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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쉬어갑니다 Mar 07. 2021

코로나 시대의 조리원 생활

feat. 공포의수유콜(을기다리게 될 줄이야)

어느덧 아기는 태어난 지 16일째를 맞이했다.

아무것도 안 하는데 시간은 너무 잘 가고 벌써 내일 조리원 퇴소를 앞두고 있다.


집에 돌아가면 셋이서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느라 정신없을 것 같아서 남겨보는 조리원 생활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일 퇴소인데 오늘 비로소 몸이 쉬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가슴이 아파서 일어나지도, 새벽에 눈이 번쩍 떠지지도 않은 채 아침 7시가 넘도록 자다가 처음으로 수유콜에 일어났다..)

망했다. 

이대로 일주일만 더 있고 싶으면서도 하루라도 더 있으면 미칠 것 같은 복잡한 심경이다.


제왕절개 3박 4일 후 조리원에 입소했다.

가장 큰 난관은 모션 배드가 사라졌다는 것이었다. 처음 하루 이틀은 신랑 도움 없이 잘 일어나지 못했다.

새벽에 가슴이 아프거나 화장실에 가고 싶을 때, 

자고 있는 남편을 깨우기도 좀 그랬지만, 빠른 회복을 위해 낑낑거리며 다녀오곤 했다.


큰 난관인 줄 알았는데 더 큰 난관은 따로 있었다.

출산보다 더 어마무시하다는 젖. 몸. 살

임신했을 때부터 무시무시하게 확장되는 가슴을 보며 조짐이 보이긴 했지만, 출산하고 3일이 지나니 정말로 내 얼굴만 하게 부푼 가슴을 확인했다.

목, 허리 통증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딱딱하고 열이 나는 가슴은 불에 타는듯했고 아직 수유도 잘 되지 않아 아픈 가슴을 부여잡고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너무 아파서 30분마다 냉팩을 갈아야만 했고, 가슴이 무겁고 아파서 침대에 눕는 것조차 불편했다.


통증도 무서운데 젖꼭지에서 줄줄 흐르는 이상한 액체 (사람들은 이를 모유라 한다.)에도 적응을 해야 했다.

모유가 많다는 건 분명 좋은 일이라고 들 하지만, 난생처음 겪는다면 황당하기 이를 때 없다. 

방금 옷을 갈아입었는데 그 부분이 젖어있다. 

젖기만 하면 괜찮은데 우유 냄새, 일명 젖비린내 같은 것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그래도 인간답게 살아보고자 샤워하려고 옷을 벗었는데 뭔가 뚝뚝 뚝뚝 계속 떨어진다. 

세면대에서 샤워부스까지 세 걸음, 일촉즉발의 상황이다. 


매일매일 가슴 마사지를 받으며 일주일 정도 지나니 가슴은 진정을 했지만, 난관은 끝이 아니었다.

모. 유. 수. 유 

아 그것은 정녕 젖소의 삶인가요. 수유콜로 아침을 시작해서 수유콜로 하루를 끝냈다.

조리원마다 특성은 다르지만 이 곳에서는 수유콜을 강요하지는 않는다.

아기를 낳기 전 수유콜 안 받고 조리원에서만큼은 푹 쉴 거라고 호기롭게 다짐했었다. 

그것은 내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다.

다짐을 했던 그 사람은 부지불식간에 사라지고 수유를 하지 않으면 가슴이 무겁고 아파와 두-세 시간 동안 아가가 깨지 않는다면 먼저 가서 언제쯤 깰까요. 유축할까요 라고 물어보는 내가 서있었다.. 


제왕절개를 선택한 후 출산에 대한 고민은 사라졌었지만 마지막까지 정말 이상할 것 같아 모유수유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걱정이 있었다. 어제까지 모르던 사람이 내 젖을 빤다니 생각만 해도 어색하고 기분이 좋지 않았다. 막상 닥쳐보니 생각보다 깊게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조리원 입소와 동시에 내 가슴은 공공재가 되어, 들어오시는 선생님들마다 조물조물하기 일쑤였다.

아기가 갑자기 젖을 쭉쭉 빠는 게 아니기에 처음에는 젖이 나오도록 만져줘야 하고 입에 물려줘야 하는 등의 과정이 있었다. 또한 통증으로 누가 물던 꼬집던 제발 가슴 좀 시원하게 해줬으면 하는 마음이 더 컸다.

그리고 조금 익숙해진 뒤에는 오물오물 거리며 본능적으로 먹고살고자 하는 리틀 타이니 휴먼이 그저 신기했고, 또 조금 지나니 그럭저럭 귀여웠다. 지금은 예뻐 죽는다. 하하


물론 아직도 자세가 덜 잡혀 팔다리 머리 어깨허리도 아프고, 한번씩 하고 나면 진이 다 빠지고

너무 힘든데 조금 있으면 또 수유콜이 와서 좌절하지만 가만히 아기에게 젖을 물리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정말로 나의 모든 것을 나눠줌으로써 이 작은 아기가 사람으로 되는구나..

경이롭다.

그 감정에 완모를 선택하는 엄마들이 있는 거구나 하고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저는 짧게 하겠습니다... ㅜㅜ)


대망의 더더더 큰 마지막 난관...

사람들이 조리원 천국이라고, 있을 때 즐기라는 말을 한번 더 들으면 5만 번인 것 같아서 몹시 서터레스였다.

코로나 시대에 조리원에 있어보지 않았으면 말을 마세요..

조리원 프로그램 전체 취소, 외부인 출입금지, 면회 금지, 외출금지, 아기 아빠 한 번 외출 후 재출입 금지(조리원마다 상이)

이 말인즉슨 2주 동안 묵언수행, 직립보행 불가, 방에 들어앉아 하루에 5-6번 수유, 3번의 식사와 3번의 간식을 받아먹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남편도 나도, 교도소 안에 있는 것만으로도 벌을 주는 효과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병원에 있는 조리원을 이용한 나는 18일을 한 건물에 갇혀 있는 것이고, 방이 꼭대기인 덕분에 라푼젤이라는 별명도 생겼다. ^^..

파워 바깥러인 나에게 가장 큰 고난은 가둬두는 것이었기에, 며칠쯤 지나자 할 일 없는 이곳에서 아기와 놀 수 있는 (내 맘대로 조물조물하는...) 수유콜을 기다리고 있는 날 발견했다.


이렇게 어이없게 내 조리원 생활은 이제 약 20시간 정도 남았다.


아기를 낳는다는 엄청나고도 대단한 일을 주위에 함부로 권할 생각은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쯤은 내 모든 걸 내어주는 것 따위 아무것도 아니라는 신비스러운 경험을 해보고 싶다면 굳이 말리지는 않을 것 같다. 

아 물론! 퀘스트처럼 계속되는 뼈를 깎는 고통은 중간에 되돌릴 수 없기에... 선택은 본인들의 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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