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사랑을 찾아서
“그래도 여전히 분노가 원동력인 점이 마음에 걸리네요.”
인생 첫 상담의 마지막 날, 선생님은 우려스러운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그때는 그게 왜 문제인지 몰랐다. 분노가 에너지인 게 뭐 어때서? 힘이 펄펄 나니 좋기만 한데! 이 에너지로 내가 이뤄온 것도 많은 걸! 분노가 없으면 성장 없이 정체된 삶을 사는 거 아닐까?
그때는 분노가 아닌 긍정적 에너지로 성장한다는 게 잘 그려지지 않았다. 사랑을 받는다는 건 왠지 약해지고, 그 자리에서 안분지족 하는 모습으로 그려졌었다.
그랬던 내가 후에는 도끼나 이센스의 독기 가득한 노래를 들으며 공부한다는 우리 내담자들을 보면서 나의 상담 선생님과 똑같은 표정을 짓고 있더라. 이제 나도, 분노가 아니라 사랑을 원동력으로 사용할 만큼 사랑의 게이지가 가득 차올랐기 때문이다.
이걸 어떻게 깨우칠 수 있담? 시간이 필요한 일인데. 때론 상담에서 알면서도 넘어가는 것도 있다.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것들, 시간이 필요한 일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저 분노 에너지로 지금은 살지만, 나중에 깨달을 수 있기를. 나 말고 다음 상담자와 다룰 수 있기를 속으로 바랄 뿐이다.
올해 여름, 상담실을 계약했다. 부동산을 돌아다니고, 1일 2이케아를 뛰고, 상담실에 가구를 들이고, 정신없는 시간이 지나가고, 내 자리에 앉아 보았다. 참 많은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아직 시작이지만, 이 시작을 위해서 용기 내고, 실망하고, 울고, 불안해하고, 기뻐하던 날들이 떠올랐다.
예전엔 증명하듯이 삶을 살았다. 만약 그때 상담실을 오픈했더라면, 뭔가 성과를 내서 보여줘야 한다고 주먹을 불끈 쥐었을 것이다. 복수의 칼날을 갈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고마운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뭐든 잘할 거라며 무한 응원을 보내준 이들도 있었고, 돈 들어갈 일 많을 거라며 용돈을 보내주신 분들도 있었다. 제일 먼저 달려와서 꽃을 꽂아준 친구도 있었고. 제일 중요한 건, 나의 상담실 인테리어 담당자님이라고 불러도 될 남자친구에게 가장 고마웠다. 내가 구석 자리에 맞춤 책상을 넣고 싶다고 하니, 도대체 왜 그런 일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지만, 3시간 동안 싫은 소리 한마디 없이 톱질해서 예쁜 맞춤 선반을 넣어 책상을 만들어 주었다. 늘 그렇게 내가 하는 일이 다 이해되지 않더라도, 그냥 믿고 응원해주는 마음이 고맙고 뭉클하다.
사랑으로 만들어진 상담실이다!
라고 혼자 포스트잇에 적어서 몰래 붙여 놓았다. 사랑을 많이 받아서 시작할 용기를 낼 수 있었고, 또 잘하고 싶은 마음도 샘솟는다. 분노를 원동력으로 쓸 때는 내면의 에너지를 영혼까지 끌어다 쓰는 느낌이었다. 쓰고 나면 탈탈 털리는. 그런데 사랑을 원동력으로 쓰는 일은 밖에서 안으로 에너지가 들어오는 느낌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나는 종교가 없어서 몰랐는데, 신의 사랑으로 더 큰 일을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 아마 이런 느낌일까? 혹은 엄마는 강하다는 말이 아이에게서 느끼는 큰 사랑이 들어온 힘인 걸까? 어렴풋이 비슷한 느낌인 것 같다며 즐거워했다.
복수가 아니라 보답하고 싶은 마음.
털려서 사라지는 게 아니라, 계속 계속 충전되는 것.
어깨에 긴장 잔뜩 들어간 게 아니라, 몸에 힘 훌훌 빼고 웃으면서 일하는.
나의 능력보다 더 큰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
사랑을 원동력으로 쓴다는 건 이렇게나 좋은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