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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물딱진 박똥글 Dec 09. 2021

퇴사 시그널

자가격리 이후 퇴사 결심을 하다.

퇴사 시그널 1

 자가격리가 해제되고 드디어 월요일 첫 출근을 했다. 근데 정말 신기한 게 자가격리 중에는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너무 상쾌하고 기분도 좋고 컨디션이 매일 좋았었는데(심지어 생리 전 증후군, 생리 중 기간 모두 포함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첫 출근 아침 머리가 너무 아프고 얼굴도 엄청 붓고 심지어 코피까지 나는 것이다. 사실 그전에 사람들이 뭐라 할까, 회사에서는 어떻게 처리할까 걱정이 너무 많이 되었고 긴장도 많이 하기는 했지만 이렇게 신체화로 나타나는 것을 보며 내가 출근 스트레스가 상당하구나를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도살장에 끌려가는 듯한 마음이었다.


 어쨌든 그렇게 준비를 하고 정말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첫 출근을 했는데, 긴장했던 것과는 달리 사람들은 그냥 휴가 길게 다녀온 정도로 생각하고 별다를 게 없었다. 괜히 나 혼자 지레 겁먹었던 거였다.





퇴사 시그널 2


 그리고 출근하고 나서 부서장님이랑 내 업무를 대리해 주신 상사분께 준비한 마카롱을 선물로 드렸다. 부서장님은 좋게 받으셨는데 직장상사는 본인은 별로 한 일이 없다며 안 받겠다고 했다. 처음에는 예의상 그러는구나 생각했는데 너무 부담스러워하면서 '사람들이랑 나눠먹을게요.' 하면서 가져가고선 점심시간 때 저한테 '사람들한테 나눠줬어요.'라고 굳이 얘기를 하는 것이다. 나는 처음엔 '아~네~' 이렇게 대답을 했는데 생각하면 할수록 싸한 느낌이 계속 올라왔다. 보통은 별로 한건 없는데 고마워요라든지, 사람들이랑 나눠먹었어요. 맛있네 이렇게 얘기하지 않나? 내 성의가 무시당하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아는 언니한테 물어봤다. '이런 상황인데 이건 예의로 봐야 하는 건지 선 긋기로 봐야 하는지 제삼자의 입장에서 판단해 줘 봐' 그랬더니 언니가 정확하게 선 긋는 거고 네가 준 건 안 먹겠다는 뜻 같다고 했다. 속상을 넘어 마음에 상처가 되었다.


 그 상사와는 원래 사이가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내가 일을 진짜 못했기 때문. 지금 하는 일은 일반 사무직인데, 원래도 꼼꼼한 성격이 아닐뿐더러 동기부여가 되어야 열심히 하는 성격 탓에 마음이 없는 일을 하려니 계속 실수를 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늘 긴장한 상태여서 말도 헛 나오고 계속 깜빡깜빡하니 상사 입장에서는 내가 얼마나 답답하고 스트레스였을까. 이해가 된다.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도 내가 나 같은 사람이랑 같이 일한다고 하면 오히려 내가 퇴사를 고려할 만큼 열 받을 것 같다. 그래서 내가 더 잘해야지, 내가 마음을 잡아야지 내가 잘하면 해결될 일이야 하고 노력을 해도 한계가 분명히 있었다.


 지나고 생각해보니 ADHD에 우울이 겹치면 그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그때 당시엔 관계에서 너무 눈치를 보고 회사에 오면 긴장+위축이 되었다. 그래서 사고의 회로가 정지한 상태로 있다가 퇴근하게 되고, 퇴근을 하고 나선 긴장이 풀어지면서 집에 도착하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창의적이고 생산적인 생각은커녕 그저 쉬고 싶다는 생각뿐... 이런 의미 없는 이 생활이 무한 반복인 느낌이었다.






퇴사 시그널 3


 자가격리 동안 읽은 '타이탄의 도구들'. 밑줄 치고 필사를 하며 독서노트까지 만들며 읽었다. 그중 걸리는 본문 하나가 있었다.


 구글의 임원을 지냈던 크리스 사카. 그는 역사상 가장 큰 성공을 거둔 벤처 금융의 대표이며 트위터, 우버, 인스타그램, 키스타더 등을 비롯한 수십 개 기업에 초기 투자자로 상상을 초월하는 부를 축적한 사람이다. 이 사람이 이렇게 말한 내용이다.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방식으로 하라>


그는 이렇게 말했다. "공격적인 삶을 살고 싶었다. 끊임없이 커피를 들이키며 하루를 보내는 대신 좀 더 삶의 본질적 가치에 집중할 시간을 갖고 싶었다. 내가 배우고 싶은 걸 배우고, 만들고 싶은 걸 만들고, 진심으로 성장시키고 싶은 관계에 투자하고 싶었다."


그가 이 통나무집으로 온 것은 아직 투자 게임에서 돈을 벌지 못했던 젊은 시절의 일이다. 모두가 실리콘밸리로 모여들 때 그는 가까스로 돈을 빌려 이곳으로 온 것이다. 크리스는 지금껏 자신의 삶에서 이 통나무집을 산 것을 최고의 투자로 꼽는다. "돈을 벌려면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를 아는 게 무척이나 중요하다. 내가 원하는 곳에 있어야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돈을 벌 수 있다. 원하는 방식으로 돈을 벌지 않으면, 돈을 벌어도 행복해지지 않는다."


(...)


크리스는 이렇게 말했다. "인생에는 두 가지 패턴이 존재한다. 공격적인 삶과 수비적인 삶이다. 돈을 잃고 싶지 않다면 수비적인 삶을, 돈을 벌고 싶다면 공격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 수비적인 삶은 내 삶을 타인에게 맡기는 것이다. 공격적인 삶이란 내가 내 삶을 주도해나가는 삶이다. 이 둘 중 어느 것을 선택해도 좋다. 단, 돈을 벌고 싶다면 공격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 부를 결정하는 골은 대부분 공격수들이 넣기 때문이다."


- 타이탄의 도구들 p. 59~61-




 자가격리를 하는 동안 느꼈던 감정과 생각들을 그대로 나타내 주는 것 같아서 소름이 돋았다.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구나...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채운 하루하루를 보내며 충분히 힐링하니까 다양한 아이디어도 떠오르고 긍정적인 마음과 행복한 마음이 마구 솟아나는 경험을 자가격리 동안 했었다. 그리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들로 채워졌었다. 그전에는 내 삶을 버틴다, 버겁다고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것처럼 느낄 때가 많았다. 하지만 나의 삶은 너무 감사하고 소중한 것이고, 돈을 벌기 위해서 잘하지도 맞지도 않는 일을 하며 긴장과 스트레스 속에서 경직된 채로 허비할 만한 가치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사실 이런 생각들은 이전부터 어렴풋이 해왔던 것 같다. 당장 용기가 안 났었을 뿐. 하지만 나의 퇴사 시그널은 이번만큼은 정말 분명했다. 당장 수입원이 끊기고 쪼들릴 수도 있다. 그건 이전에 내가 가장 두려워했던 것이다. 그래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안주하기만 했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너무 불행했다. 지금 단 4일의 회사 생활로 다시 자신감과 자존감은 바닥을 치고 있지만 다시금 이 시그널을 따라 공격적인 삶을 살리라 다짐을 하면서 퇴사를 결심하게 되었다. 그리고 당장 말씀드렸다.


저! 퇴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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