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콩 Oct 07. 2016

길을 잃다

산티아고 까미노 그 길 위에서의 이야기

Rob에게서 연락이 왔다. 작년에 우리가 함께 걸었던 까미노 길을 다시 홀로 걷고 있다며. 올해는 작년에 함께 걸었던 그 길을 친구들이 잊지 못하고 몇 명이 홀로 다시 나선 일이 많았다.


"그래서, 산티아고까지 걸을 거야?"


"응 그리고 피스테라까지 걸을 예정이야. 빈, 작년에 묵시아와 피스테라까지 다 걸었지?"




 그의 말에 작년 봄, 묵시아에서의 그의 울음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우리는 묵시아가던 중 따로 걷기로 결심했었다. 비가 억세게 내렸고 나는 그를 떠나보냈다. 오랜만에 아무도 없는 길 위가 낯설면서도 반가웠다. 한참을 걷다 보니 길 위에 화살표들이 사라졌다. 아마도 길을 잃어버렸나 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작정 그 길을 따라 걷고 싶어 졌다. 저 멀리 보이는 바다가 보고 싶어 잘못된 길임을 알고서도 그냥 계속 걸었다.


 "에잇, 걷다 보면 어딘들 나오겠지. 지구는 둥그니까."


한참을 바닷길을 향해 걷고 있는데 그가 저 멀리서 내게로 걸어오고 있었다.


"알렉스 너 왜 거기서 걸어와?"


"우리 길 잃어버렸어."


"푸하하! 각자 걸었는데 같은 길에서 길을 잃은 거야? 우리가 운명적인 거야? 아니면 많은 사람들이 여기서 길 잃어버리는 거야?"


나의 유쾌한 웃음이 무색하듯 그는 매우 심각하고 지쳐 보였다. 결국 길을 찾아 묵시아의 알베르게를 찾았고 그는 이내 울음을 터트렸다. 나는 그에게 따듯한 차를 한잔 주곤 꼬옥 안아주었다.


나는 묵시아가 너무 좋았고 그곳에서 그가 울었다는 말에 Rob이 물었다. 그곳이 너무 좋아서 그가 울었느냐고,


"아니 그간 걸어온 길들 과 친구들이 떠올라서 감정에 복받쳐 울었을 거야. "



 처음에 길을 잃던 날 나는 사하군이었다. 공황장애라도 오듯 길 위를 떠나려 했었다. 홀로 고속도로 옆 막다른길에 다 닿을 때 그 기분은 참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어떤 용기였는지 나는 고가도로 위로 클라이밍을 해 올라갔고 일단 나의 위치를 파악해야겠단 생각에 높은 곳으로 또 높은 곳으로 올랐다. 하지만 내 눈앞에 펼쳐진 것은 허허벌판들뿐 친구들의 형형 색색 배낭들조차 보이지 않았다. 하필이면 한 달에 한번, 소중하지만 반갑지 않은 마법이 찾아왔고 기분과 컨디션은 바닥으로 향했다. 바로 그곳은 사하군이었다. 사람들에게 길을 물었고 물통을 하나 건네받아 사하군으로 갔다. 그날의 목표는 5키로가량 더 걷는 것이 목적이었으나 어떤 이유에서인지 세상 모든 것이 짜증이 나고 화가 났다. 할 줄 모르는 스페인어를 해가며 생리대를 구매하고 버스를 물었다. 스페인어를 못하는 나와 영어를 못하는 그녀는 그림을 그려가며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생리대 설명하는 것이 가장 어렵고 힘들었다. 슈퍼의 그녀는 버스가 끝이 났고 기차가 있을 것이라며 내게 기차역을 안내해줬다. 얼른 이곳을 빠져나가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기차역에 갔더니 내가 가려한 마을이 아닌 레온까지 간단다. 이렇게 되면 2일 치 걸어야 할 것을 기차로 한 번에 이동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려니 또 자존심이 상한다. 티켓팅을 하며 2시간남짓 남은 기차를 기다리며 기차역에 앉아 한참을 고민했다. 나는 왜 이 길을 선택을 했고, 나는 왜 사서 이런 고생을 하고 있고, 힘들게 번 돈으로 무얼 하는 것인가 뭐 이런 시시콜콜한 고민들이었던 것 같다. 어느 순간 이 길과의 싸움에서 자존심이 상한다는 생각에 기차표를 환불하고 멋들어진 호텔에서 자야겠다고 생각했다. 호텔들을 들어갔더니 리셉션에 아무도 없다. 몇몇 호텔들의 방문을 했지만 허탕 치긴 매 마찬가지였다. 점점 더 화가 나고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순례자들이 묵는 알베르게에는 죽어도 가기 싫었다. 그냥 편하게 욕조에 누워있고 싶단 생각만 했던 것 같다. 알베르게를 스쳐 지나가니 한 남자가 여기가 알베르게라며 나를 붙잡는다. 나는 알베르게를 찾는 것이 아니라며 온갖 신경을 곤두세웠다. 그리곤 그가 내 가방을 맡아줄 테니 가방을 내려놓고 호텔들을 찾아보라는 말을 했다. 그리곤 "챠오!" 이때만 해도 챠오라는 말이 중국어인 줄 알았다. 이태리어라고는 상상도 못 하였고 해외 경험이 그렇게 많지 않았던 나는 "중국인이 아니야!!!!!"라며 윽박질렀다. 가방 맡아준다, 호텔 찾아봐라 친절을 베푼 나에게 악을 쓰는 나는 얼마나 몰상식한 한국 여자애로 비쳤을지 상상도 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결국 사하군을 몇 바퀴를 돌고 돌아 허탕을 치고 돌아온 나는 홀로 방구석에 누워 울고 싶었다. 하지만 같은 방을 썼던 독일 여자아이들은 이미 안면이 있던 아이들이었다. 함께 걸으며 몇 마디씩 나누었던 아이들이라 다행이었다.


"밥 먹으러 갈래?"


"아니, 미안 고마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나 집에 가고 싶어."


"그럼 슈퍼라도 가지 않을래? 이제 주말이라 장 봐야 하지 않아?"


주말에는 많은 상점이나 레스토랑들이 문을 닫기 때문에 식료품들을 미리 구매해두는 것이 좋았다. 그래서 힘겹고 힘겹게 그녀들을 따라나섰다. 하지만 그녀들은 결국 나를 레스토랑으로 끌고 갔고 맛있는 저녁과 함께 와인을 부어라 마셔라 했다. 알베르게로 돌아온 나는 밀린 빨래를 세탁기에 넣고 기다렸다. 기분 풀리기 위해 부어라 마셔라 했던 와인 탓일까, 졸음은 쏟아지고 빨래는 끝날 기미가 없었다. 그때 내 가방을 맡아주며 '챠오'라고 했던 아저씨가 내게 온다. 본인은 아르헨티나 출신이며 이미 까미노 길을 모두 걷고 산티아고에서 리턴해서 돌아오는 중이라며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풀어놓기 시작했다. 반 수면상태에서 들었던 터라 그의 이름도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지만 그가 했던 한마디만은 기억이 난다.


"빈, 돌아가고 싶으면 돌아가도록 해. 이 길은 나중에 또 걸어도 되고 네 아이가 마저 걸을 수도 있어. 이 길에서 무얼 찾으려 하지 말고 이 길에 얽매이지도 마. 이 길은 아무것도 아니야. 사람들은 이 길이 삶이라고 생각하지. 이 길은 길일뿐이야. 하지만 이 길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네가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없는 거야. 아직."


 이 말 한마디에 다음날 길이 아닌 어딘가로 돌아가겠다고 마음먹었던 것 같다. 하지만 끝나지 않는 빨래에 취기에 잠결에 정신을 못 차리자 그는 내게 처음이자 마지막인 선물을 주겠다며 그대로 자러 들어가라는 말을 했다. 본인이 내 빨래를 다 널어주겠다며. 그리고 그의 이끌림에 나는 침대 속으로 들어갔고 다음날 그는 내 빨래를 다 널어놓곤 새벽같이 떠나버려 고맙다는 인사조차 하지 못했다. 나도 일찍 나와 마을 중심인 카페로 향했다. 카페에 도착하고 보니 등산스틱을 두고 온 것이다. 그렇게 마을 끝에 있는 알베르게로 다시 향했다. 어제부터 이 마을을 돌고 돌았던 것과 허탕 친 것들을 생각하니 이미 다음다음 마을은 갔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스틱을 챙겨 다음 마을에서 커피를 마시겠다고 다짐하곤 다시 길을 떠났다. 독일 여자아이들이 걱정된다며 함께 걷자는 말에 혼자 있고 싶다고 말했다. 그리곤 로냐는 멀지 않은 곳에 있으니 함께하고 싶으면 언제든 오라는 말과 도움이 필요하면 요청하라는 말을 하곤 떠났다. 그날따라 안개가 자욱했다. 음악소리도 이상하게도 내 마음을 자꾸 쿡쿡 쑤시는 듯했다. 걸으며 엉엉 울었다. 길을 벗어나고싶어도 벗어날 수 없었고 커피한잔 마음대로 못마시는 이 상황에 화가났다. 더욱 화가 난 것은 이 모든것이 나의 선택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었다. 음악소리에 더 기분이 처지는듯해 음악을 꺼버려도 눈물은 그쳐 지지 않았다. 한 시간가량 계속 울었다. 어디선가 휘파람 소리가 들렸고 그 소리에 자욱했던 안개가 걷어지는 것 같았다. 그제야 눈물이 그쳐졌다. 휘파람의 주인공은 캐나다에서 거주하고 계신 한인부부 두분과 한국의 우리집 뒤 목사님이었다. 간단히 커피 두 잔과 샌드위치를 사 먹은 나는, 그 날 무려 42키로나 걸었고 더 걷겠다는 나의 말에 마이클과 단비의 만류에 그만 걷기로 결정했다. 그의 말이 맞았다. 정말 걷기 싫었더라면 나는 그 등산스틱을 찾으러도 가지 않았을 테고 그냥 비행기를 타러 대도시로 가 한국으로 향했을 테지만 나는 그날 42키로를 걸었던 것이다.


길을 잃어버린다는 것은 내게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두려움, 공포, 자존심, 완벽하지 않은 답답함, 등등. 길을 걷던 어느 날 화살표만을 찾아다니며 걷고 있는 내가 화가 났다. 그만 걷고 싶어 졌다. 한국에서의 삶과 다를 빠가 없었던 것이었다. 당연히 고등학교, 대학교를 진학하고 취직을 하고 때 되면 시집을 가고. 내가 내 삶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나를 너무 괴롭게 했고 지치게 했다. 하지만 이 길에서도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없었고 그저 화살표만을 따라간다는 것이 화가 났던 것 같다.


"알렉스, 미안 나 그만 걸을래. 한국 가고 싶어. "


"너 오늘 아침부터 심각했어. 무슨 일인지 말해봐. "


"별로 말하고 싶지 않아. 그만 한국으로 가야겠어. "


"말해봐, 내가 들어줄게. "


잘 하지도 못하는 영어로 감정에 복받쳐 있는 상태에서 내 상황을 설명하는 것은 정말 힘이 들었다. 어찌어찌 알아들은 그는 내 손을 이끌고 화살표 방향이 아닌 다른 곳으로 향했다. 그리곤 직진, 오른쪽, 왼쪽 등의 선택을 내게 맡겼다. 길은 자꾸만 내리막길로 향했고 한참을 직진과 오른쪽, 왼쪽을 선택했고 이내 드넓은 벌판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 벌판은 많은 숲들로 둘러싸져 있었고 더 이상 넘어갈 수 없는 것으로 보였다. 그곳에서 한참을 낮잠을 잤다. 낮잠을 자기 전 그는 내게 한 가지 제안을 했었다.


"빈, 네가 뭘 말하는지 알꺼같아. 만약 네가 이 길을 걷는 것을 그만하고 싶다면 함께 그만두고 다른 곳으로 여행하자. 나는 사실 이 길을 끝까지 걷고 싶지만 네가 그만 걷고 다른 곳으로 가고 싶다면 함께해줄게."


낮잠을 자고 일어나니 이상하게도 너무나 개운했고 머리를 짓누르던 두통도 가셨다. 햇볕에 바람에 누워 쉬다가 나는 결국 돌아감을 선택했다. 한참을 내리막길로 내려왔더니 돌아가는 길은 지옥같이 힘들었다.  나의 짧은 반항을 뒤로 그렇게 우리는 다시 걷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그 후로 길을 잃는다는 것에 대한 의미를 버렸던 것 같다. 길을 스스로 잃어버리고 나보니 찾아가면 되는 것이고 잃어버린 길 위에 드넓은 벌판이 나를 기다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 같았다. 그래서 매일 나는 그에게 말했다.


"길을 잃어버리는 법을 가르쳐줘서 너무 고마워. "


이전 04화 두 선분의 교차점 인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