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편소설 #004
드디어 이상을 읽는 날이 왔다.
十三人의兒孩(아해)가道路(도로)로疾走(질주)하오.
(길은막다른골목이適當(적당)하오)
第一의兒孩가무섭다고그리오.
第二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三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四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五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六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七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八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九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十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十一의兒孩가무섭다고그리오.
第十二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十三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十三人의兒孩는무서운兒孩와무서워하는兒孩와그렇게뿐이모였소.
(다른事情(사정)은없는것이차라리나았소.)
그중에一人의兒孩가무서운兒孩라도좋소.
그중에二人의兒孩가무서운兒孩라도좋소.
그중에二人의兒孩가무서워하는兒孩라도좋소.
그중에一人의兒孩가무서워하는兒孩라도좋소.
(길은뚫린골목이라도適當하오)
十三人의兒孩가道路로疾走하지아니하여도좋소.
- 이상, <烏瞰圖 詩第一號(오감도 시제1호)>
하지만 도통 시의 실마리를 잡을 수가 없다. 오히려 읽기가 영 불쾌하다. 13명의 아이가 도로를 휘달리며, 시끄러울만치 '무섭다, 무섭다' 거린다. 을씨년스럽다는게 이런 느낌일까.
이 작품은 <오감도>라는 이상의 연작시 중 첫째 작이다. <오감도>는 30호까지 연재될 계획이었으나, 작품들 자체가 불길하고, 비시적이며 난해하다는 폄하를 받으며 15호에서 연재가 중단되었다고 한다. 당시 사람들의 반응이 지금의 나와 같았을까, 참지 못하고 기어이 표지를 덥어버리고 책장에 쑤셔넣었다.
도망치듯 서둘러 겉옷을 챙겨입고 밖으로 나왔다 바람을 좀 쐬야겠다. 내 자취방은 홍대와 신촌 사이의 시가지에 놓여있어서 대문 밖만 나와도 온데 술집이었다. 어느 집이랄 것도 없이 손님을 자석처럼 끌어다 줄거라 믿고 음원 차트를 휩쓴 노래들을 틀어 놓고 있다. 시를 공부하며 가장 회의가 드는 것이 이 대중가요들이다. 가요는 가사가 빠지면 아무런 힘도 못쓸 음악이다. 가요는 음악보다는 시에 가깝다. 요즘 가요는 가사가 하나같이 다 못생겼다. 그러니 가요에 어디 봐줄 구석이란게 있을까. 곡 쓰는 양반들도 그걸 아는지 무능력을 겉멋으로 감추기에 바쁘다. 의미 모를 바운스니 리듬이니 그루브니 하는 것들로 유통기한을 애써 늘려보려한다. 읽을 수도 있는 문자의 의미도 못 깨우치는 양반들이 어찌 읽지도 못할 소리의 의미를 깨우치랴.
얼마 걷다 신촌까지 이르렀다. 오늘따라 신촌에 사람이 넘치는 듯 했다. 유명한 가수가 공연이라도 온 모양인가 싶었다. 신촌대로에 들어서자 도로를 한가득 메운 행진이 눈에 들어왔다. 퍼레이드인 것 같아 빠른 걸음으로 쫓아가다. 여기저기 무지개색으로 치장된 연행물들을 보고 아차 싶었다. 퀴어퍼레이드 날인가보다.
아직도 이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되찾기에는 멀었는가 보다. 퍼레이드 일행이 전부가 아니었다. 여기저기에 종교적, 사회적 이유로 이들을 막아서려는 집단들이 이를 갈고 뭉쳐있었다. 저들을 향한 거부의 팻말을 치켜 세운채 소리 높이고 있었다. 퍼레이드 일행은 아는듯 모르는듯 제 갈 길을 위풍있게 행진을 거듭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장면 하나 하나가 위태해 보이기까지 했다. 금방이라도 충돌이 일 것만 같았다.
13인의 아해들이 도로를 내지르고 있었다. 막다른 골목이든 뚫린 골목이든 그것은 상관이 없었다. 심지어 13인의 아해들이 더이상 도로 위에 있지 않아도 좋았다. 중요한 것은 무서워하는 아해와 무서운 아해가 있다는 것이었다.
- 정승한, <!를 구부려 ?를 만드는 일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