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내 갑질, 적성에 맞지 않던 일들을 지나… 유튜브 편집자가 되다
'너처럼 아무것도 할 줄 아는 사람은 못해…?' 나 자신은 내가 가장 잘 알아!
지금은 그 상황을 이해하지만, 당시의 나를 돌이켜보면 이미 자존감은 무너질 대로 무너져 있었다. 워라밸이 붕괴된 회사생활을 하며, 어떻게든 언론고시에 붙어보겠다고 아등바등한 세월만 3년. 나는 그 3년의 시간 동안 나 자신을 지독하게 미워하고, 또 원망해 왔었다. 그렇게 그 시절의 아집을 내려놓고, 나의 새로운 길을 향해 나아가겠다고 다짐했던 첫 번째 직장에서 들은 말이 '너처럼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이라는 말이었다.
그 팀장님 입장에선 그 말이 너무나 당연한 것처럼 보였을 테다. 광고회사에 대해선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그 이전에 병원 홍보팀에서 근무하다, 이십 대 후반에 들어서야 광고회사에 들어왔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때, 나는 마지막 남은 희망이 있었다. 그래도 3년간 언론고시를 준비하면서 막연하게 공부만을 했던 것은 아니었다. 틈틈이 영상공모전을 준비했고, 병원 홍보팀에서 근무하며 SNS 마케팅에 대해 독학으로 공부했던 나는, 이제 나의 역량을 '홍보'쪽으로 펼쳐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전 직장에서 갑질을 당하며 버텼다고 한들, 그것이 그저 허송세월로만 기억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3년의 강소 병원 근무 경력과 다큐멘터리 장관상 수상은, 내가 붙잡을 수 있는 마지막 희망이었다.
실낱같은 희망과 함께 피어오른 인내의 꽃
내 적성관 맞지 않았던 광고회사의 AE를 뒤로하고, 이직을 하기 위해 새로운 회사를 찾았다. 병의원 컨설팅 회사였다. 거의 한방병원을 위주로 하는 컨설팅하는 회사였지만, 그 지역의 굵직하고 큰 한방병원과 요양병원을 관리하는 꽤 규모 있는 회사였다. 그곳에서 유튜브 영상을 만들고 채널을 관리하는 사람을 모집하는 공고를 냈다. 유튜브? 생소하진 않았다. 그때 막 유튜브가 유행하던 시기였고, 사람들은 너도나도 유튜브 채널을 팠으니까.
나는 나름대로의 희망을 품고 그 회사에 지원했고, 컨설팅 회사에서는 내게 면접을 보러 오라고 연락을 주었다. 하루 연차를 써서 찾아간 컨설팅 회사의 사옥 앞에, 나는 살짝 기가 죽었다. 각종 오피스 단지에 모여있던 그곳은, 점심시간이면 모두 사원증을 걸고 카페에서 커피를 테이크아웃해 가지고 나오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그리고 칸막이 사이사이, 직원들의 일하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깔끔한 오피스룩을 입은 사람들이 회의실에서 나오고 있었다. 이전에 강소병원에서 총무부 유니폼을 입고, 광고회사에서는 내 능력에 대한 회의감을 안고 살아가던 나의 풍경과는 다른 풍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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