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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콩 Mar 15. 2017

두 선분의 교차점 인연

영화 라라랜드 후기

사랑을 하면서 내가 가장 노력하는 것은 나를 잃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를 잃고서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랑을 잃기 오히려 쉽기 때문이다. 사랑이 먼저가 아니라는 비난을 받을 수도있지만 나를 버리고서야 한 사랑은 사랑하는 이에게 부담으로 다가와 그 사랑이 변질되기 쉽다. 나의 연애에 있어서 언제나 최 우선은 우리의 관계이기 전에 내 자신이었다. 그리고 다행히도 그것을 각자 존중해주는 이들을 만나왔다. 관계에서 스스로가 최 우선일 뿐 사랑을 하지 않는것이 아니다. 사랑과 스스로의 존재에 대한것은 함께 이야기하기엔 이질감 혹은 모순이 있음을 미리 말하고 싶다. 길고 깊고 오랫동안 사랑하기 위해서 스스로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고 지켜가는 것이다.


라라랜드를 보며 나의 연애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세바스찬과 미아 서로가 서로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성장의 열쇠가 되어주었다. 그 누구보다 사랑을 했고 서로의 존재에 대해 인정하고 또 연인관계에 있어서 쉽게 마주할 수 있는 스스로를 잃어가는 것에 대해 두려워하고 걱정한다. 미아의 엄마로부터 안정적이지 못한 생활을 하는 세바스찬에 대한 걱정하는 통화 내용을 세바스찬이 듣게된다. 그리고 그 안정적인 삶때문에 원하지 않았던 음악장르의 밴드에 합류를 하고 바빠지자 미아가 이것저것 되물었고 결국 다툼시 시작되었다. 그런 세바스찬에게 미아가 정말 원하는 음악을 하냐는 질문에 세바스찬은 이렇게 말한다.


"니가 원한 줄 알았어!"


결국 그 밴드의 스케쥴로 미아의 첫 솔로 연극에도 참여하지 못하고 크게 싸우고 이별하고 만다. 우리 모두 관계에 있어서 배려를 하는듯 하지만 스스로를 잃은 희생은 결국 '너의 탓'이 되어버려 돌아오곤 한다. 희생이라는것은 스스로 합리화하여야하고 스스로 결정해야한다. 그것이 타인의 이유가 되어서도 안되고 나만의 믿음과 신념이 있어야 한다. 그 화살이 타인이 되는 순간 아름다운 '너를 위해'가 결국 '너때문에'로 변질되는 것이다. 그렇게 세바스찬이 선택한 길에 미아는 세바스찬의 스스로의 신념과 믿음을 잃어가는것에 슬퍼하고 두려워하고 걱정했다.


'책임'이라는 단어속에 우리는 행복을 포기하곤 한다. 그 행복을 위해 관계를 형성하고 함께 '책임'이라는 무게를 들고 걸어가는것이었는데 언젠가부터 주변의 몇몇 사람들을 속에 책임이 암덩어리처럼 불어나고 있는것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아이를 가지고 단란한 가정에서 행복하게 살길 바랬지만 주객이 전도되어 아이라는 '책임'의 무게로 하고싶지 않은 일을 하며 행복을 잃고 잦은 다툼과 싸움으로 관계를 마무리하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었다.


라라랜드에서 말한 관계에 있어서 누군가는 노력하지 않는 관계에 대해 무책임하고 무성의 하다고 한다. 사랑을 함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떠나보내는것에 대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논점에서 나는 떠나보내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의 자리에서 스스로의 길을 걷되, 함께 할 수 있는 길을 조율하는 것이다. 그어떤 희생도 있어서는 안되며 희생이 있더라도 서로가 희생으로 인지되지 않아야 한다. 아직 철없는 처자가 하는 말이라고 생각 되어질 수도 있지만 그것이 나의 연애에 있어서 관계를 맺는 방법이다.


살아가며 우리는 많은 희생과 배려를 하며 살아간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하는것은 그어떤 희생도 아니고 노력도 아니고 스스로를 위한 '선택'이어야만 하는것이다. 너를 사랑하는 나를 위해 너와 함께 있기위해 나를 위한 '선택'이어야지 후에 그누구도 탓하지 않는 것이다.


나의 관계에 있어서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다른 한가지는 노력하지 않는 것이다. 사랑하려고 노력하지 않고 잘 보이려 노력하지 않는 것이다. 이미 사랑하고 있다면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내 몸과 마음이 반응하기 때문이다. 연애뿐만 아니라 관계형성에 있어서 머리를 쓰지 않는 것이다.


이런 연애관에 있어서 나와 너무나 잘 맞았던 친구가 하나 있었다. 꼭 영화 라라랜드에서 처럼 세번의 우연처럼 그와 스쳤고 연애를 시작했었다. 만난 기간보다 떨어져 있던 장거리 연애기간이 더 길었던 친구였는데 라라랜드를 보며 그아이가 계속 떠올랐다. 그 어떤 연애에서보다 나를 성장시켜주었던 친구였고 나의 길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준 친구였다. 물론 그 친구가 나의 길을 찾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거나 그러진 않았다. 다만 그아이 존재만으로 그아이와의 관계에서 나는 무한대로 성장 할 수 있었다. 이별에 있어서도 세바스찬이 말했던 것처럼 서로의 것을 어떤것도 버리거나 희생하지 않으며 그자리에 있으며 지켜보자고 정리를 했다.  



영화 마지막에 미아가 다른 가정을 꾸리고 남편과 잠시 들린 재즈바에 세바스찬과의 마주함에 세바스찬의 연주와 함께 만약, 그 두커플이 잘 되었다면 가정하에 회상신이 있었다. 피아노 연주와 주마등처럼 흘러가는 그 장면속에서 나도 함께 상상했다. 만약 내가 세네갈을 오지 않았더라면, 그와 함께 할 수 있었더라면, 갖은 상상을 하며 내린 결론은 그것은 우리의 상상이었고 일어나지 않은 일이라는 것이다. 새로운 행복을 찾을 수도 있었겠지만 사랑하는 이의 옆에서 과거 나의 선택을 후회하며 사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은 너무나 속상하고 마음아픈 일인것이다.


예전에 법륜스님의 책에서 그런말을 본 적이 있다. 너를 사랑하는것이 아니라 너를 사랑하는 나를 사랑하는 것이다. 바다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바다를 사랑하는 나를 사랑하는 것이다. 이런 구문들이었던 것 같다. 너를 사랑하는 나를 잃고서야 어찌 너를 오로지 사랑할 수 있으랴. 다시한번 나의 성장에 도움을 주었던 그의 존재와 그와의 교차점에 대하여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미아의 캐스팅이 되고 세바스찬과의 관계 정리에 끝내자도 아니었고 그저 그 자리에 있자고 하며 영원히 너만을 사랑한다는 말의 의미를 조금 알것도 같았다.


여튼, 너무나 사랑하는 관계에서도 무조건적으로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을 다시한번 생각했다. 사랑하는 관계에서 함께한다면 더할나위 없이 좋겠지만 죽음이될수도 있고, 환경 혹은 두 선분이 교차점으로부터 함께 하는것이 아니라 단지 교차 할 뿐 함께할 수 없는 관계일수도 있다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을 바꾸어 평행선으로 평생 단 한번도 만날수 없는 관계일수도 있지만 그 짧은시간 교차함으로써 뜨겁게 사랑을 하고 서로를 성장시키고 단 하나의 교차점으로 선분이 끝날때까지 서로의 기억에 남을 수 있다는 것은 너무나 행복한 일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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