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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bbers Jan 26. 2021

성장은 지겹다

-9살의 이별-

이별이 익숙한 나는 긍정적인 편이다. 이별은 사랑하고 가까운 사람과는 멀어지는 단점이 있지만, 동시에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해 주고, 무엇보다 내 생각엔, 싫어하는 사람에게 가장 통쾌한 복수 같다. 생각해보면, 그동안 속으로라던가, 대놓고 싸웠던 사람이 있을 때, 그 싸움을 끝내지 않고 '너는 짖어라, 나는 간다'의 태도로 떠난다면, 아무래도 혼자 남겨진 그 사람은 허무함이 밀려올 것이다. 싸움은 쌍방이기에, 한쪽이 싸울 노력을 하지 않게 되면, 다른 쪽은 허무해진다. 그 생각을 나는 시은이에게 적용했다. 시은이는 내가 가기 전까지 꾸준히 고집을 부려가며 공주가 되었다. 그리고 공주가 되기 위해서 싸워왔다. 나는 그런 시은이를 무심하기 내버려 두었다. 물론 그렇게 할 수 있었던 큰 계기는, 영국이가 그때 처음 왕자 역할을 하고는 다시는 안 한다고 선언한 일이었다. 그래서 시은이는 혼자서 알아서 놀게 내버려 두었다. 그러나 행복한 이별은 이게 끝이었다. 예은이를 볼 때마다 슬펐다. 학교를 갈 때마다 벌써 그리웠다. 영국이를 볼 때마다 씁쓸했다. 처음 좋아하게 된 이 아이 같은 사람은 또 볼 수 없겠지 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이 아픔에도 나는 항상 그래 왔듯이, 이별을 체계적으로 준비했다. 나는 항상 이사 가는 것을 친구들에게 숨기지 않았다. 숨기기에는 너무 큰일이긴 했지만, 무엇보다 친구들이 슬퍼하지 않게 늦게 말한다는 것을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이삿날은 다가오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친구는, 나중에 알게 되면 배신감과 슬픔이 동시에 들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리 얘기하면, 슬픔만 들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삿날이 정해지자마자 예은이에게 말했다. 영국이에게도 그 후에 얼마 지나지 않고 말했다. 물론, 시은이는 자연스럽게 말하지 못하게 되었다.

 



예은이랑 나는 더 자주 만나서 놀았다. 영국이도 더 자주 모습을 나타냈다. 우리는 공주놀이가 유치해져서 더 이상 하지 않았고, 의도치 않게 공주놀이와 인형놀이만 고집하던 시은이는 점점 멀어진 것 같았다. 우리는 대신에 숲 속 탐방을 자주 나갔다. 우리 집 뒤쪽엔 숲이 있었고, 산책로를 조금 벗어나면, 더 많은 나무들이 빽빽하게 있었다. 우리는 산책로를 벗어나 우리만의 길을 만들어서 탐방했다. 그 길은 정말 다양하게 많았다. 나무가 쓰러져서 다리처럼 생긴 구역이 있었고, 쓰러진 나무와 수풀로 둘러싸여 있어, 비밀 공간같이 생긴 곳도 있었다. 우리는 탐방을 나갈 때마다 그 비밀공간을 조금씩 꾸미기도 했다. 크레용을 가져가서 색칠도 해보고, 나뭇가지를 허술하게 붙여서 문을 만들기도 했다. 그렇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재밌게 놀다가, 가끔은 곧 있으면 간다는 생각에 울적했다. 예은이도 그걸 알고 그냥 입을 오므르고 있을 때도 있었다. 영국이는 그럴 때에는 항상 주위에 벌레를 잡아서 우리를 향해 달려왔다. 그럼 우리는 일단 피해야 한다는 생각에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그 소리 속에 그 울적한 마음은 사라졌다.


그렇게 시간이 다 가다가, 어느새 이사 가기 일주일 전으로 다가왔을 때, 영국이의 벌레는 더 이상 먹히지 않았다. 예은이는 웃을 때보다 울 때가 더 많았고, 영국이는 말없이 그걸 지켜보기만 했다. 나는 원래는 잘 참고 있었지만, 예은이가 우는 조짐을 보이면 그제야 나도 터뜨렸다. 이사 가기 하루 전이 다가왔을 때는 의외로 예은이랑 나는 더 많이 웃었다. 마지막이라서 해탈한 느낌도 없지 않아 있었지만, 무엇보다 서로가 서로를 꾸준히 응원할 것이라는 걸 서로 느낀 것 같았다. 예은이는 자신이 쓴 편지와 함께 나에게 자기가 제일 아끼는 인어공주 팔찌를 주었다. 인어공주 팔찌는 가운데에 인어공주 얼굴이 박혀있고, 팔찌 자체는 요즘 콘서트에서 쓰는 야광봉 같은 느낌이었다. 팔찌 안에는 반짝이가 있어서, 움직일 때마다 반짝이가 탄력을 받아 파도처럼 1초 정도 늦게 움직이는 걸 볼 수 있다. 그렇게 아끼던 팔찌를 나에게 준다는 걸 나는 차마 받을 수 없었지만, 예은이가 계속 내 팔목에 껴주는걸 나는 막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나는 그날 예은이와 이별을 잘하였다.


영국이와의 이별은 그렇게 감정적이진 않았다. 깔끔하고 담백했던 것 같다. 영국이는 뭘 준비할만한 아이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놀랍게도 내가 영국이를 마지막으로 봤을 때, 영국이는 내 손에 자신이 아끼던 축구공 스티커를 주었다. 여러 가지 색깔과 디자인의 축구공으로 구성된 그 스티커는, 한 번도 안 쓰였던 것이었기에 나는 더 놀라웠다. 영국이는 스티커를 나에게 건네주며, '아까워서 한 번도 안 썼던 건데, 안 쓰길 잘했다. 너는 이 축구공이 제일 잘 어울려. 이거부터 나중에 붙여봐.' 라며 손가락으로 노란색에 반짝거리고, 오각형들은 은색 반짝이로 채워진 축구공을 가리켰다. 나는 고마움에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다고 하고 집으로 가려는데, 갑자기 다시 영국이에게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때 내가 왜 그랬는지 이해가 안 되는 행동을 했다. 원래 이럴 땐 여자가 남자를 붙잡아서 좋아했다고 말하거나, 뒤에서 백허그라도 하거나 그러던데, 나는 지금 와서 생각해봐도 참 창피한 마지막 말을 한 것 같다. 영국이의 팔을 잡고 내 입에서 나온 말은, '야, 그동안 말 못 했었는데, 내가 너 축구공 던져서 바람이 조금 빠졌었어..."라고 했다. 그리고 잠깐의 정적이 있었다. 영국이는 조금 당황한 눈치였다. 이 상황과 분위기에 이상하게도 나는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는. 영국이는 나에게, "어, 그래..."라고 했다. 그리고 난 그 대답에, 말하기를 잘했다는 뿌듯한 표정을 짓고 다시 인사하고 헤어졌다. 나는 그렇게 내 마음을 전달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날림과 동시에, 나의 잘못을 폭로했고, 지금까지도 나는 그 말들을 내 기억 속에 지우려고 노력 중이다. 이곳에 이 기억을 쓰는 이유도, 부디 내 기억 속에서 이 글로 옮겨가길 원하는 소망에서 나온다.


그렇게 나는 가장 친한 친구와, 처음으로 좋아한 남자애와 이별을 했다. 그리곤 그다음 날 우리 가족은 모든 짐을  빌렸던 차에 싣고 버지니아주까지 운전해서 갔다. 도착한 버지니아주의 공기는 달랐다. 도착하자마자 차에서 내려 공기를 마시는데, 왜인지 모르게 코에 무겁고 축축한 바람이 들어왔다. 버지니아 비치라, 해안가 근처라서 그런 걸 수도 있지만, 아마 새로운 곳에 와서 느끼는 내 감정 때문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나는 그 공기에 또 적응하려고 더욱더 열심히 숨을 들이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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