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콩 Jun 07. 2020

오늘 우리는 이혼 합의를 했다.

오늘 우리는 이혼 합의를 했다. 결혼도 하기 전 이혼 합의 이야기를 하게 된 것이다.  이혼을 할 상황에 이르게 된다면 우린 서로 상처를 받은 상태이고 적절한 이혼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으리라는 생각이었다. 물론 이 기가 막힌 발상은 알렉스의 것. 결혼식도 한참이 남았는데 벌써 이혼을 이야기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내가 제안한 것은 

1. 서로 일을 하고 있으며 각자의 재산이 있을 경우 묻고 따지지도 말고 그냥 도장 찍어주기.


이제 문제가 되는 것은 둘 중 한 명이 가정을 책임지기 위하여 일을 하지 않았을 경우였다. 그는 본인이 일을 하지 않고 집을 돌보았을 때 얼마를 줄 수 있냐고 물었고, 나는 집안일 모두 잘하였으면 50%까지 떼어줄 의향이 있다고 했다. 그리곤 그는 "No I'm take care of you"라며 그 집안일에 대한 몫은 모르쇠였다. 이어  합의 본 내용은

- 둘 중 한 명이 일을 하지 않았을 시, 일을 한 사람의 재산 30% + 비행기표였다.

그리고 만약 둘 중 한 명이 일을 10년 이상 일을 하지 않았을 시, 우리의 커리어는 잃었고 다시 일로 복귀하기까지 어려움이 있을 거란 의견이 나왔다. 그래서 나는 새로운 학위를 받기 위한 2년의 서포팅을 제안 하였고 (그게 얼마가 될진 몰라도) 받아들여졌다. 그러더니 갑자기 '비행기 티켓'이 마음에 들지 않다며 마음이 바뀌었단다. 히치하이킹으로 각자의 나라에 돌아가면 그때서야 이혼이 완전히 이루어진다나, 그리하여


2. 둘 중 한 명이 일을 하지 않았을 시, 일을 한 사람의 재산 30% + 10년 이상 일을 하지 않았을 시 2년간의 서포팅 + 히치하이킹으로 본국 돌아가기


로 마무리가 되었다. 이 말도 안 되는 이혼 합의는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다음에 우리는 이혼을 하지 않기 위한 방법을 또 모색하였기 때문이다.

 첫 번째로 만약, 우리가 서로에게 질려 새로운 사람에게 눈이 돌아가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에는 서로에게 솔직하게 이야기하여 해결 방안을 만들어보기. 그때의 심각성을 파악해 일시적 open relationship을 고민해보겠다고 했다. 물론 나에게도 해당되는 부분. 사실 이 부분은 한국인 정서로는 참 맞지 않은 사고이지만 나는 바람을 피워 신뢰가 깨지는 것은 바로 서로에 대한 믿음이 깨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거짓말을 하고 배신을 당하는 것보다 서로에게 솔직하고 현재의 문제를 함께 해결해 나갈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지 않을까. 내가 이 친구를 평생 배우자로서 선택한 이유는 사랑하는 이유도 있지만 정말 평생 함께해도 괜찮을 친구이기 때문인데, 한순간의 나의 마음을 컨트롤하지 못해 이 친구를 잃게 된다면 너무 슬플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마음을 공유하고 적어도 '배신', '거짓말'에서 벗어난다면 서로에 대한 상처를 조금은 완화시켜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두 번째로, 살다 보면 서로에게 질리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다. 특히 나는 새로운 것을 좋아하고 한 곳에 머물거나 같은 일상생활에 쉽게 질려하는 편이다. 언제나 새로운 것을 좋아하고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에 대한 흥미가 있다. 하지만 앞으로 얼마나 더 살아갈 진 모르겠지만, 살아온 인생보다 더 긴 시간을 이 친구와 보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그런 두려움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제안한 것이, 10년쯤 지났을 때 어느 날 곧 이혼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때 1년 정도 떨어져서 장거리 연애 다시 해보기. 사실 이 부분은 나이가 들어서 해외봉사를 다시 한번 나가보고 싶다고 생각했었는데 그 기회를 미리 잡아둔 것. 2년은 너무 길다고 하여 맥시멈 1년으로 합의.


나도 알렉스도 부모님의 결혼 실패를 봐왔기 때문에 그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어떻게 하면 실패하지 않을까 매번 고민하고 공부한다. 가정불화 가족 혹은 이혼가정 자녀들은 그런 두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다. 나 또한 그러하여 오랫동안 독신주의자로써 홀로 살아가겠다는 생각을 해 왔고, 누군가와 함께 살아간다는 것이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시간이 흐르면 이런 이야기들도 모두 부질없는 것들이겠지만 우리가 정말 이 결혼이 실패하지 않기 위하여 애쓰는 시간들임을 기록하고 싶었다.

이전 06화 새로운 세상의 두려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