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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련화 Aug 11. 2019

그림책을 다시 생각하다

한번 더 엄마가 될 준비를 시작하다

 선명한 두줄이었다. 너무나 기다려 왔던 순간. 하지만 나는 조금 당황스러웠다. 지난밤에 목감기를 심하게 앓았고, 아침에 병원을 다녀온 터였다. 엉덩이에 야무지게 주사도 맞았고, 오전엔 약봉지도 하나 털어 넣은 뒤였다. 약봉지를 뜯어 입 안에 훅 하고 넣는 순간, 뭔가 찌릿하는 느낌이 들었다. 물을 한 모금 마시고 큰 숨을 들이쉬며 꿀꺽 삼키는데, 왜 그랬을까. 임신 테스트기를 사 와야겠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그냥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신기하게도 누군가 내게 속삭인 듯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남편에게 저녁에 임신 테스트기를 사 오라는 연락을 남겼다.

 "지난주에 아니라고 했잖아. 아직 의심스러워?"

 "응. 왠지 느낌이 그냥 그래. 한번 더 사 와봐요."


 둘째를 기다리는 마음에 일주일 전, 이미 임신 테스트를 했었다. 이번 달에는 왠지 느낌이 좋다며 남편이랑 너스레를 떨었다. 하지만 결과는 외로운 한 줄. 나는 시무룩해했고, 마침 여름휴가를 핑계로 모여있던 친정식구들 모두 머쓱한 웃음을 지었다.

 "에이~ 마시자! 다음 달을 노려보지 뭐!"

 그 날 나는 새로 나온 맥주 맛이 아주 일품이라며 연거푸 두 잔을 들이켰다. 그런데 이제 와서 임신이라니. 임신 테스트기의 문제인가. 내가 너무 성급했던 탓일까. 아니면 녀석이 조금 느릿느릿 우리에게 온 걸까.


 녀석이 내게 감기약을 그만 먹으라는 메시지를 보낸 것인지, 내가 다시금 임신의 징후를 알아챈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연거푸 해본 임신 테스트기는 거짓말 같이 선명한 두 줄을 보였다. 둘째는 그렇게 우리에게 왔다. 첫째 때의 마냥 설레던 기분과는 달리 조금은 차분하고 조용한 기분이 들었다. 히죽히죽 웃어댔던 첫째 때와는 달리 자꾸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게 되었다.

 "오빠, 둘째가 생겨서 부담되고 그래?"

 "아니. 그런 건 없는데... 여보는 어때? 너무 걱정하지 마, 잘할 수 있을 거야."


 둘째가 생기면 우리의 생활은 또 얼마만큼 변하게 될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우리 부부가 단출한 2인 가족이었던 그 시절, 우리는 엄마 아빠가 되어 살아가는 생활을 10분의 1도 상상하지 못했던 것 같다. 마냥 기다리고만 있었다. 그저 좋았고, 설레기만 했다. 얼마만큼 힘들지, 또 얼마만큼 행복할지는 몸으로 부딪혀 알게 된 것들이 많다. 아마 둘째를 키우는 생활도 그렇겠지. 지금보다 더 많이 힘들고, 더 많이 행복할 것이다. 그 정도를 가늠할 수 없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모르기에 더 기다려지는 것일지도.


 내 마음이 달라서일까. 처음으로 둘째를 내게 보여주는 의사 선생님도 왠지 무덤덤하고, 내게 산모수첩을 건네는 간호사 선생님도 뜨뜻미지근한 느낌. 둘째의 존재를 확인하는 감동적인 순간이 이렇게 감기 진료받듯이 맹송맹송한 것인가. 물론 나 또한 뱃속에 자리한 녀석에게 관심을 두기보다 진료실 문을 나서며 첫째가 어디 있는지부터 먼저 살폈다. 아빠 품에 안겨 진료실 앞 대기의자에 앉아있는 아들을 보고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러고 보니 내 마음가짐부터 확실히 다르긴 한 것 같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이런저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채웠다. 나름 첫째를 가지고 있을 때는 태교라는 것을 고민했다. 충분히 쉬었고, 좋은 것들만 먹었고, 좋아하는 책도 많이 보고 따뜻한 것들을 많이 보러 다니러 노력했다. 그런데 둘째에게 그런 관심을 똑같이 줄 수 있을까. 행복한 얼굴을 하고 따뜻한 마음을 가득 담아 첫째랑 놀아주는 것이 태교의 전부가 될까 봐 조금 걱정이 되었다. 한참 뛰어놀고 호기심 많을 두 돌짜리 남자아이. 저 아이 하나를 돌보기에도 하루는 그리 넉넉하지 않은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래, 그림책은 어떨까?


 문득 그림책 읽기를 좋아하는 첫째와 그림책을 읽으면서 태교를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책 읽어주기라면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오로지 첫째를 위한 시간도, 또한 뱃속에 있는 둘째만을 위한 시간도 아니었다. 첫째를 무릎에 앉히고 그림책을 읽는 동안만큼은 두 아이를 함께 보듬을 수 있지 않을까. 엄마의 욕심일지 모르지만, 그림책이라면 육아와 태교를 모두 챙길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첫째 아이와 함께하는 우리의 아가 마중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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