독일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어요. 각 나라마다 다 살아보았죠. 직업은 엔지니어를 시작으로 프로젝트 매니저를 거쳐 현재는 재무총괄을 담당하고 있어요. 회사와 나라를 옮길 때마다 몸값을 높여왔죠."


이직하겠다고 퇴사한 이제 갓 햇병아리인 내게 그는 대선배이자 바람직한 모델상이었다. 자국 내에서 이직하기도 쉽지 않은 난관인데 어떻게 나라를 이렇게 다채롭게 옮기면서 이직하고, 직업도 한 가지가 아니라 여러 개를 거치게 되었을까? 그러면서 연봉은 점점 높이고 말이야. 나는 입이 쩍 벌어친 채 그가 하는 말을 쫑긋하며 들었다. 그는 말을 이어갔다.


"뉴질랜드는 섬이잖아요. 뉴질랜드는 너무 좁아요. 더 넓은 세계를 향해 도전하세요!! 인생은 한 번 뿐이잖아요."


You only live once!



그로부터 몇 년 뒤 욜로족(YOLO, You only live once 약어를 딴 용어)이란 단어가 탄생하고 대열풍이 불었는데, 나는 이미 그 말의 원조격을 그날, 그에게서 들었다. 그리고 이 문장은 내게 강렬하게 다가왔다. 한 번뿐인 인생, 더 넓은 시각을 가지고 세계를 무대로 도전하고 꿈을 펼쳐가라는 그의 조언! 그가 살아온 세월이 그 결과였고 그가 이뤄낸 업적과 현재의 커리어가 그의 이야기에 더욱 힘을 실어주었다. 그리고 추가로 덧붙였다.



단, 돈을 벌 수 있는 길로!



9 to 5, 주 38시간 근무인 독일은 초과근무 시 대체휴일을 써야 한다고 한다. 철저한 휴식이 보장되는 직장인의 삶이었다. 그는 현재 1년에 6주 휴가를 받으며 금전적, 시간적 여유가 있는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다고 했다.




"네?? 1년에 휴가가 6주라고요??? "

"Yes~~^^"



정말?? 유럽에서 1달 휴가는 들어봤어도 그보다 더 긴 6주 휴가를 누린단 말이야??? 정말 세상은 넓고 다양하다더니 이렇게 다르게 살고 있는 사람도 있구나. 나는 6일 휴가도 못 내보고 살았는데... 6일 연속 휴가 내는 건 상상도 못 해봤어. 6일이면 1주일도 넘어가는데.. 말 꺼내기가 만리장성보다 높겠지. 지난 짧은 여름휴가 며칠 승낙받을 때도 얼마나 진땀 뺐는지 몰라. 심장이 두근대고 어찌나 눈치 보이던지. 6일은 정말 길지.. 정말 특별한 사연이 아니고서야 말도 안 되는 일이지. 아니, 여기 더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잖아? 6일도 어려운 내 앞에 매년 6주씩 휴가 내며 띵까띵까 즐겁게 살고 있는 사람이 앉아 있다니! 역시 얼굴에 윤기가 좌르르 흐르고 편한 미소가 새어 나오는 건 괜히 가능한 게 아니었어. 게다가 몸값을 높여와서 경제적으로도 여유 있고, 시간적으로도 여유 있다니! 딱 내가 꿈꾸던 삶의 모습이잖아? 이게 정말 가능한 일이었네? 어떻게 한 거야? 어떻게 한 거지? 도대체 어떻게 해야 이렇게 성공적으로 만족스럽게 살 수 있는 거지??? 궁금해. 너무 궁금해!!!!



원하는 삶을 이뤄낸 그가 멋져 보였다. 지금 내 앞에서 안정적인 삶을 이뤄내 앉아있는 그처럼 나도 되고 싶었다. 가능하면 상세히 낱낱이 알고 싶었다.


"그 비결이 도대체 뭐예요????"



Follow your heart!




그 대답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구구절절 스토리도 필요 없었다. 그저 핵심은 하나였다. 가슴이 시키는 대로 사는 게 바로 그 비법이었다. 가슴이 뛰는 방향으로 살다 보니 이 자리에 와 있었다고 한다. 그 말에는 남들이 쉽게 선택하지 못한 결단과 도전, 그리고 많은 노력들도 내포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핵심은 '내가 원하는 소리'를 따라 행동하고 흘러갔다는 점이다. 그의 임팩트 있는 2 문장은 내게 큰 귀감이 되었다.


내 마음의 소리를 따라 나 역시 회사를 나왔고, 유럽 여행길에 올랐다. 그리고 그 여행길에서 만난 낯선 이 가 그 방법대로 살아온 10년 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 모습은 꽤나 만족스러워 보였고 안정되어 보였다. 미래를 알 수 없는 어둠의 한가운데 서 있는 내게 묵묵히 그 길을 따라가다 보면 빛나는 결과를 만날 수 있다고 얘기해 주는 것 같았다. 그와 마주 앉게 된 건 우연과도 같은 운명이 아닐까. 그의 조언은 오래도록 여운으로 남았다.




그래, 우리 모두 한 번 사는데 무엇 때문에 아등바등 살고 있는 것일까? 무엇 때문에 남들 눈치 보며 어렵게 살아야 하는 걸까? 방식대로 살아보자. 마음이 시키는 대로 살아보자. 세상이 정답이라고 외치는 길이 아닌, 나만의 길을 개척해 보자. 남들과 다른 선택이지, 그게 틀린 선택은 아닌 거야. 두렵고 겁은 나지만 한편으로 설레고 짜릿하기도 해. 나중에 내가 성공했는지는 어차피 남이 판단할 수 없어.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게 되더라도 그 모습이 내가 스스로 세운 기준에 맞고 내가 만족하면 되는 거야. 그게 성공한 인생인 거야. 내가 원하는 모습과 직업, 라이프스타일을 내가 정하고 그 길을 향해 정진하는 삶. 생각만 해도 기분 좋네. 자, 준비됐지? 이 여행을 시작으로 이제부터 새로운 길이 펼쳐질 거야! 마음껏 즐기며 정진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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