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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령 Jan 05. 2023

별 헤는 밤

별은 역시 혼자보다는 '함께' 봐야 더 빛난다.



함께 보는 별이 좋은 이유

그건 아마 고요 속에 펼쳐지는 '낭만'때문일지도


재작년에 함께 본 별들이 그리워 작년에는 남자친구에게 별을 보러 가자며 그렇게도 졸라댔었다. 적재의 '별 보러 가자'를 흥얼거리며 꼬셨지만 결국 시간이 되지 않아 보러 가지 못했었는데, 22년의 마지막 날이자 23년의 첫날 드디어 별을 눈에 담고야 말았다.


도시에서는 별을 찾기가 힘들기에 가끔씩 셀 수 없이 하늘을 수놓은 별을 보면 마음이 몽글해진다. 넓은 바다를 보면 '나'를 되돌아보곤 했는데, 별을 보면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올리게 된다. 그래서인지 혼자 보는 별보다 함께 보는 별은 소중하게 느껴진다.


연애초기에 어렴풋이 했던 천문대 탐방 약속은 아쉽게도 우리 모두 차가 없어서 실패했고, 최근에는 날씨가 좋지 않아 계획이 무산되었다. 맨 눈으로 봐도 저렇게 선명한 별들을 망원경으로 자세히 들여다보면 얼마나 눈이 부실까 상상했다. 언젠가는 꼭 함께 망원경 너머 펼쳐진 별을 보러 가는 날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처음 함께 별을 본 것은 내 기억에 박혀있는 재작년 여름날 밤, 이름 모를 등대 아래에서였다. 부산으로 여름휴가를 떠난 우리는 사람들이 북적이는 해운대 해변가에서 조금 떨어진 만리포 해변으로 느지막한 저녁을 먹으러 갔다. 조개구이에 라면까지 야무지게 먹고 밖으로 나오니 드문드문 거리를 다니던 사람들이 어느새 보이지 않았다. 몇몇 사람들의 나지막한 말소리와 낚시하는 사람들만이 고요를 대신하고 있었다.


숙소로 돌아가려면 택시가 잡혀야 하는데 생각대로 잡히지 않았다. 그래, 이왕 어차피 늦은 거 잠시 쉬어가자 결심했다. 가게 바로 앞에 있던 이름 모를 등대를 향해 걸었다. 등대길 옆 방파제에 부딪히는 파도 소리가 부드러우면서도 그 강도를 유지하듯 우렁차게 들렸다.


"헐 우와 오빠 저기 봐바!"

달이 바다 위를 비추고 있었다. 마치 한밤 중 망망대해를 가르며 표류하던 배에서 한줄기 빛이라도 본 것처럼. 금색 달빛아래 일렁이는 윤슬이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열심히 셔터를 눌러대던 오빠는 갑자기 등대 밑으로 가더니 냅다 등을 대며 발라당 누웠다. 오빠를 따라 나도 누웠다. 습한 여름 기온에 차가운 돌의 냉기가 더해지니 여기가 낙원인가 싶었다. 멍하니 하늘을 계속해서 바라보니 처음에는 보이지 않던 수많은 작은 별들이 얼굴 위로 쏟아질 듯 밝혔다. 살면서 가장 고요하고, 가장 반짝이고, 가장 기억하고 싶은 밤하늘이었다. 인적 드문 바닷가를 홀로 비추고 있는 등대, 그리고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위에 떠있는 별까지. 영화에서나 보던 CG 같은 하늘이 눈앞에 펼쳐져있었다. 우리는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누가 더 별사진을 잘 찍나 내기를 했다. 결국은 내가 졌지만.


가끔씩 문득 그때의 하늘이 떠오르곤 한다. 언제 또 가게 될지도 모르고, 날씨도 항상 좋을 거라는 보장이 없는 데다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과거의 날이기에 더욱 그날의 기억이 빛나고 있다.






처음과 마지막을 장식한 두 번째 별

22년의 끝 그리고 23년의 시작


며칠 전 우리는 세 번째 일출 사냥을 하기 위해 여수로 떠났다. 작년에 봤던 일출이 너무 좋았어서 다시 한번 떠오르는 해를 보며 새해를 반기고 싶었다. 2022년의 마지막 날, 숙소로 돌아와 테라스에서 잠시 친구와 수다를 떨던 참에 무심코 하늘을 올려다봤다. 재작년의 하늘을 빼닮은 수많은 별들이 드넓은 바다를 아래로 높고 청량하게 반짝였다.


"와, 지금 내 눈앞에 별 엄청 떠있다? 너도 같이 보면 진짜 기분 좋을 텐데. 내가 이따가 사진 찍어서 보내줄게!'

전화를 끊은 후 나는 바로 오빠에게 달려가 냅다 불렀다.

"나랑~별 보러 가지 않을래~ 우리 집 앞으로 잠깐 나올래~'

갑자기 펼쳐진 재롱에 옅은 미소를 띠며 남자친구는 '밖에 별 많아?' 되물었다. 테라스에서 한참 별을 보던 우리는 오랜만에 사진 찍기 대결을 펼쳤다. 이번에도 역시 내가 졌지만.


하늘을 수놓은 별을 헤며, 또 은은하게 찰랑이는 파랑들이 느껴지는 바다를 보면 마음이 편해진다. 혼자 보면 왠지 모르게 외롭지만 함께 보는 별은 낭만이었다. 또 바쁘게 시간이 흘러 여행이 고파질 쯤이면 생각날 기억. 두 번째 별도 함께여서 좋았다.


그날 새벽, 오빠는 나 몰래 열심히 별 사진을 찍었더랬다. 친구에게 별 사진을 보내야 한다며 사진으로 간직하고 싶다던 내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일출을 보기 위해 눈 비비며 일어나는 나에게 오빠는 불쑥 몇 장의 사진이 담긴 폰을 내밀었다.

"이거 내가 50장 찍고 잘 나온 거 5장만 남긴 거야 어때 이런 남자."

"오 새해부터 스위트가이~"

귀여운 생색 너머로 받은 사진에는 어제 눈으로 보았던 별들보다 더 많은 별들이 찍혀있었다.



새해 첫 글로 올리는 이번 글은 밤하늘을 함께 본 기억이 좋아서 남기는 기분 좋은 끄적임이다. 좋았던 기억으로 2년을 지나왔듯, 그날의 밤도 앞으로 나아갈 무언의 힘을 주었다. 다음에 마주할 별도 찬란했으면 좋겠다. 또다시 별 헤는 밤의 단 맛을 느낄 수 있도록 새해에도 열심히 힘을 내야겠다.


이번 일출 여행에는 참 많이도 소원을 빌었다. 별에도, 해에도 빌었다. 한 해의 마지막과 한 해의 시작에 간절하게 빈 소원들이 꼭 이뤄지는 한 해가 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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