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준서공 Nov 03. 2022

EP 02: 서촌의 맛

[서촌 예찬] 참을 수 없는 서촌 식도락 食道樂

[서촌 예찬] EP 02: 서촌의 맛

서촌 3년 차. 지낼수록 정이 들고, 발견할 매력은 많다. 서촌을 살아가는 일상에 대한 에세이.


  서촌을 좋아하는 여러 이유 중 하나는 아마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맛집들이 될 것이다. 좋은 동네에서 '맛'이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는지는 모르겠다만, 적어도 나의 기준에서는 상당하다. 여행을 가더라도 음식점, 카페, 바를 찾아가는 재미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서촌의 맛을 찾는 기행도 상당히 즐거울 것이다. 서촌의 특징이라 하면 한옥을 개조해서 만든 아기자기하고 예쁜 브런치 가게는 물론 서울에서 내로라하는 빵집들, 사람 냄새가 나는 백반집, 쌀국수부터 타코에 이르는 세계 음식까지 찾을 수 없는 것이 없다. 즐겨찾기에 빼곡하게 모아둔 모든 곳을 소개할 수는 없지만 떠올리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가게들을 떠올려 본다.


서촌의 빵

  어떤 음식을 좋아하냐고 물어보면 빵보다는 밥인 사람이다. 곤드레나물밥이나 산채비빔밥 우렁된장 쌈밥같이 아주 전통적이거나 이름만 들어도 건강해 보이는 음식을 좋아한다. 심심한 사찰음식이나 샤부샤부처럼 자극적이지 않고 소화가 잘되는 음식을 선호한다. 할머니 입맛이긴 하지만 십 대부터 그랬던 것 같다. 부제를 서촌의 빵으로 적어놓고  사찰음식 타령이냐고 한다면, 이런 토속적인 입맛을 가진 나도 일요일 낮에는 빵을 찾아 먹기 때문이다.

  주말 아침, 공방에 다녀오는 길에 빵집에 들러 좋아하는 빵을 고르는 일은 늘 즐겁다. 가장 많이 가는 곳은 역시나 스페이스본 상가에 있는 빵집 플레인이다. 이곳은 GFC에도 지점을 가지고 있는데, 입소문이 난 곳으로 동네 주민뿐만 아니라 주변에서도 빵을 사러 많이 온다. 치아바타나 바게트와 같이 기본빵들이 워낙 훌륭하고 바게트 샌드위치와 잠봉뵈르도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늘 빼놓지 않고 구매하는 것이 소금 빵이다. 플레인의 소금빵은 감동적이다. 겉바속촉으로 바게트처럼 딴딴한 겉과 빵 봉지에 기름이 살짝 배어 나올 정도로 가득한 버터의 풍미가 대단하다. 이즈니 버터를 사용한 크루아상과 무화과나 팥에 버터를 통으로 곁들인 메뉴들부터도 정말 취향이었는데. 열 시에 소금빵이 쏟아져 나오니 꼭 시간에 맞춰서 따끈한 빵을 맛보길 바란다. 김이 올라오도록 빵 봉지는 완전히 접지 않고 살짝 열어준다. 디저트로 함께할 구움 과자로는 흑임자 휘낭시에나 말차 휘낭시에를 하나씩 담아와서 커피머신에서 방금 내린 아이스 카페라테와 마셔준다면 완전한 주말이 완성된다. 이런 소확행이 없다.

  공방 바로 옆에 있는 베이커스 퍼센트는 패스츄리류를 좋아한다면 반드시 가봐야 하는 곳이다. 가끔 뺑 오 쇼콜라처럼 달달한 패스츄리가 당길 때면 가는 이곳의 가장 대표 메뉴는 퀸 아망과 몽블랑이다. 크루아상은 다양한 배리에이션이 있으니 무엇을 선택해도 좋다. 한동안 인기가 많던 빨미까레도 보이고 디저트류로 먹을만한 컵케이크와 까눌레도 있다. 이곳의 소금빵은 폭신폭신 계열로는 으뜸이다. 정확한 명칭은 말론 버터롤로 바삭한 소금빵이 아니라 담백하고 폭신한 소금이 있는 버터롤을 상상해야 맞다. 어떤 맛이냐면, 갓 구워서 끊임없이 뜯어먹고 싶은 맛이다. 빵지순례라고 하던가, 전국의 빵집을 돌아볼 정도로 빵을 좋아하는 분들에겐 일부러라도 광화문 근처의 폴앤폴리나빠네트 크루아상 팩토리를 방문해보라고 하고 싶다. 폴앤폴리나는 서울 3대 빵집이라나, 시간을 맞춰가지 않으면 빵을 사기도 어려운 곳이다. 특히 올리브 치아바타가 퐁신퐁신하고 부드럽다고 하는데 저장만 해두고 아직 가보지는 못한 곳이지만 사진만 보아도 맛이 있을 수밖에 없는 반죽이다. 빠네트는 위에서 소개한 곳보다는 조금 더 크고 앉아서 먹을 공간도 있다. 샌드위치와 크루아상류를 먹어보았는데 둘 다 상당히 만족스러웠고 도전해보고 싶은 메뉴들이 많고 다양하다.

  식사 대용이 아니라 선물로 가져가거나 식후로 먹을 아담한 케이크를 찾는다면, 하이엔드 디저트가 있는 레종데트르로 가자. 발품을 팔아야겠지만 귀엽고 사랑스러운 미니케이크들을 보면 역시 잘 찾아왔다는 생각이 드는 곳이다. 그냥 디저트도 아니고 왜 하이엔드 디저트인가 하면 예술작품처럼 빚어진 케이크들의 자태를 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특별한 날 특별한 사람과 함께 먹고 싶은 케이크. 홍시나 로즈에그처럼 다른 곳에서는 만나보기 힘든 메뉴들도 있다. 레종데트르만큼 수준급의 케이크가 먹고 싶다면 르꼬르동블루 출신 셰프의 마농트로포를 가보는 것도 좋다. 시그니처는 자몽케이크라고 하는데, 기본인 티라미수나 무스케이크도 맛있다. 하지만 케이크 한 조각에 가격이 상당하기 때문에 디저트 애호가에게 추천하고 싶은 곳이다. 서촌 빵집에 대해 쓰면서 통인스윗의 에그타르트를 빼놓을 수 없고, 갓 튀긴 카레고로케를 파는 서촌금상고로케를 빼놓을 수가 없지만 빵 얘기를 더 이상 하다간 한 바닥이 넘칠 것 같아 아쉬운 마음으로 줄여야겠다.



서촌의 밥

  서촌의 밥. 술집이 아니라 식사를 위한 밥집을 먼저 떠올린다. 경복궁에 살면서 좋았던 것은 긴 웨이팅을 하지 않으면 먹을 수 없는 곳들이 집 앞까지 배달된다는 점이다. 퇴근길이라면 재빠르게 포장해서 집으로 오는 방법도 있다. 처음 서촌으로 이사를 오자마자 코로나 확진자와 동선이 겹쳤다면서 14일 동안 격리된 일이 있었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인가. 동네를 돌아다닌 적도 없는데, 우습게도 한두어 번 나간 삼성역의 요가학원에 하필이면 그 수업에서 확진자가 나왔다는 것 아닌가. 이 때는 100명 ~ 200명의 확진자에도 두려워할 때라서 군말 없이 집에서 격리했고, 그 덕분에 서촌의 배달음식을 섭렵하기 시작했다.

  자가격리라는 안타까운 상황에서도 소소한 감동을 주었던 음식이 있는데, 바로 티엔미미의 어향완자가지다. 아직까진 티엔미미 보다 맛있는 어향가지를 먹어본 적이 없다. 살짝 튀겨낸 가지에 칼집을 내어 사이사이로 매콤 짭짤한 소스가 배어있다. 어향가지와 함께 엄청나게 큰 고기완자가 있는데 젓가락으로 살짝 잘라 소스와 함께 먹으면 그 맛 또한 일품이다. 그야말로 밥도둑이다. 여러 명이 방문한다면 다양한 종류의 딤섬과 함께 꼭 맛보았으면 한다. 상당한 가격이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다.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쌀국수와 베트남 음식을 참 좋아하는데, 서촌에는 쌀국수 맛집이 많다. 매운곱창쌀국수를 파는 깜온, 반쎄오세트가 맛있는 리틀파파포는 전통적인 베트남 음식이라면, 아시아퀴진알로이막막은 팟타이부터 똠얌까지 진정한 아시안푸드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서촌의 가정집 같은 분위기에서 새로운 양식을 찾는다면 먼저 한옥달이 생각난다. 이곳의 메뉴는 독특한 퓨전식인데 우렁된장리조또나 뚝배기고추장파스타 같은 메뉴가 있다. 분위기는 소개팅 후 두 번째 만남, 전시나 공연 같은 것을 보고 찾기에 괜찮을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한옥달에 갈 때마다 늘 옆 테이블은 이런 풋풋한 분위기더라. 맛있고도 새로운 음식을 도전해보고 싶다면 적당한 가격에 괜찮은 코스요리를 하는 스페니시 레스토랑이 있는데, 성곡미술관 근처의 따빠마드레다. 붐비지는 않지만 미리 예약하는 것이 좋고 가정집에 초대되어 먹는 분위기인 데다가 맛도 좋았다. 기념일이나 특별한 날에는 미슐랭급 프렌치 레스토랑 물랑으로 가보자.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으로 전통적인 프렌치 코스요리를 고풍스럽고 클래식한 레스토랑에서 맛볼 수 있다. 연말 정도에 가볼까 싶어서 즐겨찾기에 추가한지는 꽤 되었지만 가격대도 상당하고 와인 페어링이나 바틀을 시킨다면 크게 마음먹어야 갈 수 있는 곳이 아닐까 싶다. 이탈리안은 피자가 정말 괜찮았던 오스테리아 소띠, 뇨끼가 기대되는 서촌김씨뜨라또리아, 브런치로 먹기에 괜찮은 이태리총각 등이 생각난다. 

  카레를 좋아하는 이에게 서촌은 성지 같은 곳이 될 것이다. 특히 공기식당의 카레는 단 한번 먹어봤지만 잊지 못할 맛이다. 그 이후로도 몇 번 도전했는데 재료가 소진되었거나 브레이크 타임이거나 하여 먹지 못했다. 공기식당은 정말 정말 아담한 가게로 버터 치킨카레가 맛있는 곳이다. 메뉴는 종종 바뀌긴 하는데 제대로 된 일본 가정식 카레를 맛볼 수 있다. 가라아게를 파는 날이면 가라아게를 추가해야 하고, 스파이스 커리를 파는 날이면 그 메뉴를 시켜야 한다. 메뉴 실패는 없고 웨이팅 할 각오만 있다면 꼭 가보자. 아는 맛이 원래 더 훌륭한 법. 경희궁 방향의 고가빈커리하우스 또한 무엇을 시켜도 성공하는 카레 맛집이다. 이곳도 웨이팅이 상당하지만 공기식당보다는 자리도 많고 포장이나 배달도 가능하다. 시금치 커리나 버터 커리에 아보카도를 추가하고 반절은 쌀밥에 반절은 따끈한 로띠와 함께 먹는다. 달콤하고 매콤한 향신료가 뒤섞인 여러가지 맛의 조화가 정말 최고다.

  서촌에서 전통적인 맛을 찾는다면 정부청사의 공무원들이 즐기는 신안촌으로 가보자. 낙지를 테마로 한 연포탕, 낙지호롱구이 등이 정갈하게 나와 술과 함께하기도 식사로 대접하거나 부모님과 함께하기에도 좋다. 신안촌 인근에는 오랜 시간 터줏대감처럼 서촌을 지키는 한정식집이 많다. 보리굴비정식, 간장게장정식 등 가격대는 다소 있지만 대체로 맛의 수준이 높은 편이라 할 수 있다. 깔끔한 퓨전 한식은 조금 더 광화문 쪽으로 내려와 동네에서 소문난 사발을 추천한다. 메뉴 자체도 독특하게 더덕구이, 멍게비빔밥, 연어덮밥 등 초이스가 다양하고 국수와 함께 특대형 사발에 서빙하는 것이 특징이다. 식당 옆 매장에서는 식당에서 사용하는 사발들을 팔기도 한다. 이 외에도 분위기를 낼 수 있는 파인 다이닝부터 구워 먹는 고기까지 장르만 정해지면 다양한 선택지가 있으니 식사 걱정이 없다.


  아직도 떠오르는 곳들이 수도 없이 있어 새삼스럽게도 이렇게나 맛에 진심이었나 싶다. 그럼에도 늘 오늘은 또 뭘 먹어야 하는지 즐거운 고민을 한다. 새로운 곳을 도전하기도 하고 익숙한 곳을 찾아가기도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참으로 진부한 말을 덧붙여야겠다. 결국엔 그렇다. 맛있는 것을 먹으면 나누고 싶다. 누군가와 함께 이 맛을 나누고, 함께 웃고, 와 맛있다 하고 감탄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이다. 서촌에서의 추억이 맛집과 함께하는 것은 그 곳에서 누군가와 어떤 추억을 나누었기 때문이 아닐까.

작가의 이전글 EP 01: 산책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