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이 열리는 소리보다 먼저, 찬 기운이 상담센터 안으로 스며들었다. 현관에 매달아 둔 작은 방울이 바람에 부딪혀 ‘짤랑’ 하고 몸을 떨었다. 림은 머그잔을 내려놓았다. 복도 끝 유리문 너머로 까만 목도리에 턱을 묻은 남자가 천천히 들어왔다. 두껍게 압축된 안경알이 그의 눈동자를 작게 줄여 놓았고, 눈썹과 속눈썹에는 밖의 눈발이 아직 다 녹지 못한 채 반짝였다.
“안녕하세요.”
그는 문턱에서 말을 꺼내기 전에 먼저 숨을 고르는 사람 같았다. 마치 물 밖으로 올라온 잠수부처럼 조용히, 길게 내쉬고 나서야 “상담… 예약한 현입니다”라고 말했다.
림은 자신의 오른손 검지를 컵 손잡이에 올린 채 멈춰 있었다.
그 순간이었다. 림은 무의식적으로 그의 둘레를 보았다. 곁에 서 있는 어머니, 아이, 택배기사의 파동들은 익숙한 리듬으로 흘렀다. 바깥의 악천후에도 불구하고 카운터의 직원은 희끗한 피로의 회색을, 대기실의 아주머니는 누그러진 골의 초록빛을, 복도의 관식 화분은 물을 준 직후처럼 잔잔한 빛의 무늬를 내보였다. 그런데 현의 어깨선에서부터 바닥으로 이어지는 공간만은—아무것도 흐르지 않았다. 물결이 멈춘 수면, 아니 수면조차 없는 공백. 거기에는 색도, 윤슬도, 굴절도 없었다.
공기만이 지나가는 통로처럼, 현을 중심으로 주변의 파동들이 미세하게 휘어 들어가다가 그 둘레에서 빛을 잃었다. 빛이 빨려 들어가며 흔적을 남기지 않는 블랙홀의 가장자리처럼. 림은 놀란 듯 두 눈을 크게 뜨고 현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현도 동그랗게 뜬 눈으로 림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림 주변을 바라보고 있는 듯했다.
림은 눈을 가늘게 떴다가, 곧 표정을 정리했다.
“현 님, 맞으시죠? 이쪽으로 오세요.”
림의 상담실 안으로 들어온 현은 신발 바닥의 눈을 두어 번 털고, 모자를 벗어 왼손에 모아 쥐었다. 장갑을 벗는 동작이 어딘가 서툴렀다. 외투 걸어드릴까요? 림의 말투에도 현은 어쩐지 어딘가 어색하고 불안한 모습이었다.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 현은 림에게 외투와 모자를 건네고 손가락으로 콧등까지 내려온 안경을 쓸어 올렸다. 그는 상담실 문 앞에서 잠깐 멈추고, 벽면의 안내문을 훑었다. 문자를 읽는 속도가 한참 더뎠다. 현의 안경알의 두께는 엄지손톱 크기만큼 두꺼웠다.
상담실 문이 닫히자 외부의 소음은 얇은 천을 사이에 둔 것처럼 가라앉았다. 림은 탁상 위에 놓여 있던 캘린더를 뒤로 밀고, 노트를 펼쳤다. 펜의 심이 종이에 닿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그러나 현의 앞에서는 그 소리마저 잠깐 사라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의 둘레로 기류가 꺼지는 지점에서는 —마치 보이지 않는 블랙홀의 곡선 같은— 소리마저 빨아들이는 듯했다. 곡선이, 없어? 림은 흔들리는 눈동자로 생각했다.
“어떤 이유로 오셨나요?”
림의 차분한 목소리에 현은 말없이 림을 빤히 쳐다보았다. 현이 무엇을 보고 있나 했는데, 역시 림의 주변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 호기심 어린 시선, 왠지 알 것 같았다. 그것은 마치 림이 처음 사람 주변의 파동을 보던, 어린 시절 림의 모습과 흡사했다. 현 님? 림의 되물음에, 현은 두 눈을 깜박이며 동그랗게 떴다. 네? 오늘 어떤 이유로 오셨냐고 물었습니다. 림의 물음에 현은 목을 가다듬었다.
"눈이… 잘 안 보여요. 더 정확히는, 보는 것 같은데… 늘 안개가 낀 것처럼요. 검사에선 이상 없대요. 그런데…."
그의 횡설수설한 말이 한참 이어졌다.
"잠시만요, 현 님. 그럼 지금 앞이 잘 안 보이신다는 말씀이신가요?"
횡설수설하던 그는 림의 물음에 말을 멈췄다. 그리고 이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계속 말해보세요. 림이 이어 말했다. 그러자 현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괴로운 듯 고개를 저었다. 림은 그런 현을 한참 바라보았다. 정말, 정말 없다. 아무리 살펴봐도, 현의 주변에 파동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요즘은 사람들이 하는 말이… 그냥 귀에 박혀요. 아, 그건 아니죠. 들리는 건 아닌데… ‘살인마’ 같은 단어가… 자꾸 떠올라요.”
현이 힘겹게 말을 꺼냈다. 그러면서 눈치를 보듯 림을 흘끔 쳐다보았다. 림은 현이 말한 증상을 들으며 종이에 무언가를 적었다.
현은 양손을 무릎 위에 포개었다. 목도리에서 빠져나온 털실이 손등에 붙었다가 떨어졌다. 이내 결심한 듯 조심스럽게 말을 내뱉었다.
“제가… 엄마를 못 지켰거든요.”
그는 아주 천천히 말했다.
“그날만 아니었으면, 내가 방에만 있지 않았으면….”
이어지는 문장은 입술 사이에서 부서졌다.
“그래도… 나가 보려고요. 오늘처럼요.”
방 안의 시계 초침이 한 칸 움직였다. 림은 그의 말 끝을 기다렸다. 그 기다림 속에서도 현의 둘레는 텅 비어 있었다. 모든 진심이 형태를 갖추기 전에, 닿을 곳을 잃고 무력해지는 느낌. 림은 자신의 시선에 잡히지 않는, 어쩌면 무의식을 따라 지나갈지도 모를 낯선 기류를 아주 조심스럽게 살폈다. 타인의 파동은 종종 사람의 언어와 대화가 맞닿은 곳에서 정직해졌다. 초조는 붉은 지그재그로, 슬픔은 깊은 청의 장력으로, 무관심은 무색의 얇은 물비늘로. 그런데 현은—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현의 공백을 응시하면, 림 자신이 기댈 기준점이 흐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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