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렵지만 더 두려운척 하기.
나에게는 나를 용감하게 하는 친구가 있다. 새로운 세상에 과감하게 초대를 하기도하고 새로운 것들에 대해 나를 밀어버리는 친구다. 그런 와중 나는 항상 '안돼', '안됄꺼야', '그게 될 것 같아?'라는 부정적인 단어들로 그를 더욱 열정적이게 만들어버린다. 1년 전 나는 세네갈에서 임기를 마치고 모리타니 국경을넘어(100세파 짜리 보트를 타고 국경에 있는 강을 건너보고 싶었다.) 사하라 사막을 지나 모로코에 당도해 여행을하고 스페인으로 넘어가 프랑스, 동유럽 등을 여행하며 육로로 한국을 들어오는 여행들을 계획했다. 당연히 무서웠다.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나는 두려움에 매일매일 나를 설득하고 또 설득했다. 2년 전 30살을 앞두고 무언가 새로운 것들을 해보고 싶었다. 빅토리아 폭포에서 번지점프를 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몇달을 번지점프에 대해 검색하며 나를 더욱 두렵고 두렵게 만들었다. 그리고 뛰어내리 직전까지 나는 고민을 수십번, 수백번을 했다. 그리고 지은이가
"언니! 언제 여기 또 올지도 몰라요. 근데 후회안하는게 낫지않겠어요?"
그 말 한마디에 뛰어내리기로 결심했다. 뛰어내리고나서 직원이 나를 구제해주러 왔을 때 나는 그에게 물었다.
" 나 살아있니? 천국이니 여기?"
여튼, 육로로 여행을 하기로 한것을 엎어버리곤 그 용감하게 만드는 친구, 알렉스가 내게 남미로 초대를 했다. 우리가 생각한 예산은 각자 4000불씩. 4달을 여행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었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남미 4달동안 쓴 돈은 둘이 합쳐 4000불이 되어버렸다. 동남아를 순회하고, 한국을 여행하고 미국을 여행하고 나니 내가 쓴 돈은 비행기값 합해 5000불정도였다. 내가 가진것이 없어 남미에서 국제 미아가 될 줄 알았는데 오히려 돈이 남아 세계일주가 되어버린 것이다. 여행을 떠난 첫날 그 두려움을 잊을 수가 없다. 알렉스는 제대로 잠을 자지도 못했다. 우리는 두려움에 떨고 또 떨었다. 둘째날 알렉스의 대부가 결제해준 숙소에서 이틀을 묶었다. 그리고 나는 언어의 장벽에 또 턱하고 막히며 그 두려움은 더욱 엄습해 왔다. 길을 걷고 걸으며 동네 아이들과 어렵사리 수다를 떨기 시작했고 나는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하지만 내가 한숨을 내 쉬는 동안 내가 납치된 줄 알고 두려움을 증폭시키던 이가 있었다. 알렉스가 내가 이름모를 산골에서 말도 못하는데 사라져 납치된 중 알았던 것이다
다음 날, 차를 얻어 타고 아무도 없는 산 중턱에서 우리는 내려졌고 더이상 차는 오지 않고 비가 올 것만 같았다. 익숙하지 않은 20Kg의 배낭을 매고 고통의 걸음을 했다. 그날이 내가 이 여행에서 가장 후회하고 후회를 곱씹었던 날일테다. 하지만 차를 얻어타고 도착한 우리의 카우치서핑 호스트의 집에 도착했을 때는 눈물이 날 것 만 같았다. 히치하이킹으로 자기네 집에 오면 술을 대접하겠다던 안토니오, 그는 우리에게 독하디 독한 술을 대접하였고 대낮에 나는 기분좋게 취하며 그 여행을 적응해 가고 있었다.
여행을 마치고 나니 우리에게 남은 돈은 땡전 한 푼 없었다. 알렉스는 사기극에 가깝게 차를 아버지에게 팔아 조금의 생활비를 벌었고 나는 비상금으로 아껴둔 돈으로 전전해야하는 상황이 와 버렸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정말 돈을 벌어야하는 상황이 왔음을 알 수 있었다. 1년동안 생각 해둔 일자리가 있었지만 보기좋게 두번이나 낙방하였고 그는 샌프란시스코로, 나는 한국으로 돌아와 다시 아프리카로 떠날 생각만을 가지고 있으며 그 여행에서 그랬 듯 다시 상상할 수 없는 두려움이 엄습해오기 시작했다.
우리 삶에는 짧고 짧은 작은 여생들이 있다. 나에게는 카미노 산티아고의 삶과 세네갈의 삶, 그리고 이번 긴 여정의 삶을 예로 들 수 있을 것 같다. 모든 그 작은 삶들에는 시작점에 두려움이 강하게 엄습해 왔다. 하지만 끝내 내가 그 삶을 죽음으로써 마감할 때에는 완벽하게도 그 삶에 적응되어 있었다. 삶을 매번 끝낼 때마다 크디 큰 아쉬움과 눈물로써 마무리를 하지만 그 눈물속에는 새로운 삶에 대한 알 수 없는, 예측할 수 없는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알렉스는 샌프란시스코에 그 어떤 연고지도 없다. 내가 준 텐트를 가지고 가서 취직을 하기 전까진 집을 렌트하지않고 쓸 거라는 말에 새로운 삶이 시작 되었구나, 하고 또 두려웠다. 우리는 잘 알고있다. 시간이 좀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해 내리라는 것을. 까미노 산티아고를 걷기 시작하던 날 내가 900km를 완주 할 것이라 상상도 하지 못했다. 800km를 완주하고 아쉬움에 100km정도의 거리를 더 걸었다. 다이어트를 할 때 20Kg정도를 뺀 적이 있었다. 상상도 못했다. 내가 해 낼 것이라는 것을. 하지만 항상 우리는 해 냈고 성공을 맛 볼 수 있었다. 오늘 그의 샌프란시스코 캠핑 취업준비 투어이야기를 들으며 그의 미친 여정에 다시한번 나의 미침도 쏟아부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같이 들었다. 잦은 새로운 삶을 산다는 것은 정말 두렵고 나를 겁쟁이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두렵다고 강하게 표현하지만 결코 멈추지는 않을 것이다.
혼자선 결코 용감해 질 수 없었을 나에게
그를 포함하여 여럿 나를 용감하게 해주는 나의 친구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