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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련화 Jul 10. 2018

흔한 엄마들의 착각

조리원 커뮤니티

 하루 종일 집에서 아기랑 둘이 있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아기가 너무 어릴 때는 마음 놓고 외출을 할 수도 없는 일이니 결국 엄마들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아기와의 시간에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나 또한 하루 종일 시윤이와 같이 지내면서 혼잣말이 많이 늘었다. 처음에는 집 안에 적막이 흘렀다. 애써 어색한 분위기를 이겨내 보려고 동요도 틀어놓고, 소리 나는 모빌도 틀어놔 보았다. 하지만 하루 종일 이야기를 하지 않고 지내는 건 오히려 내게 고역이었다. 그 뒤로 나는 조금씩 시윤이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시윤아, 빠빠 먹을까?"

 "시윤아, 좀 더운 것 같아? 엄마가 시원하게 해줄까?"

 "우리 시윤이 쉬했나 볼까요? 엄마가 기저귀 갈아줄게요! 아이고~ 우리 시윤이 딸꾹질하네!"

 처음에는 대답도 없고, 눈도 채 뜨지 못한 아기를 상대로 혼잣말을 한다는 게 어색해서 목소리가 자꾸 작아졌다. 괜히 혼잣말을 하고 있는 내가 애처로워 보이기까지 했다. 그런데 차츰 시간이 지나고 그 생활에 익숙해지면서 나는 점점 수다쟁이 엄마가 되어가고 있었다.


 "시윤아, 엄마가 쓱싹쓱싹 설거지를 하지요. 우리 아들, 엄마 보고 있어? 엄마가 이거 다 하고 나면 우리 아들 안아줄게요! 잠깐만~"

 얼마 되지 않아 나는 혼잣말은 물론이고, 콧노래도 흥얼거리고 동요까지 불러주는 수준에 이르렀다. 이쯤 되니 육아가 내 적성에 맞는 것인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30대 중반에 드디어 내 적성을 찾게 된 건가. 평생 독신으로 하이힐 높이를 높여가며 멋들어진 커리어 우먼으로 살겠다던 다짐은 내 적성을 미처 알기 전의 헛된 꿈이었나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하루 종일 그렇게 아기와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하다 보면 아기의 작은 옹알이에도 의미를 자꾸 부여하게 된다. 뭐라고 설명할 수는 없으나 엄마의 느낌으로 아기가 지금 내게 무슨 말을 하고 있구나라는 것이 느껴질 때가 있다. 물론 우리 모자와 가장 가까운 사이에 있는 남편 조차 말도 안 된다며 손사래를 쳤지만, 분명 엄마만이 느낄 수 있는 무언가가 있었다. 아들과 엄마 사이에만 통하는 일종의 텔레파시 같은 것이라고 해야 할까.


 우유를 방금 먹고 돌아섰는데 아기가 슬픈 눈으로 나를 쳐다볼 때가 있다. 처음에는 수유 텀이 아직 되지 않았다며 외면하곤 했는데, 왠지 시윤이의 눈은 아직도 배가 고프다며 소리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아직 배가 고프다... 엄마~ 오늘은 좀 더 먹으면 안 될까요?'

 혹시나 싶어 분유를 평소 먹던 양보다 조금 덜 타서 가져가면 시윤이가 아기새처럼 입을 딱딱 벌리며 젖병을 기다리고 있다. 준비한 분유량도 어찌나 그리 딱 맞는지, 마지막 한 방울까지 배부르게 먹고 잠든 녀석을 보면 절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엄마의 촉은 오늘도 나이스! 잠이 올 때, 왠지 엄마한테 안기고 싶을 때... 우리 모자는 말은 나누지 않았지만 뭔가 통하는 느낌적인 느낌으로 의사소통을 하고 있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었다.


 "오빠. 시윤이랑 나랑 말이 통하는 것 같아."

 "응? 시윤이가 벌써 말을 한다고?"

 "아니... 말을 한다는 게 아니라 눈빛으로 통하는 그런 거 있잖아. 나만의 착각인 건가?"

 "응. 여보만의 착각이야."

 ";;;;;;;"


 아기를 키우다 보면 엄마가 하루에도 열두 번 거짓말쟁이가 된다더니 내가 딱 그 꼴이었다. 나와 시윤이 사이의 감동의 순간들은 다른 사람들에겐 그저 흔한 엄마만의 착각으로 밖에 비치질 않았다.

 다행히 그 흔한 엄마들이 내 곁에 있었다. 내 투정과 푸념을 이해해주는 그녀들이 곁에 있었다.

 "론이가 1시간 반마다 딸꾹질을 해서 쭈쭈를 득템하고 있어요!"

 "시윤이랑 똑같구먼. 딸꾹질하면 쭈쭈 주니까."

 "이제 좀 알아듣는 건지... 엄마 쭈쭈 안 나오는데 지금 잠 오니까 그냥 물고 있는 거지? 이러면 씩~ 하고 비웃는 거 같아."

 "ㅋㅋㅋㅋㅋㅋ"

 "유안이 재울라고 토닥토닥하고 있는데, 유안이 입이 씰룩씰룩! 뭘 아는 거 같아요."

 "엄마 재우고 유안이 혼자 파뤼 타임 하려고 하는 거 아냐? 엄마부터 재우기 작전 ㅋㅋㅋ"


 이젠 그녀들도 육아 베테랑이 되어 혼자서 끙끙 앓는 일은 점점 줄어갔다. 어쩔 줄 몰라 동동거리던 시간들도 점차 사라져 갔다. 엄마와 아기와의 보이지 않는 끈이 생기자 혼란의 시간은 점차 정리가 되어갔다. 마음속에 공간이 생기자 아무리 힘든 육아의 순간이라도 한 번쯤 웃어넘길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물론 그 내공은 고스란히 엄마의 수다로 이어지긴 했지만 말이다.

 사람이 모두 다르듯 아기들도 모두 달랐다. 아기들만의 사인이 있었다. 배고플 때, 잠이 올 때, 뭔가 불편할 때... 아기들이 보내는 사인은 각기 달랐지만 엄마들은 그 사인을 기가 막히게 알아차리고 있었다. 왠지 우리 아기가 이걸 원하고 있을 것 같은 느낌. 그 느낌은 거의 대부분 맞아떨어졌고, 그런 경험이 쌓일수록 엄마와 아기 사이에 든든한 애착관계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나는 이젠 잠든 아기에게도 조용히 혼잣말을 건네는 엄마가 되었다.

 "아가야, 네가 얼마나 예쁘고 사랑스러운지 아니? 엄마 아빠는 우리 시윤이를 너무너무 사랑한단다. 푹 자고 일어나면 엄마랑 맛있게 밥도 먹고, 재미있게 딸랑이 놀이도 하자. 엄마가 우리 아들 쭉쭉이 마사지도 해줄게! 좋은 꿈 꾸렴. 엄마가 우리 아기 옆에 있을게."

 엄마의 이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엄마의 나지막한 수다를 들었는지 시윤이는 배냇짓을 하며 잠에 들었다. 그 모습이 또 너무 예뻐 한참 동안을 아기 곁에서 떠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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