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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지 Feb 06. 2020

다정함이란 말의 깊이를 좋아한다.

그 말 하나로 나는 나무처럼 아주 오래 숨 한번을 내쉴 수 있을 것 같다

다정함이란 말의 깊이를 좋아한다.
지난밤 내가 적어낸 편지의 낱자들이나, 내가 없는 동안 말라갔을 나뭇잎의 파리함이나, 지금은 비어버린 어떤 따뜻한 상자들 안에도. 다정함이 지나갔던 자리엔 언제나 그 온기들이 스쳤던 흔적이 남아있다.


어떤 다정함은 아주 깊었고, 어떤 다정함은 조금 얕았겠지만, 나는 지나간 그 다정 안에서 깊음을 알 수 없다. 

그저 다정했던 것, 다정한 마음을 받았던 것. 

체온과 비슷한 것 같아. 몇 도의 온도로 따뜻했는지 나는 명확히 알 수 없지만, 손을 잡아줘서 따뜻해. 품을 나눠줘서 따뜻해. 나는 그 때 그래서 따뜻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처럼.


그래서 나는 다정의 깊이를 좋아한다. 깊이를 알 수 없어서 좋아한다.



어제는 한강의 책을 읽었고, 나무들은 하루에 딱 한차례 호흡한다는 문장을 봤다. 해가 뜨면 길게 길게 햇빛을 들이마셨다가, 해가 지면 길게 길게 이산화탄소를 내쉰다고. 그토록 참을성있게 긴 숨을.
어쩌면 그렇게 자연은 경이로울까. 어떤 믿음으로, 어떤 결심으로. 


누군가에게 다정하기가 얼마나 번거로운 일인지 안다.
깊이를 재지 못하는 그 마음을 한조각 나눠준 것으로, 나는 나무처럼 아주 오래 숨 한번을 내쉴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지금 아주 천천히 그 마음들을 들이마시고 있나보다. 그래서 자주 행복한가보다. 그러니 그 행복에 불안해하거나, 행복해선 안된다고 자책할 필요는 없다고. 아주 천천히 내쉴 준비를 아주 천천히 하고 있는 것 뿐이니까.

12시가 지났다. 양파에 나쁜 말을 하면 썩어들어가는 실험을 했던 것처럼, 더운 여름에 소중히 마음을 담았던 화분은 거의 다 말라버렸지만. 사실 좋은 말을 해준 양파도 비슷한 형태로 물러버렸던 것 같지. 

어차피 무를거라면 난 마음껏 다정하기로, 다정 안에서 자주 행복한 마음을 나눌거라고.


내가 직접 말해주지 못하는 날들에도, 오늘의 다정이 남아 오래 오래 곁을 행복하게 머물러줬음 좋겠다고, 

그렇게 기도하는 26일이 됐다.



26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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