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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유 Oct 24. 2021

‘100%의 나’로 사랑하는 일

진짜 사랑을 찾아서


“저는 원래 말수가 적은데요.”


아니다. 어떤 내담자도 말수가 적지 않다. 조용하던 그들이 상담실에만 오면 수다스러워지는 이유가 뭘까?


 상담자들은 내담자의 수다스러움을 이끌어내는 능력을 가졌다. 일할 땐 리스닝 전문가지만, 사적으로 모이면 본인들도 몹시 수다스럽다. 원리는 아주 간단하고도 어렵다. 그 어떤 판단도 하지 않고 감정에 공감하는 것이다. 우리는 말수가 없는 게 아니다. 상대방이 듣고 싶은 말을 해야 해서, 내가 하는 말이 재미가 없을까 봐, 이상하게 생각할까 봐, 공감받지 못할까 봐, 혹은 나의 부족하거나 모난 면을 들킬까 봐 말수가 적어지는 것이다.


 사실은 100%의 하고 싶은 말 중에서, 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말이 1%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99%의 이야기는 꺼낼 수 없는 영역으로, 크게 X를 쳐놓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말수가 없는 이유만 탐색해도 한 시간이 모자라게 수다를 떨어야 한다.


 여기서는 어떤 말을 해도 안전할 거라는 믿음. 바로 그 안전감을 심어주는 것이 심리상담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안전감이 버텨주면, 우리는 스스로 만나지 않던 영역의 나를 만날 수 있다. 그래서 무의식 속의 나를 발견하고, 그가 반복하는 패턴을 깨닫고, 변화를 시도할 지점을 찾아낼 수 있다.







 앞선 에피소드에서 등장하지 않은 내 인생의 중요한 인물이 있다. 나와 비슷한 시기에 퇴사해서 프리랜서의 불안을 함께 견뎌온 친구이다. 그 친구 덕분에 나는 많은 아이디어를 실제로 도전해볼 수 있었다. 나의 굉장히 엉뚱하고 쓸데없는 생각들을 너무 재밌다며 꺄르르 웃어준 덕분이다. 살면서 참 오랜 시간 동안 나는 재미가 없고, 엉뚱한 생각이 많고, 그건 사회적으로 이상해 보이는 일이니까 숨겨야 한다고 여겼다. 그것 대신에 어디서 주워들은 말 같은 걸 하는 게 오히려 편했는데 말이다.


 타인의 비난이 안전감을 해친다면, 혼자 있으면 안전할까? 우리의 머릿속도 그렇게 안전한 공간은 아니다. 살면서 들어온 온갖 비난들이 재생되고 있는 곳이다. 심지어 내가 직접 들은 비난이 아닌데도 굉장히 강력하게 자리하기도 한다.


 그래서 나의 100%를 만나려면, 외부의 안전한 연습 대상이 필요하다. 내가 나를 비난할 때조차 함께 슬퍼하며 나를 좋은 사람이라고 말해줄 사람. 내 친구는 어떤 상담 선생님보다도 더 따뜻한 치유제였다. 물론 나를 꺼내는 그 시작은 선생님과의 연습이 있었기에 가능했지만, 실전을 함께해 준 친구가 바통을 이어받았다. 그렇게 100%의 내 모습으로 우리는 서로를 바라봐 준다.






 말 수가 적다는 것과 비슷하게, 장점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인생에 참 많은 함정들이 도사리고 있다고 생각하며, 이것을 발견하는 재미를 좋아한다. 장점도 함정이다. 장점, 단점은 상황이나 판단하는 사람에 따라 바뀐다. 우리에겐 그저 수많은 점들이 있을 뿐이다. 내가 가진 점들을 모아 보고, 그것이 모여서 장점으로 발휘될 수 있는 영역을 찾는 것이 제대로 된 순서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정답 찾기에 혈안이 된 우리는, 사회가 장점이라고 말하는 것들 중에서 내 장점을 찾으려고 한다. 그래서 찾기가 어렵다. 사회적 정답에 20% 정도는 맞는 것 같다. 그러면 80%의 나는 버려야 할, 고쳐야 할 것이 된다. 그렇게 외면받는 80%도 소중한 나인데.


 나도 회사를 다닐 때는 단점이라고 여겼던 게 무수히 많았다. 생각을 너무 많이 했고, 느렸고, 서둘러하려니 실수했고, 눈치를 많이 살폈으며, 아침잠이 많았고, 체력이 약했고, 미팅 때마다 즉흥적으로 대화하는 게 어려웠고,…. 거의 90%는 고쳐야 할 부분이었을 것이다. 그게 너무 힘들어서 나는 나에게 자연스러운 일을 할 수 없을까 고민을 참 많이 했다. 돌이켜보니 내가 사람들의 마음에 관심이 많아서 눈치를 잘 보았고, 깊이 있게 원리를 이해하는 걸 좋아해서 생각이 많이 했으며, 정신적 에너지를 많이 쓰는 사람인데 몸까지 쓰니 체력이 바닥날 수밖에.


 계속해서 100%의 나를 온전히 바라보고, 어느 한 곳도 외면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고쳐야 하는 20%가 있다면, 혹시 그게 나만의 강점이 될 순 없을까? 생각해본다.






사람들과 함께 있어도 외로운 이유가 그것이었다. 100%로 존재하지 않았던 시간들. 친밀감을 쌓는다는 건, 점점 보여주는 영역을 넓혀가는 일이다. 처음엔 서로의 매력적인 모습에 친구가 되었을 수 있지만, 알아갈수록 인간미 넘치는 그 숨은 영역을 서로 공유하며 가까워진다.


 이것도 심리적 능력이다. 100%의 나로 존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 타인의 100%를 받아줄 수 있다.


 100%의 나로 존재할 수 있다면, 단 한 명의 친구만 있어도 우리는 외롭지 않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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