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짝꿍
지잉-.
[배송 지연 안내입니다. 주문하신 상품이 아래와 같은 사유로 배송 지연되어 안내드립니다. 주문번호 ORD2022122….]
구매하고도 며칠이 지나서야 온 문자. 친구와 만나서 주기로 약속한 선물이 제때 도착하지 못한다는 내용이었다. 선물은 새해 시작과 함께 쓰기 좋은 노트였다. 그런데 새해도 며칠이 지나서야 도착한다고 하니, 이 문자는 나의 계획이 영 틀어져 버렸다고 말하는 고지나 다름없었다.
친구를 만나기로 한 건 이틀 후였다. 신년을 코 앞에 둔 시점이라 만날 때 주면 딱 좋을 것 같았는데. 자주 보지도 못하건만 약속을 지키지 못한 채 허전한 손으로 얼굴을 보게 될 상황이 멋쩍기만 했다. 하필 이때 배송이 지연될 건 뭐람. 좀 더 일찍 알려주기라도 했으면 더 늦지 않게 그냥 친구 집으로 보낼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선물은 문자대로 새해가 되어서도 며칠 후에야 도착했다. 작년에 샀는데 올해 받아 봤으니 시간이 오래 걸려도 너무 오래 걸렸다. 그사이 나는 친구를 만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눴고, 같이 맛있는 음식을 먹었고, 추억을 쌓았고, 다시 만나기를 기약하며, 특별히 선물은 도착하는 대로 택배로 보내겠다고 약속하며 헤어졌다. 선물은 그러고도 며칠을 흘려보낸 후에 저 혼자 여유를 부리며 내게 왔다.
시간이 지나면 같은 사건에도 반응이 달라지곤 하듯 오지 않는 선물을 기다리는 동안 내 마음도 조금씩 바뀌었다. 처음 친구를 만나자마자 선물을 바로 주지 못해 아쉬워했던 것과 달리 친구랑 헤어지고 나서 오히려 배송이 지연된 게 좋은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뭐랄까, 바꿔 생각해 보면 이건 우리가 쌓은 그날의 추억을 선물과 함께 전달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거나 마찬가지였다. 완결이 되지 않아 생긴 연결이랄까. 조금 실망하기도 했고 번거롭게도 됐지만 배송 지연은 예상치 못한 새로운 설렘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기다렸던 선물이 도착하자마자 우체국에 갔다. 친구에게 택배를 보내려고 박스 크기를 가늠하고 골랐다. 1호. 가장 작은 박스였음에도 불구하고 묵직하게 느껴진 건, 그 안에 마음이 들어서 그런 걸 테지. 잠깐이나마 친구를 생각하며 고른 선물을 메인으로 시작하여 언제 이렇게 우체국에서 너네 집으로 뭘 보내고 그래보겠냐며 이런 때를 기회 삼아서 이것저것 보내본다고 장난스레 쓴 편지, 여행동안 함께한 풍경과 순간을 담은 사진도 넣었다. 선물이 제때 도착했다면 전달하지 못했을 것들. 괜스레 별것 아니라는 얘기를 했지만 마음 한편으론 진심이 가득한 상자를 기분 좋게 열어보면 좋겠다고 바랐다.
드디어 선물을 보냈다는 후련한 마음으로 우체국을 나섰다. 1월인데 벌써 봄이 된 듯 날은 따뜻했고 볕도 좋았다. 그런데 집으로 발걸음 하며 이 선물 사건의 시작부터 끝까지, 뭔지 모르겠지만 자꾸만 차례차례 헤아려보게 됐다. 머릿속에 복잡한 생각이 가득한 채 횡단보도에 서서 눈을 굴렸다.
길가에 과일을 팔고 계신 아저씨, 건너편 편의점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생, 가게 안에서 열심히 모니터를 바라보며 고객을 응대하는 아주머니가 보였다. 그리고 그들의 일하는 몸짓과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는 순간— 이제까지의 모든 것들이 꿰어지면서, 불현듯 삶을, 삶을 흔드는 변수의 아이러니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알 수 없는 변수로 때로 고통받고 실망하고 어떨 땐 삶이 일그러졌다고 울부짖기도 하지만. 그만큼 쳇바퀴 도는 삶에도 변수는 부담스럽고 번거롭고 싫게 느껴지지만. 하지만 이 삶이 진정 살아있는 삶이 되려면 변수는 반드시 필요하구나. 같은 매일을 조금씩 살랑이게 만드는 변수는, 계속되는 삶의 짝꿍이구나. 간혹 변수가 삶을 뿌리째 휘저어서 모든 것이 무너진 듯 보일지라도 선물은 배송이 지연됐을 뿐, 오지 않는 게 아니다. 내게 닥쳐오는 오늘을 계속 살아가면서, 오히려 배송 지연은 새로운 기회를 가져오는 선물이라고. 그렇게 생각해야 한다고. 그렇게 삶을 맡기고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고.
시끄럽고 북적이는 거리, 내 눈에 보이는 이 모든 사람들의 움직임이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지잉-.
[부산OO우체국에서 영수증이 도착하였습니다. 결제금액 : 4,700원 통신망 상태에 따라….]
설날 물량 때문에 배송이 늦어질 수 있다고 했다. 이르면 이번 주, 늦으면 다음 주쯤 친구로부터 택배를 받았다는 연락이 오겠지. 그리고 또 어떤 변수가 있을지 모르겠다. 뭐, 변수라는 것 자체가 좀 두렵기는 해도 꼭 나쁘지만은 않을 것을 안다. 그 변수가 가져올 아이러니한 아름다움을 기억할 테니. 그러니 그때그때 닥쳐오는 대로 삶을 잘 맡기고 바라볼 수 있기를, 이미 새해가 시작되고도 몇 주가 지나서 나는 또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