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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령 Oct 27. 2022

요즘 내 할 일은 ‘버킷리스트 100개 채우기’

오직 '함께'할 것들로만 가득 채우는 100개의 버킷



괴롭지만... 행복해...!

버킷리스트 100개 채우게 된 썰


요즘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행복 회로를 돌려 상상하는 게 낙이라면 낙인 삶을 살고 있다. 바로, 새로운 미션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 미션은 바로 '버킷리스트 100개' 채우기! 조금 특별한 점이 있다면 이 버킷리스트는 '나'를 위한 버킷이 아닌 '우리'를 위한 버킷이라는 점이다. 혼자 한다고 생각하면 조금은 허전할 수 있는 것들을 함께 나눈다니...! 그것도 나와 많은 것들을 나누고 있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한다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즐거운 일이다. 버킷리스트를 적기로 한 뒤로 머릿속에서 생각나는 것들을 열심히 적고 있는 중이지만, 아직 100개를 채우기에는 역부족인 상태이다. 그래도 뭐, 아무렴 어때? 하루하루 행복한 상상을 하며 짱구를 굴리는 시간이 늘어나고 보니, 이런 소소한 낙이라면 급할 필요 없이 천천히 버킷을 채워가도 좋을 것 같았다. 연애 5년 차에 버킷리스트 100개라... 어떻게 보면 아이러니할 수도 있지만 슬퍼했던 날들도 있었기에 지금의 이 미션이 더욱더 달콤한지도 모르겠다. 나의 소원이 드디어 이뤄지게 된 나날들에 대한 썰. 지금은 훌훌 털어버린 아픈 손가락 같은 날들을 잠시 풀어보려 한다.






참고, 울고, 버텼던 날들

참는 것만이 답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던 슬픈 밤


한 달 전부터였나, 멀쩡히 하루를 보내다가도 멍하니 하늘을 보며 생각하던 날들이 많았다. 예고도 없이 구름과 바람을 휘휘 둘러 매섭게 몰아쳐오는 태풍처럼 나도 모르게 감정이 걷잡을 수 없이 커져 눈물로 쏟던 밤도 있었다. '갑자기 왜 이러지?' 하는 생각이 들어도 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단지 자려고 누워서 졸음이 올 때까지 눈을 감았을 뿐인데, 생각주머니에 몹쓸 생각들만 많아서인지 틈 없는 주머니를 굳이 비집고 나와 나를 슬프게 만들었다. 툭 튀어나오는 생각의 주인공은 바로 남자 친구와 나. '우리'였다.


어느덧 4년 차에 접어든 오빠의 사업이 해가 지날수록 성장하며 자연스럽게 오빠도 업무에 집중하는 날들이 많아졌다. 불면증도 고사하며 열심히 성공하기 위해 노력하는 오빠의 곁에서 나도 최선을 다해 응원했다. 하지만 생각하지 못했던 문제의 시발점은 '시간'이었다. 주말에도 일을 하러 나가는 빈도가 잦아지면서 '함께할 시간'들이 줄어갔다. 처음에는 일주일에 5번을 봤던 날들이 주에 1번으로, 정말 바쁜 주에는 거르는 주까지 생겼다. 일이 조금 일찍 끝나는 날이면 저녁에 잠깐 만나 3시간 정도 밥을 먹거나 영화를 보고 헤어지는 데이트들을 이어갔다. 일이 너무 바빠 연락도 어려웠기에 그 잠깐의 시간들이 우리에게 너무나 아쉽고 소중한 시간들이었다. 짬을 내서라도 얼굴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금요일, '주말에 뭐해?'라고 물으면 "흐음~ 글쎄다, 오빠가 상황보고 연락 줄게"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정확한 기약을 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보고 싶은데 볼 수가 없다는 점이 은근히 나를 힘들게 만들었다. 회사를 차리고 1-2년 차에는 안정화를 위해 정신이 없으니 당연히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내가 남자 친구를 이해하고 조금은 아쉽더라도 참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먼저 만나자는 말도, 새로 개봉한 영화를 보러 가자는 말도, 여행을 가자는 말도 나도 모르게 많이 삼켰다. '힘들 테니 주말이라도 쉬어야지', '잠을 잘 못 자니 연휴 때라도 잠을 보충해줘야지', '어차피 바빠서 못 가겠지? 나중에 시간이 나는 것 같으면 말해야겠다' 등의 이유들이었다.


하지만 나는 나의 둑에 점점 금이 가고 있는지도 모른 채 2년의 시간을 보냈다. 터져 나온 둑 사이로 물들이 넘치기 시작했을 때, 나의 감정에도 점점 '지침'이라는 인정하기도, 마주하기도 싫은 단어가 정체를 드러냈는지 모른다. 함께 할 시간들이 기약 없이 줄어든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많이 힘들었다. '어쩔 수 없어'라는 문장으로 이겨내기에는 나의 슬픔을 해결할 수 없었다. 상상으로라도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감정들이었는데. 왜 나랑 같이 놀아줄 시간도 없어진 거냐고 투정 부리고 어리광을 부리는 것 같아 그렇게 접고 또 접어두었던 마음인데. 기어코 접히고 접혀 뾰족해진 속마음이 오빠를 눈앞에 두고 입 밖으로 비집고 나오기 일보직전이었다.


생각이 많으니 잠을 자려 누우면 자꾸만 떠오르고 잠이 오질 않았다. 그런 밤이면 나는 우리의 카톡 내용들이 쭈욱 담겨있는 앨범을 찾아 지나간 날들을 떠올렸다. 나는 연애 초반부터 지금까지 오빠와 카톡을 하며 기분이 좋았던 말들, 감동받았던 말들, 낯간지러운 말들까지 모두 캡처해 저장해 두고 있다. 앨범의 첫 장부터 끝 장까지 모든 사진들은 과거와 현재 우리의 시간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눈을 뜨면 안부를 확인하던 말, 내가 힘들 때 오빠가 건넸던 말, 행복한 기분을 나누던 말들 등 소중한 날들의 시간을 간직한 채 한 가득 담겨있었다. 좋은 것들, 예쁜 것들로 가득 채워주고 싶다던 오빠의 말이 나의 상황들과 맞물려 새벽 감성이 극에 달하는 밤을 눈물짓게 만들었다.


그렇게 가끔씩, 혼자 울면서 보낸 밤들을 통해 나는 그제야 나의 마음을 눈앞에 마주하기로 했다.

'오빠와 함께 시간을 보내지 못해서 서운해. 그리고 함께할 시간이 나기를 기다리는 게 조금은 지치기도 하는 것 같아.'

남자 친구와 하고 싶었던 것들이 너무 많았다. 그리고 지금도 계속해서 생겨나는 ing 상태이다. 남들이 하는 것도 다 해보고 싶고, 서로가 처음인 수많은 것들을 함께 하며 나누고 싶었다. 번지점프나 스카이다이빙같이 아무리 무서운 것을 해보라고 해도 나는 함께 한다면 도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 그와 함께 보내는 시간들이란, 나에겐 너무나 귀하고 소중했다. 그래서 더욱 그 시간들을 원했는지 모른다. 이제 이 말들을 입 밖으로 꺼낼 일만 남았는데. 입술에 본드라도 붙인 듯 쉽사리 떨어지지가 않았다.






나를 너무나도 잘 아는 사람

단순하고도 단순한 나를 너무 잘 알아!


글쎄다, 아무리 슬퍼도 분명 하룻밤이 지나면 싹 리셋되던 나였는데. 나의 자잘한 밤들을 훔쳐간 이 감정은 생각보다 그리 쉽게 사라질 생각이 없었나 보다. 이상하게 울고 난 밤 다음날에도 희미한 여운들이 남아있었다.


그날은 유독 오빠를 만나면서 허공을 보며 멍을 많이 때렸다. 멍 때릴 때마다 생각이 났다.

'아, 이걸 어떻게 말해야 하지. 앞에서 울고 싶지는 않은데.'

생각만 했는데도 눈물이 차오르려 했다.

'망했다...!'

평소에는 똥꼬 발랄하게 자신을 괴롭히던 내가 멍하니 허공만 보고 있으니 이상하다고 느낀 오빠는 힐끗 쳐다보며 이런저런 말을 걸었다. 응? 아냐, 웅.이라 답하며 차오르는 눈물을 들키지 않기 위해 말을 아꼈다. 오빠를 쳐다보면 말을 꺼내기도 전에 눈물부터 쏟아질 것 같아서 애꿎은 입술만 힘껏 깨물었다.


헤어진 뒤, 얼마 있지 않아 오빠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흐르는 약간의 정적을 뒤로 오빠는 물었다.

'자기, 왜 이렇게 목소리에 힘이 없어!'

'응? 아니야. 그냥 요즘 생각이 많아서 그른가 본데?'

'어떤 생각이 많을까아~?'

역시 눈치 백 단, 아니 오백단 남자 친구는 이미 뭐가 서운한 건지 다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사실 저 말을 듣고 눈치챈 순간 또 눈 녹듯 서운함이 사그라들었다. 나는 어쩌면 내 생각보다도 단순한 사람일지 모른다는걸 깨닫는 순간이었다. 멍 때리는 것만 보고 나의 서운함까지 파악해내다니. 대단한걸...?


꾹꾹 눌러만 왔던 마음들을 전했다. 그러다 말 끝에 투정 어린 목소리로 이런 말이 툭 튀어나왔다.

"내가 오빠랑 얼마나 하고 싶은 게 많은지 알아? 나 오빠랑 하고 싶은 거 적으라고 하면 100개도 적을 수 있어!“

그러자 오빠는 말했다.

"그래? 그럼 한번 적어와 봐!"

"진짜로? 다 들어줄 거야?"

"오빠 못 믿어?"

"오호...?"

그렇게 시작된 나의 버킷리스트 100개 채우기 미션은 현재 진행 중이다.






'우리'와 '함께'라는 단어의 가치

나아가게 하는 무한 부스터


오랜 기간 연애를 하다 보면 많은 상황들과 그에 따른 변화들을 함께 마주한다. 시간의 흐름에 따른 '나'와 '우리'의 변화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과 그 고마움을 표현해주는 것. 그동안 오랜 시간 연애를 하며 배우게 된 것들이다. 하지만 요 몇 달간에 또 한 가지 배운 점이 있다. 무작정 참는 것도 답은 아니라는 것. 존중을 곁들여 말할 줄 알고, 마주한 문제를 함께 현명하게 해결하는 법을 배웠다. 서로 다른 생각과 삶을 살아온 두 세계관을 이해하고 맞춰간다는 것은 당연히 어렵다. 그 간단한 기본 상식을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이해'라는 가면을 씌우고 무작정 참기만 했던 미련한 날들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린 꽤 현명한 해결책을 찾았다고 생각한다.   


요즘 버킷리스트를 적으며 '함께'라는 단어에 큰 힘을 느끼고 있다. 오로지 함께할 것들로만 100개를 채워나가고 있으니 말이다. 나를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건 참 귀한 일이다. 어쩔 때는 내가 나를 모르겠는 날들도 많은데 그런 나를 입체적으로 살피고, 알아봐 주고, 이야기해줄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함께'한다는 것은 서로를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무한 부스터와도 같은 말이지 않을까? 아직도 함께할 수 있는 새로운 것들이 이렇게 많아 다행이다. 새롭고 많은 것들을 함께 도전하고 느끼고 난 뒤 우리의 모습은 또 얼마나 앞으로 나아가 있을까? 우리에게 펼쳐질 많은 시간들도 서로에게 상처 주지 않게 잘 보듬고 살피며 풀어나갈 수 있는 날들로 안녕하길 바란다.


(하, 오늘은 어떤 것들로 채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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