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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진 Dec 02. 2020

만원의 호강

가족


만원의 호강


저와 아빠의 회사 거리는 버스를 타고 다섯 정거장 정도 거리에 있어요. 문득 점심을 같이 먹고 싶다는 생각에 연락을 드렸죠. 자주는 아니지만 일 년에 한두 번 정도는 이런 생각이 납니다. 아빠는 언제나 긍정에 대답을 주시며 하트를 빼놓지 않아요.


 아빠와 아들의 카톡 대화는 아주 단출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아빠는 보수적인 분이 시고 세상이 변해도 변하지 말아야 할 게 있다고 굳게 믿고 계신 분이에요. 그런 아빠가 조금씩 변한 건 누나와의 오래된 전쟁 덕분인지 10년 전 경미한 뇌출혈로 쓰러진 후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아빠가 여직원에게 이모티콘 사용하는 방법을 터득 한 후로는 한동안 어색한 라이언과 대화를 했었죠. 말 수가 적으신 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처음 아빠 회사에 갔었을 때는 적지 않게 놀랐던 기억이 있어요. 유머스럽고 말도 곧잘 하시면서 때로는 분위기 메이커까지 자초하시더라고요. 아빠는 그런 자신의 모습을 보여 주시고 싶으셨던 것 같아요.


저는 가끔 아빠 방에 들어가 도둑질을 합니다. 옛날에 입으 셨던 무스탕이나 골덴바지는 저에게 있어서 어떤 머스트 헤브 아이템보다 소유욕을 자극합니다. 가끔 의외의 물건들도 발견해요. 침대 머리 맡에 '직장에서 써먹는 유머'라던가 '빵빵 터지는 유머집' 뭐 이런 류의 책들도 발견됩니다. 그 것들을 보며 연습을 하고 있는 아빠를 생각하면 헛웃음이 괜시리 지어집니다. 가부장적인 아버지가 왜 회사에서는 편하신데 집에만 오면 그리 불편한지 저로서는 잘 알지 못해요. 분명 저에게도 잘못이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집이란 곳이 가장 편안해야 하는데 아빠는 늘 집에선 가장 작은 존재로 전락해요. 아마 아프시고 나서 경제력을 잃은 타격이 가장 큰 요인이 아닐까 추측합니다.


아빠와 만나 맛집이라 알려진 칼국수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아빠는 면과 국물을 좋아하셔서 칼국수를 선택하게 되었어요. 사람이 많았지만 아주 맛있게 밥을 먹었습니다. 밥을 먹기 전에 아빠는 가족이 아닌 누군가에게 배운 인증샷을 찍고는 흐뭇하게 젓가락에  손을 가져가십니다. 칼국수는 한 그릇에 3500원이었고 거기다 만두 3000원짜리를 하나 먹었으니 총 10000원이 나왔습니다. 배불리 먹고 아빠와 저는 택시를 타고 엄마가 일 하시는 노인복지회관으로 향했어요.


복지관 1층에는 시에서 운영 중인 작은 노인분들의 카페가 있어요. 타 카페들보다 저렴한 가격에 티타임을 가질 수 있습니다. 도착을 하고 보니 엄마가 이미 양손에 커피를 들고 계시더라고요.  아마 식사 전 찍은 인증샷의 행선지가 엄마의 카카오톡이었던 듯합니다. 서로 점심시간에 잠깐 나왔기에 몇 마디 말장난과 커피만 주시고 급하게 올라가셨어요. 아빠와 저도 커피를 들고 다시 회사로 향했습니다.


택시 안에서 아빠의 벨소리가 울려 퍼지자 주름진 팔자가 접히며 얕은 미소가 번지셨어요. 잠깐 핸드폰 화면을 응시하시더니 받으셨어요.


"네, 네, 네, 그렇네요, 맞아요. 이제 가고 있어요."

"그럼요~ 아들이랑 당신 덕에 오늘 호강했지~"


업무에 복귀하자 엄마에게 메세지가 왔어요.


"아들 수고했네~ 얼굴 보여 줘서 고마워~❤️"

"아빠가 즐거워하는 거  보니까 좋으네 덕분에 호강했어~"


뭔가 음... 그러니까 호강이라는 단어가 왜 이리 부담스럽고 남사시럽게 다가오는지 모르겠어요. 가진 게 없는 저는 호강이란 게 참 멀고 아득하게만 느껴졌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자주 올걸 하는 생각도 드네요. 잊지 않게 기록해 두려고 해요. 저는 오늘 한시간과 만원으로 두 분 다 호강시켜 드린 멋진 놈이 되었어요.


오늘도 많이 웃는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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