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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준성 Nov 21. 2023

백마리 개, 겨울밤

17. 10번의 겨울을 보냈다.

노을이 멋지다. 낮은 산등성이를 넘어가는 해의 여운이 반갑다. 계절마다 시간은 다르지만 이쯤에서 하던 일을 멈추고 앉는다. 생각도 마음도 비운다. 이어 불어오는 바람이 차갑다. 옷깃을 여매고 조금 더 기다린다. 해는 넘어가고 노을은 아직도 짙다. 겨울밤이 오는 중이다.





겨울밤은 춥다.


진절머리 나게 춥다. 따뜻한 남쪽이 고향이어서 더 그렇다. 부산에서 보낸 어린 시절은 이렇게 춥지 않았다. 윗지방으로 올 때까지 두툼한 패딩을 입어본 적이 없었다. 지금은 내복에 기모 티셔츠, 거기에 후리스를 걸치고 패딩까지 입는다. 정말이지 추운 겨울이 너무 싫다.


난로 앞에서 보내는 내가 추울 리 없다. 어려운 일이다. 백 마리 중 대부분은 무방비로 겨울을 버틴다. 찬바람을 막는 비닐을 쳐본다. 칼바람에 찢어지는 비닐에 여전히 무방비 상태이다. 8개월 동안 모은 이불을 깔아준다. 오줌에 절어버린 이불 위에 새 이불을 얹는다. 겨울이 지날 쯤에는 5~6겹이 된다. 웅크린 개를 위로하는 안식처는 이것이 전부다.


난로를 틀어준다. 덩치가 작은 개가 지내는 곳의 난로는 꺼지지 않는다. 혹한이면 하루 기름값만 10만 원을 훌쩍 넘는다. 덩치 큰 개가 사는 곳에도 난로를 피운다. 햇볕이 얼마 들지 않는 곳에서 보내는 겨울은 차라리 냉동창고가 나을 지경이다. 기름을 쏟아부어 난로를 피워도 개들은 밖에서 잔다. 결국 얼어붙은 이불에 웅크려 겨울밤을 버텨낸다.





겨울밤은 길다.


쉽게 잠들지 못한다. 오래된 난로는 한밤중에 꺼지기 일쑤다. 돈을 들여 수리했지만 소용없다. 가전제품의 수명이 길더라도 무기한은 아니다. 잠시도 꺼지지 않는 중노동에 시달리는 난로이다. 새벽마다 고장 난 난로를 찾아 리셋해 주는 것이 주된 일과가 되었다.


굳이 밖에서 잔다. 한쪽 눈이 쪼그라드는 소안증을 가진 노견이다. 귀도 먼 지 오래되었다. 밖에서 웅크리고 있으면 발로 깨운다. 엉덩이를 건드려 실내로 들여보낸다. 하루 중 대부분을 잠으로 보내는 노견이기에 잠자리가 중요하다. 창문으로 내려다보이는 1층 베란다에서 노견을 찾는다. 제발 보이지 않기를 기도하며 찾는다.


짖음 없이 조용하다. 발자국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이 추위에 깊이 잠들리 없다. 감성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가만히 지켜보면 안다. 쉴 새 없이 자세를 고쳐 잡아 더 이상 구부릴 수 없을 만큼 웅크린다. 소리 없이 개들이 분주하다. 짖음 없는 겨울밤에 나만 시끄러워 잠을 미룬다.




괜찮단다.


백 마리 개들이 겨울을 잘 지내기 위한 방법을 물으면 돌아오는 답이다. 같은 질문이었지만 다르게 들렸던 것 같다. 나는 잘 지낼 방법을 물었고, 그들은 죽지 않을 방법으로 답했다. 나의 고민이 그들에게는 사치처럼 들렸을 것이다. 겨울이 깊을수록 나의 질문은 복잡해졌고 그들의 답은 간단해졌다.


따뜻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단지 춥지 않기를 바란다. 작년 겨울보다 조금이라도 더 춥지 않았으면 한다. 지난겨울보다 살아내는 일이 조금은 더 수월했으면 한다. 좁쌀만큼 나아져도 충분하다. 이리 10번의 겨울을 보냈고 그때마다 착실히 나아졌다. 10번을 더 보내면 그때는 따뜻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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