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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medy Feb 24. 2022

배우자 기도, 2

후아유


하나님, 자주 남기려 했던 배우자에 대한 고민이 하다가 안하고 하다가 안하게 되어서 기억이 나는 지금에서야 쓰네요. 무슨 말을 쓸까, 뭘 더 이야기 할까, 고민만 많아지고, 기준만 생기고. 하나님, 아직도 배우자에 대한 생각을 하게 하시는 게 참 신기해요. 하루 이틀, 그냥 문득 떠오르는 그런 생각들이 아니라 정말로 간절하게 원하는, 뭔가 그런 것들을 품을 수 있게 되어서 참 좋은 것 같아요. 그래요, 언젠가는 저 혼자가 아닌 누군가와 함께 웃을 수 있는 그런 때가 오겠죠?


하나님, 오늘은 저에게 예비 하셨다 한 그 분의 신앙을 위해서 기도 할래요. 하나님, 기도는 되게 중요한 것 같아요. 기도를 하지 않게 되니 저도 마음이 많이 힘들어지고, 또 하나님에게로 부터 멀어지고. 지금까지 제 모든 여자친구들은 저를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끔 만들었지만 그렇지 않은, 저를 하나님께로 인도해 줄 그런 사람이 나타날까요? 제가 무너져 있을 때 건져줄, 그런 사람들을 기대해 보아도 괜찮을까요? 기대는 실망으로, 믿음은 좌절로 이어지는 관계들을 너무 많이 보고, 겪어서 그게 가능한건지, 당신이 나에게 준다고 약속하셔도 그게 진짜 당신인지, 아니면 그저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 나오는 갈망인지, 아니면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에 대한 아름다운 환상인지, 나는 그때가 될 때 까지, 그 사람을 만나기 전까지, 그 사람이 그 사람임을 깨닫고 받아들이기 전까지는 믿지 못할 것 같아요. 반복되는 실패는 곧 습관으로 이어지기에, 저는 당신으로 나아가는 관계를 맺지 않는 습관에서 벗어날 자신이 없어요. 그 사람도 어쩌면 무너지는 관계들만 맛본 사람들이지 않을까요? 무너짐에 익숙한 두 사람이 만나 행복함을 원하다니, 그거야말로 당신에게 드릴 면목없는 기도겠네요. 그러니 어쩌면 제가 원하는 그 사람은 아직 한번도 사랑을 경험해 보지 못해서 그런 습관이 없는 사람이거나, 자신의 그런 습관을 깨닫고 고치려고 하는, 그런 사람이여야 겠네요. 맞아요, 물론 저도 고쳐야죠. 


하나님, 신앙의 유산을 가지고 싶어요. 저는 가진게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니에요. 다만 하나님, 당신의 손보다는 너무나 작고, 보잘것 없어서, 신앙과 가치관이라는 튼실한 무언가 보다는 조금 뒤떨어지는 것 같아서요. 그래서 저랑 다르지만 같은 신앙을, 제가 부족한 부분이 더 뛰어난, 그런 사람이 되기를 기도할래요. 그녀가 기도하는 사람이기를, 그래서 저 또한 그녀의 기도에 부합하는 사람이기를 원해요. 나는 내세울 것이 별로 없어요. 돈이 갑자기 몇 천억이 생긴다 한들, 내가 바로 바뀌지는 않으니까요. 내가 어떤 것에 정말 대단한 사람이 되어도 이건 아마 변하지 않을 것 같아요. 자존감 문제일수도 있고, 힘듦의 문제 일수도 있겠죠. 하지만 저는 저의 부족함을 잘 알아요. 행복함을 가지지 못한 사람이 행복을 바란다니, 사치이지 않을까, 싶기도 하지만, 그래요, 이런 작은 희망, 꺼질 듯 말듯 한 소망이 지금 나를 살게 하는 거겠죠? 


하나님, 만들 수 없다고 생각 한 것, 이룰 수 없다고 생각한 것, 나는 하지 못한다고 고백했던 것들을 이뤄내 보고 싶어요. 그런데 나 하나로는 부족해요. 그 사람도 당신을 믿고, 의지하고, 사랑하고, 당신의 일을 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길 바래요. 서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그런 것들 있잖아요. 그런 것들이 서로로 인하여 가능케 되어지는 삶이 가능할까요? 


하나님, 나는 아픈 부분들이 많아요. 나의 가치관에 삐걱대는 부분들이 너무나 많아서, 누군가와 함께 할 때 마다 그 사람의 한 부분들이 나를 계속 찌르나봐요. 


그래서 좀 무서워요. 내가 사람들을 아프게 할까봐도 무섭고, 내가 나의 물려받은 죄를 외면할까도 무서워요. 나의 이런 면모들을 드러내지 않게 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행복할지, 드러내어 변화하게 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더 행복할지, 나는 알지 못해요. 그러나 확실한 것은 변화는 어렵고, 힘들고, 아프기에, 나를 변화하게 만들면서 까지도 내가 사랑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을 나는 많이 사랑하는 것 아닐까요? 


주님, 나는 사람을 진짜 못믿어요. 바람피는게 얼마나 쉬운지, 그 위에서 보시는 당신은 잘 아시잖아요. 결혼의 절반 이상이 이혼으로 끝나고, 그 이유의 최대 사유가 바람과 섹스 리스라니… 좀 슬프지 않나요?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기에, 나에게는 항상 당신의 희망을 믿을지, 숫자의 진실을 바라볼지, 그 선택을 하게 돼요. 심리학은 결국 통계학인데,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숫자와 통계인데, 당신의 개입이 계산된 것이 통계인데, 통계가 아닌 희망을 바라보라니, 이 얼마나 비논리적인 상황일까요? 그러게요, 희망을 품는 법을 아직 잘 모르나봐요. 멀어보인다 해도 당신이 개입하면 가까워진다는 것을 앎에도, 결국 가까워 보여도 당신이 멀게 하면 멀어진다는 소리이니, 그닥 희망적이지는 않나봐요. 


주님, 그러니 얼마나 좋은 사람이고, 얼마나 내가 마음을 많이 주어야, 얼마나 그 사람이 증명해 내야 내가 믿을 수 있을까요? 당신은 내게 그 사람이 절대로 바람피지 않을거라 장담할 수 있나요? 나는, 나는요? 나는 내 마음을 지키고, 결혼을 후회하지는 않나요? 살기로 선택한걸 후회하고 한 발자국씩 당신으로부터 멀어지기를 선택하지는 않나요? 어떤가요? 나의 죽음에는, 나는 당신과 얼마나 닮아 있나요? 얼마나 많은 당신의 조각들이 내 곁을 지키고 있나요? 나는, 우리는, 함께 더 큰 당신의 조각을 이뤄나갔나요? 확신하지 못하는 미래는 불안으로 다가오고, 실패의 경험은 희망이 아닌 두려움이 되어 더불어 살아가보려 하는 나를 더욱 옥죄어버리는 것 같아요. 그러니 주님, 내가 만날 그 사람에게 차라리 내가 미치게 해주세요. 순종 아닌 사랑으로. 그게 그렇게 어려운 걸까요? 많은 부부들이, 기독교인이라 하는 부부들이 순종으로 살아간다고 해요. 사랑 말고요. 그리고 서로가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는 걸, 전 보잖아요. 주님, 고작 3년갈 뜨거움, 고작 5년갈 사랑, 고작 8년갈 결혼 생활을 하려고 난 살아있는게 아니에요. 고작 그딴걸 위해서 날 살렸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그래도 주님, 숫자는 저를 미치게 만들고, 믿지 못하게 만들어요. 아무리 당신이 확실하다고 해도, 숫자는 그걸 반증하는 걸요? 아무리 당신이 사랑을 중요시 한다 하시고 결혼은 축복이라고 하셔도, 그래도, 그 숫자들은, 그 고백들은, 결혼이 족쇄라고 이야기 하고, 힘들다고 이야기 하는걸요? 


나는 무엇을 믿어야 하나요? 


하나님, 내가 보니 정말 시너지가 일어나는 관계는 별로 없는 것 같아요. 개개인으로는 참 좋은 사람들도, 뭉치니 사역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도 많고, 또 저도 그런 관계를 경험하기도 했잖아요. 하나님, 그게 당연한 걸까요? 아니면 결혼할 때 까지는 당신을 중심으로 바라보는게 옳은 걸까요? 저는 당연히 일이 먼저고, 우선시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당연히 당신과의 관계가 좀 더 튼튼하다고 생각해서 사랑보다는 사역, 그 사람 보다는 당신과의 관계를 우선시 하는게 옳다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제 기도제목 중 하나도 시너지가 나는 사람이였는데, 함께 자라나가는 과정에 필연히 둘 다 낮아지는 것이라면, 그게 옳은 관계인지 아닌지는 정말 모를 것 같아요. 함께 하지 않을 때 가장 좋은 시너지가 나는 사람들이 그리도 서로를 좋아한다 사귄다 하는 것을 보면, 그래요 주님, 어쩌면 우리는 가장 옆에서 우리를 사랑해준다고 이야기 해 줄 사람이 더 필요한 건지도 몰라요.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계실지, 아니면 씁쓸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계실지, 나는 잘 몰라요. 나는 당신을 흐뭇하게 하는 연애를 하고 싶은데, 그냥 사람들에게 축복받는 사랑을 하고 싶은데, 그게 불가능해 보여요. 둘이 있을 때 시너지가 나려면, 둘 다 다른걸 비슷한 열정으로 잘해야 하는데, 그래야 부딪히지 않고 인정하며 함께 갈텐데, 나는 어떤 사람을 인정 하게 될까요? 나는 어떤 사람을 사랑하게 될까요? 나는 과연 그 지긋지긋한 시너지 없는 관계를 극복해 내거나, 아니면 시작부터 시너지 가득한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요? 맞아요, 주님, 믿음 없는 말이에요. 불안이거든요. 


하나님, 나는 잔잔한 사랑만 해봤던 것 같아요. 불과 같을 것이라 생각했던 육체적 사랑도, 사실은 잔잔함조차 사라질까봐 어거지로 우겨넣은 연탄이였거든요. 따뜻해서 불이라 착각하지만, 너무 오래 있으면, 그래요, 죽어버린단 말이죠. 그래서 주님, 나는 머리가 멍 해질 정도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어요. 아름답고 예뻐서, 그냥 멍 하니 바라보며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고, 집중도 되지 않고, 그냥 그런 사람. 그리고 그 멍함이 좀 오래 갔으면 좋겠어요. 한 90년 정도만요. 영겁을 살아가는 당신에게는 90년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니까, 그 정도는 해주실 수 있겠죠? 그것만 확증해 주시면, 나는 누구던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을텐데 말이에요. 신앙의 선배들은 다들 꿈 깨라고 하지만, 당신은 나에게 꿈을 꾸는 자가 되라고 하셨잖아요. 그러니 나는 꿈을 한번 꿔보고 싶어요. 행복만으로 가득찰 수는 없어도, 우수와 슬픔과 아픔으로 가득차지만은 않았으면 좋겠어요. 사랑만 할 수는 없겠지만, 사랑도 하는, 그 사랑 이상을 하는, 에로틱, 플라토닉, 또 아가페의 사랑까지 겸비한, 그런거요. 당신이 나를 그렇게 되어가게 깎아 나가시니 나는 살점이 떨어져나가는 고통을 마음으로 겪어도 참아내요. 그러니 나의 이 고통을 단번에 잊을만한 사람을 보내줘요. 내가 참아온 시간에 보상이 되고도 남는, 그런 사람이요. 이 사람일까? 아닐까? 하는 사람 말고, 이 사람 일 수 밖에 없는, 서로 여야만 하는 사람이요. 서로서로 간보고 재는게 아니라, 푹 빠져서 아무 생각도 안드는, 그런거요. 어차피 지금까지 살아온걸로 웹툰 열편, 영화 한두편은 쓸 수 있을텐데, 스펙타클한 호러가 아닌 아름다운 로맨스,에 코미디를 약간 겸미한, 그런 행복한 꿈 정도는 꿔봐도 되잖아요. 꿈을 꾸라 하셨으니, 이젠 좀 행복한 꿈도 꿔볼 차례잖아요. 


그러니 주님, 나의 불안을 잠재워 주세요. 나의 불안을 눌러주세요. 통계를 배우니 두렵지만, 통계를 이기는 당신을 나는 믿고 싶어요. 통계만 보기에는 세상이 너무 암울해요. 하나님, 당신이 만드신 이 세상이, 이렇게나 암울하다니까요. 하지만 당신은 나를 기독교인으로, 당신의 아들이요, 친구요, 또 종으로 부르셨어요. 이 세상이 그런 세상이 되지 않을 수 있다는 걸 증명해 보이라고요. 그 관계가 고작 그딴 관계가 아니라는걸 보여내라고요. 그러니 주님, 나는 내 가정이, 당신과 함께하는 작은 공동체로 만들어 세상과는 사뭇 다른 무언가를 만들어나갈 꿈을 만들래요. 지금까지 비현실적으로 일하신 당신을 보고, 그래요, 나는 꿈을 꿀래요. 하나님 당신과, 또 눈부실 당신과 꿈꾸는 그런 꿈 말이에요. 


그러니 주님, 나를 더 굴려주세요. 나를 더 움직여 주세요. 나를 더 변화하게 해주세요. 이정도 풀무불, 견디어 내고야 말테니, 주님, 내가 자신감이 생길 때 까지, 행복을 이룰 수 있을거라 생각 될 때 까지 나를 변화시켜 주세요. 그래서 그 때에 내가 기쁨의 한숨을 쉬며 한마디 내뱉을 수 있을수 있도록 해주세요.


우리가 정금이 되어 나왔으니,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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