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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령 Jun 15. 2023

하늘에서 글쓰기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 곳에서 펼쳐지는 단어들



오랜만에 느끼는 짜릿한 이륙

그래, 바로 이맛이지...!


징글징글하게도 길었던 코로나 팬데믹 3년을 뒤로하고 드디어 나에게 해외여행이라는 기회가 돌아왔다. 동생과 함께하는 두 번째 해외여행. 이번 여행의 목적지는 바로 일본이다. 2019년도에 떠났던 유럽여행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예자매의 첫 자유여행이라는 점이다. 워낙 급하게 일정을 잡긴 했지만, 이미 일본 자유여행의 경험이 있는 동생의 등에 찰싹 업힌 채 부랴부랴 준비한 여행. Anyway! 뭐 어때, 오히려 좋아! 헤매더라도 경험이 되겠지 뭐! 길은 잘 찾아갈 수 있을지, 날씨는 좋을지 등 불안한 마음이 80%였지만 둘이라서 괜찮았다. 그렇게 우리는 출국수속을 마쳤다.


일찍 도착했음에도 불구하고 혹여나 창가자리를 놓칠까 정신없이 뛰어가서 자리를 예매했다. 내가 창가자리를 고집하는 이유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작은 창문 밖으로 유유히 흘러가는 광활한 구름들을 보는 재미, 두 번째는 글을 쓰기 딱 좋은 자리이기 때문이다. 지난 여행을 통해 나는 하늘 위에서 글 쓰는 맛을 알아버렸다. 10시간이 넘는 비행에 좀이 쑤시고 몸이 뒤틀리던 순간 푸르르던 하늘은 어느덧 밤처럼 까맣게 변했고, 멍하니 음악을 들으며 옆으로 쪼그려 하늘을 보던 나는 이윽고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이런저런 것들이 떠올랐다. 아무도 나를 찾지 않고, 아무도 나를 부르지 않고, 방해받지 않는 하늘 위에서 오로지 음악과 하늘과 고요함 속에서 글을 쓸 수 있다는 게 이렇게 좋은지 몰랐다. 소중한 사람들이 떠올랐다. 그들에게 들려줄 이야기를 적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번 여행도 마찬가지였다. 2시간 10분 정도의 비교적 짧은 비행이지만, 떠오르는 것들을 쓰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비행기가 활주로를 따라 두두두두 점차 속도를 내며 내달렸다. 곧이어, 붕-하고 떠올랐다.

그래, 바로 이맛이지! 여행에 대한 모든 설렘을 안고 두둥실 떠오르는 이 순간을 너무나도 기다려왔다. 방향을 틀며 회전하는 비행기를 따라 함께 기울어지는 몸, 멀어졌다 가까워지는 하늘 아래의 모든 것들. 저 앞에서 탁 트인 하늘을 보고 있을 조종사가 내심 부럽다는 생각을 하며 나는 작아지는 육지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륙할 때는 흐렸던 하늘이 구름을 뚫고 최고지점에 오르자 푸르른 하늘이 되었다. 자, 이제 사색에 잠길 시간이다.






나에게 하늘이란

당신에게 하늘은 어떤 존재일까요


"사람들이 다 자는데?"

의문에 찬 목소리로 동생에게 작게 속삭였다. 동생이 내 말을 듣고 두리번거리며 주변을 살피더니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엥, 그러게 진짜 다 자네?"

'이토록 설레이는 창밖 풍경을 두고 어떻게 이륙한 지 몇 분 만에 잠이 드는 거지?' 생각했다. 창밖에는 눈부시도록 파란 하늘이 펼쳐져있는데! 나에게는 또 언제 보게 될지 모르는 하늘이라 더욱 애틋한 건가 싶었던 순간이었다.


여행이 끝나고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사람들은 어떤 시간을 보내고 있을까 관찰모드에 들어갔다. 눈을 감고 음악을 감상하는 이, 영상을 시청하는 이, 창문 밖에 펼쳐진 드넓은 하늘 위를 감상하는 이. 좁은 비행기 안에는 각자 자신만의 방식으로 채워지는 시간들로 가득했다. 나는 비행기에서 하는 일의 절반이 '창문 밖을 감상하는 일'이다. 간혹 창가자리를 놓쳤을 때, 옆사람이 창문을 닫아버리면 아쉬워하는 1인이 바로 나였다. 누구에게는 흔하게 접하는 하늘일 수도, 누구에게는 쳐다보기 무서운 하늘일 수도 있겠지만 내겐 그저 기약없는 날들 속에 한 번씩 볼 수 있는 귀한 하늘이었다. 육지에 있을 때는 쉽사리 생각해보지 못했던 하늘 위. 그 위를 날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신기한 일인가. 비구름이 빽빽하던 육지와 눈부신 햇살이 내리쬐던 구름 위, 그 간극을 알게 되던 순간 나는 하늘이라는 매력에 더욱 빠져들게 되었다.


하늘을 보며 느끼는 의미는 저마다 다를 것이다. 유난히 보고 싶은 사람이 생각나는 하늘일 수도, 그냥 다른 나라로 이동하기 위한 하나의 도로와 같을 수도, 처음 보는 구름 위의 세상에 넋을 놓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그 다양한 의미 중, 나에게 하늘은 사색을 펼칠 수 있는 끝없이 넓은 공간이 되었다.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다는 것이 가장 큰 메리트! 휴대폰을 울리는 모든 것들을 뒤로하고 오로지 나의 내면에 귀 기울일 수 있는 귀한 시간이 되었다.


각자마다 글을 쓸 때 집중이 잘 되는 장소와 분위기가 있을 것이다. 나의 경우 야심한 밤, 주황빛 조명 아래 펼친 작은 책상 위가 바로 그곳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나에게 하늘 위에서 쓰는 글쓰기가 어쩌다 한 번씩 먹는 특별한 음식, 그래서 더 감질나고 생각나는 그런 선물 같은 공간이 되어주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지하철에서 고개를 푹 숙이고 핸드폰만 보기보다는 내 앞에 앉아있는 사람들, 풍경들을 관찰하는 시간을 보내곤 해요. 저 사람은 뭘 하러 가는 길일까, 저 사람은 어떤 하루를 보냈길래 저렇게 깊이 잠에 들었을까. 핸드폰만 보며 가는 것보다는 이렇게 상상하고 관찰하면서 가면 좀 더 창의적인 사람이 되는 것 같아요."


어디선가 들었던 이 말의 출처가 잘 기억나지 않을 만큼 오랜 시간이 흐른듯하다. 이 말을 들은 후로부터 나는 지하철에 타거나, 버스를 타게 되면 눈에 스치는 것들을 관찰하게 되었다. 다시는 보지 못할 사람들 혹은 지나가는 사물들에 불과하지만 나만의 생각들을 펼쳐보고 눈에 담으니 평범하고 지루한 일상들이 재미있게 보이기 시작했다.


'오늘은 날씨가 기가 막히게 좋네?'

'길가에 줄지어 심어져 있는 저 나무들는 누가 다듬었나 엄청 정갈하네?'

'여행철이 돌아왔구나, 다들 캐리어를 들고 어디론가 향하는 길인가 보구나'

터무니없고 하찮은 생각이라 생각돼도 괜찮다. 그냥, 언제든 볼 수 있는 작은 모니터 속에만 갇혀있지 않고 스쳐갈 수 있는 모든 것들에 작은 의미를 두는 것만으로도 생각을 말랑하게 하는 데에 도움이 되었으니 말이다.


언젠가 비행기를 타게 될 일이 있다면, 당신에게 하늘은 어떤 감정들을 안겨주는지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 몇 초에 스치는 잠깐의 설렘이라도 좋으니, 그렇게나마 당신에게 어떠한 감정을 주었다면 훗날 문득 떠오르게 될 추억이 될지도 모르니 말이다.






Ps. 다음 주에 오랜만에 가족들과 다낭으로 떠난다. 초등학교 때 중국에 다녀온 이후 10년을 훌쩍 넘겨 다시 떠나게 된 해외여행. 4시간 30분 남짓되는 비행시간에 이번에는 어떤 것들을 끄적여볼지 설레는 날들을 보내고 있다. 이번 여행에서도 소중한 영감들을 얻게 되길 바라며, 이만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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