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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혜빈 Jun 19. 2023

편지

스스로가 가짜처럼 느껴지는 예술가에게

가끔 허풍쟁이가 된 것 같습니다.


어느 작가님이 쓴 문장을 봤어요.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는데, /그림/음악이 삶보다 앞설 때가 있다던 문장을. 나는 당연하게 삶이 먼저 있고 그 삶을 겪은 다음에 글을 쓰게 된다/그림을 그리게 된다/음악을 하게 된다고 생각을 해서, 그냥 단순하게 /그림/음악은 사후적이라는 생각에 그 문장이 의아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뜻이 무엇인지 너무도 이해가 됩니다.


그 문장이 내 안에 들어온 이후 글을 쓰다/그림을 그리다/음악을 하다 보니 내 삶보다 /그림/음악이 앞서게 되는 때가 보이기 시작한 거예요. 돌아보면 내 /그림/음악은 멋지고 괜찮아 보이고 번듯한 듯 쓰여/그려져/들리고 있었습니다. 삶은 그렇지 않은데 말이죠. 그래서 요즘은 글을 쓸 때/그림을 그릴 때/음악을 할 때마다 가짜 같은 스스로가 우스울 때가 종종, 아니 꽤 있습니다.


진실되게 표현하고 싶은 마음에 스스로가 만든 것을 검열하고 검열했습니다. 진실되었는지, 아니면 거짓스러운지. 날마다 내가 만든 것들을 들여다봤어요. 그런데 예리하게 내 글을 읽으면 읽을수록/그림을 바라보면 바라볼수록/음악을 들으면 들을수록 생각했던 거짓스러움과는 조금 결이 다르다는 걸 느끼게 되더군요.


내가 바라는 모습, 되고 싶고 도달하고픈 이상. 지금 내 삶에는 없는 그것들이 /그림/음악에 나타나있더라고요. 처음엔 내가 거짓된 것 같아 그 /그림/음악이 미웠는데, 내가 만든 것과 나 사이에 가려져있던 얇은 막을 한 꺼풀 벗겨내고 다시 보니 실은 그 /그림/음악이 내가 바라는 것들을 드러내고 있다는 걸 알게 된 거죠.


/그림/음악의 가장 첫 독자/감상자/청자는 나니까, 그러니까 그건 내가 나에게 거는 주문(呪文)이었어요. 일종의 요청이기도 했고요. 내 /그림/음악이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만 하려는 단순한 허풍이 아니란 사실을 깨닫고 나니 허풍스럽게 보이던 그 /그림/음악도 조금은 안쓰럽고 사랑스러워지더군요.


그럼에도 내 /그림/음악은 허풍스럽습니다. 지금 이 /그림/음악도 허풍스러워요. 나는 그저 작고 부끄럽고 그런 글을 쓰는/그림을 그리는/음악을 하는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하지만 이 허풍은 나의 바람이 담긴 마음입니다. 어느 날에 내가 남긴 허풍스러운 /그림/음악처럼 더 이상 허풍이 아닌 있는 그대로 멋지고 괜찮은 삶을 살고 글을 쓰게/그림을 그리게/음악을 하게 될지 모를 일이에요.


그러니까, /그림/음악이 삶을 앞서가도, 그래서 스스로가 허풍쟁이같이 느껴지더라도, 거기 허풍쟁이, 우리 계속 글을 쓰고/그림을 그리고/음악을 하고, 계속 바람을 만들어가도록 해요.








방 안 기록 | Records of Room,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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