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혜빈 Jun 20. 2023

마침내 찾은 답

변화의 시점

나의 작품세계를 알아가기 위해 작업을 그만둔 그때가 추분이었다. 추분은 밤이 길어지는 시기. 이후 6개월의 시간이 흘렀고 어느덧 춘분, 낮이 길어지는 시기가 되었다. 나는 마침내 새로운 변화를 맞이했다.








작업을 그만둔 초반에는 건강을 생각해서라도 쉬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가만히 있지 못하는 성격답게 마냥 쉬지만은 않았다. 포트폴리오 웹사이트를 리뉴얼한다든가, 사진 작업을 한다든가, 새로운 관심사를 개척한다든가. 계속 조금씩 뭔가를 깔짝댔다.


작업을 그만둔 지 4~5개월 됐을 즘엔 슬슬 작품이 하고 싶어 작업에 시동을 걸기도 했다. 그러나 언제나처럼 좋지 않은 건강 상태가 계속되었고 무엇보다 내게 가장 중요하고 필요한 작품세계의 구체적인 변화가 무엇인지 모른다는 것 역시 변함없었다. 내가 무엇을 바라고 표현하고자 하는지, 찾아야 할 답은 여전히 오리무중이었다.


결국 반년이 다 되도록 눈에 보이는 결과가 아무것도 없었다. 자괴감이 들었다. 내가 긴 기다림 속에 있다는 걸 잊어버린 것이다. 빨리 답을 얻길 또 조바심 내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내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다시 중심을 찾았다. 이런 기다림은 이제까지 삶에서 수없이 반복한 과정이었다.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을 털어버리고 0부터 시작한다는 새로운 마음을 다잡았다.


작가로서 내가 추구하는 예술과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찾는다는 건 쉽지 않은 일. 잘은 모르겠지만 반 년 동안 기다려 왔으니 지금이라면, 내가 여기서 할 수 있는 걸 하다 보면 답도 찾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 그건 내 몸이 가능할 때 다시 구상부터 차근차근 작품 작업에 착수하는 것. 바닥부터 쌓아가는 것이었다.








그 뒤로 정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작업에 임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시원하게 ‘답’이 쏟아진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어떤 변화가 필요한 지 몰랐던 내 안에서 말이다.


그 답은 내가 작품을 하는 이유와 작품으로 말하고 싶은 것, 즉 궁극적으로 예술을 통해 내가 바라고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새 정리’였다. 나는 빈 메모장 화면에 놀라울 정도로 거침없이 순식간에 문장들을 써 나갔다. 한 작품 하고 마는 단순한 주제가 아닌, 더 큰 작업 세계를 그릴 발판. 오랜 기다림 끝에 분명하게 내 눈앞에 드러난 빛나는 나의 소명이고 사명. 그 문장들을 한참 동안 바라봤다. 자그마치 6개월 만이었다. 이 답을 얻기를 얼마나 기다렸던가!


매일 내가 쓴 문장을 읽고 또 읽으며, 임계점에 이를 때까지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끊임없이 +를 만들어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0부터 시작한다고 생각했는데 절대 0이 아니었던 것이다. 별것 아닌 일들, 사소한 것 하나하나까지 의식하지 못했지만 내겐 공부가 되었던 것 같다. 그간 읽고 보고 들은 많은 것들, 거기서 느낀 생각과 감정, 사람들과 나눈 대화와 반응 등 온갖 경험들은 양분이 되었고 차곡차곡 내 안에 쌓였다.


내 무의식은 쌓인 것들을 분해하고 연결하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갔다.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한 반년 동안 나는 많은 일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언제부턴가 묘하게 내가 보고 듣고 경험하는 것들 계속 한 지점으로 수렴해가고 있는 것 같다고 느낀 그 느낌은 아마 긴 기다림에 지치지 말라고, 곧 끝난다고 내 안에서 보낸 알람이었지 싶다.








이제 나는 ‘무엇을 표현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완전히 사라진 것 같다. 한두 번 전시하고 나서 작품을 계속 이어가는 데 부담을 느꼈던 이전의 나와는 다른 심정이다. 할 일을 알고 있다는 사실이 내게 해방감마저 주었다. 물론 여기서 끝은 아니다. 내가 얻은 답을 앞으로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가 새로운 과제가 되었다. 말하고 싶은 것, 바라고 원하는 것을 과연 어떻게 풀 것인지가 가장 어렵고도 중요한 문제의 자리에 올라섰다.


작품세계를 정리한 답을 얻고 난 후, 장르에 한계를 두지 말고 마음껏 내 능력을 써서 작업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스스로 그어놓은 한계가 있었는데 이제 그 한계를 없애기로 했다. 자유다. 옥죄지 말고 평면, 입체, 사진, 영상 등 정말로 자유롭게 표현할 거다. 이 몸으로 하고 싶은 것들을 마음껏 활용해서 작업하기란 쉽지 않을 거고 또 엄청 오래 걸릴 게 분명하다. 그렇지만 개의치 않고 나는 나만의 빠르기대로 가면 될 것이다. 그렇게 마음을 다잡고 나니 언젠가 반드시 나오게 될 그 결과물들이 많이 기대되고 또 기대되었다.


작년 3월, 춘분이 다가올 즈음 예술을 하기로 확실히 마음먹었더랬다. 그때 그 결정을 하고 어찌나 뛸 듯이 기뻤는지 모른다. 올 3월 춘분, 그 마음은 1살이 되었다. 고작 1살이지만 1년 동안 정말 많이 자랐다고 본다. 그리고 다시, 태어날 때와 비슷하면서도 새로운 기쁨으로 차오른다.


밤이 지나면 낮이 온다. 변화의 시점이다.








올봄 피어난 벚꽃


이전 19화 편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