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엇이 불균형했던 걸까
2020년 11월 18일 14시
[균형]
모두가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아등바등 지켜내는 것
사람도, 돈도, 마음의 여유도
모든 게 평화로우면 좋을 것을
매일을 좇으며,
그렇게 균형을 추구하며
그 저울에 오늘을 실어본다
어렴풋한 기억을 더듬었다. 이 글을 적었을 때 나는 어떤 고민을 갖고 있었고, 어떤 상황에 놓여있었을까. 내 기억이 정확할지는 모르지만 나는 그날 기차 안에서 이 글을 적었던 것 같다.
가끔씩 서울에 가기 위해 기차를 타는 날이면 차창 너머로 지나가는 풍경들을 바라보며 자주 멍을 때리곤 했다. 논과 밭에서 차들이 다니는 도로로, 건물들이 빼곡한 서울에 도착하기까지. 빠르게 지나가는 풍경들 사이로 시선을 맡기고, 잔잔한 발라드에 내 귀를 맡긴 채 한 시간 남짓 되는 시간을 즐겼다. 쓸데없는 생각들부터 막연한 고민들까지, 여러 가지 생각들이 스쳐갔다.
2020년의 나는 휴학을 마친 뒤 마지막 학기를 앞둔 시점이었다. 이전에 적었던 ⎡작가가 된 지 일 년째⎦글에서도 잠시 남긴 바 있지만 졸업을 한 뒤 어떤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할지 미래에 대한 뒤늦은 고민이 몰려왔었다.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이나 선생님이 '너는 어떤 일을 하고 싶어?'라고 물으면 나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이렇게 대답했다. '나? 광고하고 글 쓰는 사람! 정확히는 카피라이터?'
한참 진로에 대해 모두가 고민하고 또 방황하던 시기인지라 그 당시 명확하게 하고 싶은 직업이 있었던 나는 꽤 빨리 답을 찾았다고 생각했었다. 시간이 날 때마다 도서관에 가서 광고 관련 서적을 빌려 읽었다. '광고천재 이제석' 책을 보며 나도 광고계에서 이름 꽤나 날리는 사람이 되겠다는 다짐을 했었다. 티비에서 나오는 광고 카피문구들을 그대로 노트에 옮겨 적기도 했다. 나도 언젠가는 이렇게 멋들어진 카피를 쓰고, 간드러진 내레이션의 옷을 입은 광고를 만들 거라고 다짐했다. 그리고 그 광고를 가족들과 함께 시청하는 날이 오길 기대하면서. 그렇게 광고인이 되겠다고 꿈꿨다.
그래서인지 대학 진로도 쉽게 결정했다. 무조건 나에게는 광고홍보학과뿐이었다. 그렇게 원했던 과에 진학했고, 두근거리는 마음과 꿈을 안고 매일 등굣길에 올랐다. 하지만 3학년, 4학년이 될수록 한 가지 고민이 생겨났다. 광고는 재미있었다. 근데, 자신이 없었다. 카피라이터는 '카피만 잘 쓰면 된다'는 막연한 생각을 했던 과거의 나에게 돌아가 꿀밤을 먹이고 싶었다. "야! 이게 아무리 글과 관련된 직업이라고 해도 그렇게 단순한 일인 줄 알아?!"라고 말하면서. 그저 나는 사람들의 행동을 유도시키는 광고가 신기했고, 글을 쓰고 읽는 행위를 좋아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진로를 찾는 머나먼 여행의 길에서 그 둘을 합쳐놓은 '카피라이터'라는 직업은 어린 나를 매료시키기에 충분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학과를 다니는 동안 광고계의 흐름도 빠르게 바뀌어갔다. 이전에는 '카피라이터'의 직무가 따로 있었다면, 시대가 바뀌며 점차 그 경계가 흐려지고 'AE'라는 직무로 통합하여 업무를 수행하는 곳이 많아졌다. 끊임없이, 창의적으로 샘솟아야 하는 아이디어. 무엇보다 그 아이디어는 '쓸모'가 있어야 하는 것이어야만 했다. 그리고 그 쓸모 있는 아이디어를 상품 혹은 브랜드에 녹여 논리적으로 기획해야 하는 기획력과 어떤 아웃풋을 낼 수 있을지에 대해 명쾌하게 설명하고 솔루션을 제시할 줄 아는 설득력. 모든 것을 통찰하고 잘할 줄 알아야 했다. 학교생활을 하며 몇 년째 배우고 있었던 것들이기도 했다. 그때서야 나는, 막연하게 직업에 관해 가졌던 환상과 실제로 행해지는 것들은 천지차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2019년, 3학년을 마치고 여러 가지 대외활동에 도전하며 1년의 휴학기를 가졌다. 또 다른 나의 재능을 발견하기 위해 발에 불이 나게 기차를 타고 평택과 서울을 오갔다. 다양한 학교와 전공의 학생들을 만나 머리를 맞대고 밤을 새 가며 그 속에서 새로운 에너지를 얻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앞으로 나아갈 힘'이었다. 활동을 할 때마다 우수상도 타고, 어떤 대외활동에서는 우수자로 상금도 받았다. 1년의 시간 동안 열심히 달려오며 내가 콘텐츠 기획 및 제작에 나름 재주가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게 되었다. '나도 역량을 살려 무언가를 할 수 있겠구나' 하는 자신감이 생겨났다.
2020년 3월, 막학기에 돌입했다. 학기 초 알차게 세운 계획은 '졸업 전 취업하기'였다. 대외활동을 하며 알게 된 기업에 애정이 생겨 꼭 그 기업에 취업하고 싶다는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회사의 위치는 집에서 기차와 전철을 합해 2시간은 넘게 가야 하는 거리였지만 '아무렴 뭐 어때? 내가 가고 싶은 회사 가기만 하면 되지'라는 생각이었다. 1년 동안 자격증도 따고, 여러 가지 활동도 하고, 상도 탔겠다 자신감은 이미 하늘을 뚫고 우주로 날아갈 기세였다.
하지만 어디 취업이 쉽던가. 3번 이상 면접 전형에서 불합격을 하다 보니 하늘을 찔렀던 자신감은 점차 그 생기를 잃어갔다. 또다시 맘 속이 허전해왔다. 정확히는 불안했다. 분명 학교만 다닐 때에는 몰랐던 새로운 재능도 발견한 것 같았는데 왜 나는 계속 떨어지는 걸까. 말을 잘 못했나? 역량을 믿었던 내 생각이 오만했던 건가? 아니면 사실은 다른 사람에 비해 못하는 실력인 걸까? 졸업은 다가오는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만 갔다.
그때였던 것 같다. 문득 '균형'이라는 말이 생각났던 것이. 나는 내 앞날에 대해 꽤 구체적으로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진학 결정도, 진로 결정도 어렵지 않았었다. 원하는 과에 갔으니 그저 열심히 배우고 쌓아 취업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하면 할수록 내 길이 맞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이에 또 새롭게 해보고 싶은 일들도 생겨났다. 바로 '출판'. 얼른 분야를 정해 대차게 밀어붙여야 하는 시기에 도전해보고 싶은 게 생기다니. 그야말로 이도 저도 아니었던 상황에 딱 생각난 키워드였던 셈이다.
'다들 하고 싶은 거 하면서 행복하려고 공부하고 노력하는 건데 정말 왜 쉽지가 않은 걸까'
'나는 왜 이제야 갈팡질팡하고 있는 건가'
'왜 자꾸 조급해지고 남들과 비교하게 되는 걸까' 하는 복잡한 생각들을 정리하려 적은 글이었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균형을 이룬 삶을 살고 있는가
그 때나 지금이나 명쾌하게 해결된 것은 없다. 여전히 나는, 내가 행복할 수 있는 균형을 찾아 나아가는 중이다. 지금은 그 무게의 추가 '불안함'에 기울어져있지만, 그 균형을 잡고자 비틀거리면서도 두 팔을 양 옆으로 쭉 뻗어 무너지지 않게 노력할 것이다. 매일 각자만의 균형을 위해 열심히 나아가는 모든 이들을 응원하고, 나와 다짐하며 오늘의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