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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관우 Jan 01. 2023

계약만료 계약종료

책은 계약만료, 회사는 계약종료

저서 <서울은 좀 어때> 정산 내역입니다. (파일첨부)

*<서울은 좀 어때> 도서는 판매 부진과 과재고로  2023년 폐기 예정입니다.*


첫 번째 에세이가 나온 뒤 4년 만에 처음으로 인세 정산서를 받았다. 판매 부진. 중쇄를 찍지 못했으니 인세 역시 소소했다. 얼마가 됐든 뭘 써서 돈을 버는 일은 뿌듯했다. 단지 시간만을 투자해서 얼마가 되든 버는 일 자체가 대단한 거 아닌가? 자주 가는 스타벅스에서 마시는 이 커피 한 잔을 팔기 위해서는 인건비도 들고, 재료 원가도 들고, 이 공간을 유지하기 위한 비용도 들 테고, 그에 비해서 글을 써서 돈 버는 일은 아무것도 필요 없이 그저 내가 시간만 들이면 되는 일이니까. 그렇게 낭만적으로만 생각했다. 


 5년 전쯤 얼추 모아진 이야기들이고, 그때까지 써둔 에피소드 들은 내 20대의 이야기들이다. 지금 보면 낯부끄럽고 창피한 글과 경험들. 그 모든 시간들을 글로 써서 받은 인세라고 생각하니 들인 시간에 비해 너무 형편없는 결과물이다. 지난 연말에 준비했던 한 가수의 콘서트 대본은 앉은 자리에서 2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2시간을 투자해 쓴 대본이 몇 달 동안이나 쓰고 다듬었던 책 원고보다 10배는 더 벌었다. 글 쓰는 일이 직업이니 첫 번째 에세이는 철저하게 망한 프로젝트다. 그래서 에세이는 더 쓰지 않으려고 했다. 


 그런데도 사람들을 만나면 ‘이런 책을 준비하고 있어’라는 되지도 않는 말들을 뱉고 다니고 있다. 내 선에서 정리되지 않았던 계획들이 사람들을 만나 말을 하는 동안 차곡차곡 완성되고 있었다. 그렇게 다음 책의 제목과 방향성 정도는 잡혔다. 나 살빼고 있잖아, 나 요즘 운동해. 담배 안 피운지 좀 됐어. 일단 입 밖으로 뱉어놓으면 어느 정도는 실행되겠지 하는 마음. 이건 바람(램)이다. 노력보다는 저절로 됐으면 하는 쪽에 가깝지만 그래도 이뤄보고 싶은 목표, 그 목표에 도달하고 싶은 욕심. 대게는 터무니없는 망상이기도 하지만 좋아하는 일이기도 하다. 나… 글 쓰는 걸 좋아하고 있었구나?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는 그 순간의 내가 좋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지났나? 내가 이렇게 오래 앉아 있었다고? 그럼에도 게임을 오래 했다거나 드라마를 볼 때처럼 시간을 허비했다는 느낌보다는 내 시간을 나에게 집중했을 때 드는 포만감. 먹지 않아도 배부르고, 이불 속에 들어가서 ‘오늘 잘 살았어’ 나를 도닥일 수 있는 하루. 그 하루가 하루 이틀이 되고, 오늘이 될 수도 있었으면. 


 잘 다니던 회사에 계약 종료를 요청했다. 곧 퇴사를 하게 되고, 다시 프리랜서가 된다. 뭐 멋있는 거라고 다시 작가로 지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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