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스는 브라질 사람이며 미국에서 거주를 하고 있으며 나는 한국인으로 아프리카를 왔다 갔다 하고 있다. 최근 6년은 거의 해외에서 보내며 1년에 혹은 2-3년에 한 번쯤 한국에 들어오곤 하며 알렉스와는 장거리 연애를 유지하고 있다. 우리는 여행을 하며 만났고 중간중간 짧게 다시 만나는 것에 대해 많이 힘들어하는 편이라 10개월, 3개월 등 최선을 다해 함께 시간을 보내려 애를 쓰고 있다. 가장 짧았던 시간이 한 달 쯤이었다. 3년 전쯤인가, 우리가 남미 여행을 하며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당시 우리는 하루가 멀다 하고 싸우며 24시간을 붙어있었고 아마도 서로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던 것 같다. 일상생활에서 지내며 그렇게 싸웠더라면 이미 헤어졌을지도 모르겠지만 함께해야 유리한 여행 중이었고 오로지 둘만의 시간을 가지고 있었기에 싸워도 다시 붙어있고 또 풀려고 애를 쓰지 않았었나 생각해본다. 우리의 싸움은 대부분 대륙 혹은 국가별로 다르기에 기억하기가 아주 쉽다. 그래서 우리의 싸움이 서로 다른 입장이 되어 싸울 때 " 야, 너도 칠레 발파라이소에서 그렇게 행동했을 때 기분 나빴다 하면서 왜 이렇게 행동하는 거야!"라는 식의 항변이 되풀이되며 자기 자신을 마주하게 되고 또 서로를 이해하게 되며 싸움은 점차 줄어들었 던 것 같다. 장거리 연애란 특성상 결혼이야기아 아무래도 빨리 나온 것이었고 '책임'의 무게에 대하여 너무 부담스러웠던 나는 언제나 결혼이라는 이야기에 하고 싶단 마음 한편에 거부감이 함께하였다. 우수아이아에서 우리는 기억도 나지 않는 이유로 큰 싸움이 시작되었고 나는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했다. "그러니까 너랑 결혼 못하겠다는 거야!" 그리곤 앞으로 3년 동안 결혼 이야기를 하지 말자며 우리의 결혼 이야기는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사실 이후에도 알렉스는 쉼 없이 결혼 이야기를 하곤 했는데 그때마다 나는 평생 연애를 해줄 테니 결혼은 하지 말자고 했다. 그 서류 조각이 뭐라고.
결혼에 대하여 다시 생각하게 되다.
2019년 4월, 나는 당시 아비장에서 근무하고 있었고 부활절을 맞이하여 파리에 콧바람을 쐬러 가기로 했다. 당시 비행기 결함에 대한 이야기가 한창이었는데, 2019년 3월에 에티오피아에서 케냐로 향하던 비행기가 이륙하자마자 폭발하여 비행기에 있던 전원이 사망했던 것이다. 그 이후에도 내가 있던 아비장에서 비행기 결함으로 이륙 지연이 되는 사건사고가 발생하였다. 짧은 3일의 여정이었지만 아프리카를 벗어나 파리로 여행 간다는 들뜸이 있었지만 비행기 안에서 나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만약 이 비행기가 이륙하자마자 폭발해버린다면..?' 2019년만 16번의 비행기와 4개의 대륙을 눈 깜짝할 사이 오가곤 할 정도로, 나는 매년 많은 비행기를 타고 많은 대륙을 오가는 편인데 유난 그 비행기에서 많은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파리에 도착해 짧은 나들이를 함께할 언니를 만났다. 언니 또한 프랑스인과 결혼을 하기까지 긴 시간 그리고 장거리라는 많은 고난들을 겪어왔는데, 나는 이런저런 질문들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나는 결혼에 대하여 너무 심오하게만 생각해온 것은 아닌가, 생각하게 되었다. 아비장에 돌아와 나는 알렉스에게 전화를 하였고 파리 여정에서 느꼈던 나의 생각과 감정들을 전달하며 이야기했다. "결혼을 하게 된다면 너와 해도 나쁘지 않을 것 같기도 해."
많은 사람들의 질문, 왜 결혼하기로 결심하셨어요?
나는 의외로 심플하면서도 엉뚱한 곳에 복잡한 사람이다. 내가 그와 결혼을 하겠다고 다짐하기까지 많은 계산들이 있었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을 아는 것이었다. 내가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이유 중 하나는, 나는 정말 빨리 질려하고 언제나 새로운 것을 찾아다니는 것을 좋아한다. 한 곳에 오래 머물기를 힘들어하며 무료함에 몸무림을 친다. 알렉스는 그것을 참 잘 아는 아이 었고 언제나 새로운 환경을 제공하는 좋은 친구였다. 우리 둘 다 모험을 좋아하고 여행을 좋아하고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토론을 하고 지혜를 습득하는 것에 즐거움을 느끼기에 함께하는 것이 즐거웠다. 언젠가 결혼을 하게 된다면 좋은 친구 같은 이와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알렉스가 바로 그런 친구였다. 계산적이지 않고 상상하지 않고 모든 것을 솔직하게 감정표현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나에겐 아주 좋은 소통의 장이었다. 히치하이킹을 제안하고, 남미 여행을 제안하고, 그와 함께한 시간 동안 끊임없이 발전해오는 나를 발견하며 나의 성장을 지켜볼 수 있었다. 두 번째로, 신념이 있는 친구였다. 환경에 대하여 고민하고 인류에 대하여 고민하며 역사를 배우고 그 역사를 통해 미래를 토론하기를 좋아하는 친구이다. 또 보이는 것과 내면의 것을 분리하여 바라볼 줄 알고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아는 친구였다. 많은 한국사람들이 알렉스를 마주하고 은근한 실망감을 비치는 경우가 있었다. 한 친구는 "언니, 언니 정도면 아주 대단한 사람을 만날 줄 알았어요. 정말 어른 같은 어른이요"라는 소리를 했었더랬다. 또 한 오빠는 "알렉스는 얼핏 보면 마약쟁이 같아요" 누가 들으면 정말 망나니 같은 아이를 내가 만나고 있다고 느낄지도 모르겠다. 사실 이 사람들이 말한 알렉스의 모습은 실제로 존재하는 일부분이기도 하다. 마약에 대한 본인만의 신념을 가지고 나와 열심히 5년이 넘도록 싸우기도 했고 철없는 어린아이 같기도 하지만 그 이면에 또 깊은 부분은 쉽게 알지 못하는 나만이 아는 부분이 있다. 그 내면의 모습에 나는 반했고 그를 좋아하기 시작한 것이다. 세 번째로 세상 솔직한 감정표현의 그가 좋다. 그 감정표현으로 싸우기도 하고 서운하기도 하지만 언제나 거짓 없는 그의 진실함에 신뢰를 가지가 되었다.
우리가 남미 여행하던 당시, 아르헨티나에서 칠레로 넘어가는 국경으로 가기 위해 이틀을 산길을 걷고 또 걸은 적이 있었다. 나는 걷는 것이 어느 정도 익숙해져 걷기가 쉬웠고 알렉스는 발의 물집들로 힘들어하던 순간이었다. 나는 그에 대해 지루해지려 할 쯤이었고 알렉스는 잠시 쉬었다가기를 제안했다. 가만히 앉아 나는 그에게 솔직한 내 감정들을 표현했다. "알렉스, 지금 이 감정이 어떤 건지 잘 모르겠지만 아마 우리가 연인으로써의 인연을 마치고 친구로서 지내도 좋을 것 같아. 나는 더 이상 너를 사랑하지 않는 것 같아." 그리고 그는 정말 충격을 받았었다고 했다. 불과 몇 주 전 우수아이아에서 결혼 이야기로 싸움을 했고 나는 이렇게 그에게 이별 비슷한 것을 여행 중간에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는 정말 최선을 다해서 내게 표현을 해주기 시작했다. 그는 나의 "사랑한다"라는 말을 전적으로 신뢰하는데, 내가 사랑하지 않을 때는 결코 '사랑한다'는 표현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종이 신호인 것이다. 특히 싸울 때면 나는 절대로 사랑한단 말을 하지 않는데, 내가 기분이 풀리고 그를 사랑한다고 느낄 때면 또 그에게 '사랑한다고'말해준다. 그런 이유로 그는 나의 '사랑한다'는 말을 전적으로 믿고 신뢰하게 되었다. 싸울 때면 화가 나 비꼬우듯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감정을 마주하여 솔직하게 '나 너무 서운해', '나 그 말에 상처 받았어'라는 말들로 성숙하게 감정표현을 할 줄 아는 우리의 모습들에 그가 내 남편으로써 충분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우리가 결혼을 준비하는 방법
'심리상담'
우리는 인간으로서 쉽게 상처를 받고 상처를 주고, 사랑을 주고 사랑을 받으며 성장해온다. 그러며 성향과 성격이 형성되고 때때로 나의 콤플렉스나 나의 트라우마를 마주하기 힘들기도 하며 원인조차 잊혀 가는 경우가 있다. 알렉스는 우리의 결혼을 위해 준비한 몇 가지들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심리치료사를 정기적으로 방문하여 스스로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을 가지기 시작한 것이다. 어린 시절의 어른들로 받은 상처들, 또 그로 인해 형성된 성격들, 또다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진 않을까 하는 걱정에 스스로와 직면하기로 한 것이다. 약 4개월가량 상담을 받아왔는데 결론적으로 자기가 몰랐던 상처들에 대하여 마주하고 알게 된 것에 대하여 만족한다고 했다. 쉽지 않았을 상담이었을 텐데 매주 착실히 참석하며 이것이 결혼을 준비하는 첫 단계라고 말하는 그의 모습에 참 고맙고 아름다웠다.
'지난 과거부터 현재까지, 조금의 거짓도 없이 털어내기'
2019년 8월, 알렉스가 아비장으로 왔다. 1년 만에 만나는 너무 기쁘고 설레는 순간이었다. 자정이 넘어서 도착한 알렉스는 나와 맥주를 마시며 새벽이 되도록 이야기를 멈출 수가 없었다. 우리는 결혼을 결정하기 전 서로에게 단 한 가지도 빠짐없는 진실을 이야기하기로 했다. 이 정도는 이야기하지 않아도 되겠지 하는 것들이 훗날 '왜 그때 이야기하지 않았어'라는 말이 나오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모든 비밀을 털어내고 전적으로 내 편이 생긴다는 것이 정말 좋은 느낌이었다. 그 날밤, 그의 어린 시절 상처를 비롯하여 그의 자아를 마주하였고 나는 나의 상처를 마주하며 그에게 털어놓게 되었다. 그는 나를 꼭 안아주며 너무 고생 많았고 나의 상처들이 유감이라며 위로를 해 주었다. 나는 생각보다 단순하여 많은 비밀을 끌어안고 사는 성향이 아닌데 알렉스는 그만의 비밀들이 있었다. 그것 또한 내가 끌어안고 함께 살아갈 수 있다면 우리가 결혼해도 되겠지만 만약 그럴 수 없다면 지금 인연을 중지시키는 것이 좋지 않겠나 하는 결론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