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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언 Aug 25. 2022

시야에서만 놓치지 않게, 충분히 오래

달릴 때 팔을 과하게 휘두르던 그 남자

에이, 그래 가지고 10km 완주하겠어요?


혼자 달린지 3년째였나. 러닝크루에서 비오듯 흐르는 땀을 훔쳐내며 뛰다 들었던 말이다. 운영진이자 그날 정모의 모임장인 사람으로, 달릴 때 팔을 과하게 휘두르는 사람이었다. 마치 내 날개를 보라는 듯. 


그날 나와 그 운영진을 뺀 모임 다수는 장거리 달리기가 처음이라고 했다. 으스대고 싶던 차에 눈엣가시처럼 느껴졌을 수도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물론 10km 결승점에서 기다린 건 내쪽이었다. 팔을 과도하게 흔드는 주법상 사실 예정된 결과였다. 오래, 멀리 달리려면 무엇보다 몸의 쓰임에 낭비가 없어야 한다. 결승점에 서서 이제야 들어오는 그 운영진을 향해 ‘얼마 안남았어요! 파이팅!’ 같은 응원으로 되갚아주던 철없던 기억이 남아있다. 


오래 달리다보니 조금씩 보이는 것들이 있다. 어떤 부분에선 거의 예언가 수준이라고 주변인들은 입을 모았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날 추월해간 저 사람을 몇분후에 다시 만날지’에 관한 부분이다. 생각보다 어려운 일은 아니다. 속도와 관계없이 추월해간 사람의 몸통 움직임을 관찰하면 답이 나온다. 과도하게 힘이 들어간 몸통이 요란하게 진동하며 달려나가고 있다면 길어야 10분이다. 10분도 안되서 거의 토하듯 컥컥거리며 길가에 주저앉은 그를 재추월할 수 있다. '지속가능한 속도'에 관한 고민. 달리는 내내 모든 러너들이 되묻고 또 되묻는 질문이다. 


육체적 관점에서 인간은 나약해 빠진 동물이다. 나무를 오르지도, 빠르게 달리지도, 짐승의 생뼈를 씹어 바수지도 못한다. 그런 인간이 전 육상 동물을 통틀어 가장 잘하는 운동 하나가 있다. 바로 ‘오래’ 달리기다. 인간만큼 오래 달리는데 최적화된 신체 구조를 지닌 동물은 사실상 없다는 게 현대 인류학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초기 인류가 아프리카 초원을 뛰어다니던 시절, 재빠르게 저 멀리 도망간 사슴을 시야에서 놓치지만 않으면서 오래 달려가다보면 사냥감은 어느새 거품을 물고 쓰러져 사냥당했을 거라고 인류학자들은 추론한다. 시야에서 놓치지 않을 속도로만, 충분히 오래. 


달리면서 나 역시 그런 여유를 배웠다. 당장 나를 추월해 멀어지는 앞사람을 질투하지 않을 여유. 시야에서 놓치지만 않으면 된다. 그게 꿈이든 옆동료든 뭐든. 시야에만 놓치지 않을 속도로 충분히 오래 쫓다보면 반드시 목표물은 지쳐 쓰러진다. 그 추월의 순간을 포착한 사진이 있다면 내가 엄청난 속도로 경쟁자를 이겨먹는 모습이 되리라. 틀렸다. 각자의 속도대로 달렸을 뿐이다. 추월당한 자도 시원한 물을 마시고, 잠시 주변 경치를 감상하다보면 어느새 두 다리에 힘이 회복돼 나를 다시 추월할 것이다. 사는 게 그렇더라. 애초에 추월이라는 말 자체가 적확하지 않은 표현이라는 생각까지 든다. 


가을엔 한강의 야경을 달려볼 생각이다. 숨 차지 않게 천천히, 그러나 각자의 보이지 않는 사슴이 지쳐 쓰러질 때까지 충분히 오래, 편안한 속도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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