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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환 Aug 18. 2021

고유감각훈련과 움직임 명상 (4/4)

몸과의 내면소통

소매틱 운동 - 움직임의 의도와 결과간의 괴리 극복

일반적인 운동들은 스트레칭이나 근력 운동처럼 특정한 동작을 배우고 그 동작을 반복함으로써 특정한 부위의 근육을 강화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반면에 소매틱 운동은 움직임에 대한 "의도"와 그 의도가 가져오는 신체의 움직임 사이의 자동화된 "습관"을 교정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팔은 든다"는 움직임을 수행할 때, "팔 들기"라는 의도와 실제 팔의 "들림"이라는 움직임 사이에는 우리가 의식할 수 없는 수 많은 단계의 자동화된 신경망의 패턴이 있다. 팔을 들 때 실제로 사용되는 수많은 근육들에게 서로 조금씩 다른 신호를 보내고 순간 순간 피드백을 받아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루어서 특정한 동작이 나오도록 하는 뉴럴 네크워크가 관여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은 "의식"에는 떠오르지 않는다. 인간이 하는 모든 움직임 저변에는 이러한 무의식적인 습관 (혹은 고정된 행위 유형)이 관여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무의식적인 습관이 의도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을 때 발생한다. 나는 손을 든다고 의도했는데 불필요하게 팔꿈치를 과도하게 들거나 어깨를 들어올리는 움직임이 섞여서 나오게 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나는 똑바로 선다고 섰는데 사실은 척추나 머리가 한쪽으로 혹은 앞이나 뒤로 기울어져 있는 경우도 많다. 

움직임의 의도와 결과간의 괴리는 특히 스트레스나 불안 분노 등 부정적 정서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는 경우 더욱 심해진다. 의도하지 않아도 부정적 정서의 경험이나 스트레스가 과도한 긴장을 만들어내고 몸의 불필요한 불균형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몸의 불균형은 더 큰 정서적 장애와 통증의 근본 원인이 된다. 소매틱 운동은 움직임의 의도와 결과간의 괴리를 줄이고 고유감각에 집중함으로써 기본적인 움직임에 있어서 몸의 균형과 조화를 이루는데 큰 도움이 된다. 바로 그러한 이유때문에 소매틱 운동은 우울, 불안, 분노, 트라우마 장애, 스트레스 등 부정적 정서의 완화와 통증 감소에도 강력한 효과를 보인다.       

소매틱 운동은 일종의 움직임 명상이라 할 수 있는데, 의도와 움직임 사이에 존재하는 무의식적인 움직임 패턴과 관련된 뉴럴 네트워크에 새로운 습관을 만들어 주는 것을 목표로 한다. 따라서 고유감각 신호에 집중함으로써 몸의 움직임에 대해 지속적으로 알아차리는 것이 훈련의 핵심이다. 몸을 효율적으로 원래 주어진대로 움직이기 위해서는 나쁜 습관과 결부되어 있는 "의도"를 버려야 한다. 제대로 일어서기라는 동작을 하려면 원래 갖고 있었던 "일어선다"는 의도를 버리고 몸의 자연스러운 상태를 느끼면서 일어서는 훈련을 해야하는 것이다. 

움직임에 있어서 의도와 결과간의 괴리의 근본 원인을 보여주는 유명한 연구가 있다. 뇌종양 환자에 대한 뇌수술은 흔히 두개골을 연 상태에서 환자를 깨워 환자의 반응을 보아가며 진행한다. 뇌의 여러 부위에 자극을 줘 가면서 언어 기능 등 중요한 기능에 특별한 장애를 주지 않는 한도 잘라낼 부위를 구체적으로 결정해가는 것이다. 이러한 뇌수술을 진행하는 환자 7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가 최고의 학술지라 일컫는 사이언스지에 발표되었다. 두정엽과 전운동(premotor) 피질이 움직임에 대한 의도나 자각과 어떠한 관련을 지니는가를 살펴본 것이다 (Desmurget et al., 2009).  

피험자들의 오른쪽 두정엽을 자극한 경우 왼쪽 손, 팔, 발 등을 움직이고 싶은 욕구와 의도를 강하게 유발시켰고 왼쪽 두정엽을 자극하니 입술을 움직이고 말하고자 하는 의도를 유발시켰다. 그리고 이러한 두정엽 부위의 자극 강도를 더 세게했더니 피험자들은 실제로 팔 다리나 입술 등 자신의 몸을 움직였다고 인식했다. 물론 이러한 부위들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고 어떠한 근육 반응도 나타나지 않았다. 한편, 전운동 피질 부위를 마찬가지로 자극했더니 실제로 팔다리나 입술의 움직임이 나타났다. 그러나 실제로 움직였음에도 불구하고 피험자들은 자신이 팔다리나 입술을 움직였다는 사실을 전혀 자각하지 못했다. 

이 실험 결과는 움직임에 대한 의도나 자각은 두정엽에서 처리되고 실제 움직임은 전운동 피질에서 처리된다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움직임에 대한 의도나 자각 없이도 움직일 수 있고, 반대로 움직였다는 것을 전혀 자각하지 못하면서도 움직일 수 있었다. 간단히 말해서 움직임에 대한 의도나 자각과 실제 움직임은 뇌의 별도 시스템에서 처리되는 개별적인 기능이며 둘 사이에는 언제든 괴리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상생활 속에서의 경험을 통해서는 이러한 괴리를 알아차리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의 의식은 그러한 차이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덕분에 우리는 내가 의도한 대로 나의 몸을 움직일 수 있고 통제할 수 있다는 착각 속에서 산다. 사실 그러한 착각이야말로 내가 살아가는 나의 환경을 내가 알아차리고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자의식의 본질적인 모습이며 그 덕분에 "자아"라는 의식 자체가 존재할 수 있게 된다. 지금 나는 내 의도에 따라 언제든 내 손을 들 수도 있고 내릴 수도 있다는 느낌이 "나"라는 실체감의 근원이다. 

능동적 추론과 마코프 블랭킷 모델을 통해 살펴보았듯이 하나의 의도에 따른 움직임이 생겨나기 위해서는 수많은 무의식적인 움직임들이 만들어져야 한다. "팔을 들어야지"라는 의도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무의식적으로 수많은 근육과 관절 움직임의 조화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뜻이다. 모든 움직임에는 무의식적인 요소의 비율이 훨씬 더 많고 훨씬 더 중요하다. 이런 무의식적인 움직임의 대부분은 전운동 피질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다. 전운동 피질에 의한 움직임 중에서 극히 일부만 두정엽쪽으로 전달되어서 내가 움직였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되는 것이다. 때로는 무의식적인 움직임이 먼저 일어나고 난 후에야 내가 그러한 움직임을 했다는 것을 사후적으로 깨닫는다. 나도 모르게 저절로 어떤 행위를 하는 것은 두정엽과는 별 상관 없이 운동피질 중심으로 벌어지는 사건이다. 예컨대 운동선수가 의도적인 계획없이도 몰입상태에서 즉각적으로 반응해서 자기도 모르게 멋진 플레이를 해낼 수 있는 것은 전두엽의 전운동피질의 역할 덕분이다.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의식하지도 못한 채 특정한 움직임이나 근육의 긴장상태를 만드는 것은 부정적 정서 유발과도 관련이 깊고 만성통증의 원인이기도 하다. 트라우마 스트레스나 불안장애의 문제 핵심은 고정행위유형으로서의 감정유발이므로 이러한 무의식적인 고정행위 습관의 변화가 필요하다. 의도와 실제 움직임 사이의 잘못된 연결고리를 바꿔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몸 뿐만아니라 마음도 편해진다. 의도와 움직 사이의 고정된 낡은 습관을 새로운 습관으로 바꾸기 위한 체계적인 움직임 훈련이 소매틱 운동(somatic exercise)이다. 

소마(soma)는 육체적 몸 (physical body)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한마디로 주관적 몸이라 할 수 있다. 남이 보는 나의 몸이 객관적인 육체적 몸이고 내가 인지하고 자각하는 것이 주관적 몸인 소마다. 객관적인 몸은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며 주로 시각적인 정보에 의해 구성된다. 반면에 주관적 몸인 소마는 주로 내부감각과 고유감각을 통해 주어지는 정보에 의해 구성된다. 운동을 할 때 거울 앞에 서서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계속 바라보며 운동을 한다면 나는 주로 "바디"를 키우게 된다. 반면 거울 없이 고유감각과 내부감각에 집중하면서 운동을 한다면 주로 "소마"를 키우게 되는 것이다. 

보통 일반적인 운동에서는 특정한 의도를 얼마나 잘 수행해냈는가에 집중한다. 즉 의식으로부터 몸 근육으로의 정보 흐름에 집중한다. 하지만 소매틱 운동에서는 몸에서 의식으로 올라오는 감각 정보의 흐름에 더 중점을 둔다. 특정한 움직임을 수행하거나, 혹은 수행하기도 전에, 몸에서 의식으로 올라오는 고유감각과 내부감각에 대한 자각능력 향상 훈련에 집중하는 것이 소매틱 운동의 핵심이다. 물론 감각에 대한 자각능력은 그냥 마음먹는다고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다. 감각 정보가 의식에 전해져서 특정한 의미를 갖기 까지에는 수많은 "능동적 추론"의 단계를 거친다. 그러한 추론의 과정에서 다양한 왜곡이 일어날 수 밖에 없다. 

예컨대 내가 "발을 들어야지"하는 의도가 없었는데도 내 발이 들어올려지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면 내 의식은 "땅이 솟아오른다" 혹은 "누군가 내 발을 들어올린다"라는 식으로 해석하게 된다. 물론 실제로 지진이 나서 땅이 들어 올려지거나 운동 경기 중 내 발을 들어 올리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내 다리 근육이 나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수축되어 생기는 현상일 수도 있다. 또는 나는 "발을 들어야지"라는 의도를 갖고 있었고 그에 따라 내 다리 근육이 움직였지만, 내가 나의 의도를 자각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뇌의 다양한 부위에서 의도의 실행이나 의도에 대한 자각을 처리하므로 뇌 어느 특정 부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경우라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고유감각정보를 처리하는 뇌의 능동적 추론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경우라면, 지금 넘어지고 있으면서도 "내가 지금 넘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자각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이 사람은 "땅이 갑자기 눈 앞에 솟아 올라서 내 얼굴을 때린다"는 경험을 하게 된다. 만취한 사람들이 흔히 겪는 경험이기도 하다. 

이러한 극단적인 경우는 드물게 나타나지만 좀 낮은 수준에서의 의도와 움직임 간의 괴리는 매우 흔한 현상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는 지금 똑바로 걷는다", "나는 지금 똑바로 일어선다"라는 의도를 갖고 몸을 움직이지만, 그리고 똑바로 걷고 일어선다고 느끼지만, 사실은 매우 불균형 상태에서 약간 삐닥하게 걷거나 한쪽으로 치우친 채 일어서거나 한다. 감각 정보를 바탕으로 의식에서 추론을 통해 나의 움직임을 "해석해내는 것"과 실제 움직임 사이에는 늘 괴리가 생기게 마련이다. 그러한 괴리의 가장 큰 원인은 몸으로부터 올라오는 고유감각 정보를 부정확하게 추론해내는 나쁜 "습관"이다. 이러한 추론은 무의식적으로 저절로 일어나므로 이것을 바로 잡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아, 내가 비딱하게 걷는구나," "걸을 때 골반을 쓰지 않는구나", 혹은 "어깨가 말려 있구나", "발을 뻗는 방향이 좌우가 다르구나" 등등을 알아차린다 해도, 그리고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굳게 결심한다고 해서 그러한 습관이 고쳐지지는 않는다. 

몸은 각 부위가 전체적으로 다 연결되어 있을 뿐만아니라 "걷기"라는 하나의 동작을 위해서 수많은 미세한 동작들이 몸의 여러 부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무의식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똑바로 걷자"라는 의도를 앞세운다고 해서 똑바로 걸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깨의 긴장을 풀자, 허리를 펴자, 고개를 들자 등등도 모두 다 마찬가지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의도와 움직임간의 새로운 관계 설정을 연습하고 그것을 반복함으로써 새로운 습관을 들여야 한다. 여기서 새로운 "습관"이란 새로운 움직임의 습관이라기보다는 움직임에 대한 새로운 자각능력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나의 움직임이 고유감각정보로 내 의식에 올라올 때 그것을 무의식적으로 자동 해석해내는 새로운 능동적 추론의 방식을 뇌에 신경가소성을 통해 각인시키는 것이다. 

소매틱 운동은 의도와 움직임의 관계, 움직임과 감각 정보와의 관계에 집중함으로써 의도와 움직임간의 괴리를 최소화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그럼으로써 몸의 움직임을 가장 자연스러운 상태로 안내하여 잘못된 자세나 움직임으로부터 오는 통증이나 정서조절 장애를 해소하고자 하는 것이다. 실제로 소매틱 운동은 몸을 많이 사용하는 운동선수, 무용수, 악기 연주자, 연기자, 성우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다. 뿐만아니라 트라우마 스트레스나 불안장애, 우울증 등에 좋은 효과가 있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서 점차 많은 정신과 의사들이 소매틱 운동을 처방하고 있다. 

소매틱 운동에는 다양한 전통과 역사적 배경에 따라 여러 종류가 있으며 기본 개념이나 이론도 조금씩 다 다르다. 공통점은 모두 고유감각이나 내부감각에 대한 자각을 강조한다는 것이다. 물론 "고유감각"이나 "내부감각"이라는 개념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 전통도 있다. 사실상 고유감각이나 내부감각 훈련의 요소를 강하게 갖고 있으면서도 그러한 개념과 다른 독자적인 개념 체계를 지니고 있는 것이 타이치나 기공 혹은 아사나 요가다. 고대진자운동 역시 소매틱 운동의 성격을 강하게 지닌다. 여기서는 오늘날 일반적으로 오늘날 "소매틱 운동"이라고 불리우는 대표적인 것 중에서 마음근력 키우기에 직접적인 도움이 될만한 펠덴크라이스 요법과 알렉산더테크닉에 대해서 간략히 살펴보자. 


펠덴크라이스

펠덴크라이스 요법을 창안해낸 펠덴크라이스에 따르면 "삶과 움직임은 사실 같은 것(Life and movement is practically the same)"이다(Feldenkrais, 1985). 의식과 삶과 나 자신에 대한 명상과 성찰은 모두 다 나의 움직임에 대한 성찰로부터 시작한다고 하면서 움직임 명상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펠덴크라이스는 분명 선구자적인 통찰력을 지닌 사람임에 분명하다. 현대 뇌과학이 최근에 와서야 겨우 도달한 결론을 이미 수십년전부터 개인적인 직관에 근거해서 분명하고도 설득력있게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그는 "뇌는 움직임의 기능없이는 생각할 수 없다"고 하면서 모든 생각이나 감정의 유발은 몸의 변화를 가져온다고 보았다. 몸의 변화가 곧 움직임으로 부터(out of -motion) 나오는 것, 즉 감정(e-motion)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하이데거의 "생각한다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라는 책에서도 등장한다(Heidegger, 1968). 이 책은 하이데거의 철학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그의 대표작인 존재와 시간만큼이나 중요한 저서라 할 수 있다. 여기서 하이데거는 생각에 대해 사유한다는 것은 일종의 손으로 하는 일(handicraft)이라고 주장한다. 손의 모든 움직임은 생각의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으며 손이 하는 모든 일들 역시 생각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고 본다. 손의 움직임이 곧 생각이고 생각은 손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현상학자인 정화열은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서 "우리가 두 다리로 걷는 것처럼 우리는 두 손으로 말하고 생각한다"라고 하고 있다 (Jung, 1989).  

30대 중반의 펠덴크라이스는 파리의 소르본느 대학에서 물리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었으며 인공 방사능 물질을 생산한 공로로 1935년에 노벨상을 받은 퀴리 부부의 랩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퀴리 랩은 당시 핵분열을 연구하고 있어고 거기서 펠덴크라이스는 원자에 입자를 쏘아대는 기기를 만들었다. 1939년 아인쉬타인은 루스벨트 미국대통령에 편지를 써서 퀴리 랩에서의 연구로 새로운 개념의 폭탄을 만들수 있을 것이고 아마도 나치가 이 기술을 탐낼 것이라는 경고를 했다. 1940년에 나치가 파리를 점령하자 유태인어었던 펠덴크라이스는 영국으로 도피하여 초음파 기술을 연구했다(Doidge, 2015)

파리에 있을 때 그는 이미 유럽 최고 수준의 유도 선수였다. 프랑스 유도 협회를 창립하였으며 유럽에서 최초의 검은띠 획득자 중 하나였다. 영국에서도 과학자로 일하면서도 틈틈히 영국 군인들에게 유도기술을 가르치기도 했다. 펠덴크라이스에게는 고질적인 무릎 병이 있었다. 스트레스를 받거나 하면 무릎이 퉁퉁 부어서 제대로 걷기조차 힘들 정도 였다. 특히 나치를 피해 피난을 다니는 동안에는 더 심해졌다. 정신적인 고통이 무릎의 통증을 악화시킨다는 사실이 그에게는 중요한 발견이었다. 무릎 통증으로 침대에 몇달이고 누워 있을 수 밖에 없게 되었을 때 였다. 통증이 없는 한쪽 다리에 의지해서 겨우 침대에서 일어나 걸어다니곤 했는데 공교롭게도 무릎이 멀쩡한 다리에 부상을 입어 전혀 쓸 수 없게 되었다. 그야말로 전혀 일어설 수 조차 없게 된 것이다. 그러자 무릎의 오래된 통증이 점차 사라지기 시작했다. 멀쩡했던 무릎이 부상으로 전혀 움직일 수 없게 되자 원래 만성적인 통증이 있던 무릎의 통증이 사라지고 움직임이 편해졌던 것이다. 결과적이로 이번에는 멀쩡해진 쪽 다리에 주로 의지해서 다시 또 걸어다닐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겪자 펠덴크라이스는 자신의 무릎 통증에 대해서 스스로 연구하기 시작했다. 침대에 하루종일 누워 다리와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계속 관찰했다. 말하자면 몸의 움직임에 대한 자각 훈련을 집중적으로 했던 것이다. 펠덴크라이스는 통증과 마음의 관계, 몸의 각부위 간의 관계 등을 살피면서 몸과 마음의 전체적인 연결성에 주목했다. 그는 하나의 동작을 위해서는 몸 전체의 각 부위가 조화롭게 움직여야만 쉽고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동작이 나온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악수나 공 던지기와 같은 하나의 동작은 팔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몸과 마음의 거의 모든 기능이 조화롭게 참여해야 균형있는 동작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수학 문제 푸는 것이나 글 한줄 쓰는 것 혹은 한마디 말을 하는 것 등도 마찬가지다. 긴장해서 애를 써서는 우아한 움직임이 나오기 어렵다. 중요한 것은 균형감과 편안함이다. 릴랙스된 상태여야 몸의 효율적인 움직임이 가능해진다. 그는 다양한 몸의 움직임 훈련법을 개발했으며 이를 "움직임을 통한 알아차림(Awareness through Movement: ATM)" 훈련이라고 개념화했다(Feldenkrais, 1972). 펠덴크라이스의 ATM 훈련이 정서조절에 미치는 효과에 대해서는 수많은 연구 결과가 있으며 특히 불안증세를 완화시켜주는데 큰 효과가 있음이 입증되었다(Kolt &  McConville, 2000).

펠덴크라이스 역시 의도와 움직임간의 괴리에 주목했다. 같은 움직임이라도 어떠한 의도를 갖고 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지금 간단한 실험을 한번 해보자. 책을 잠시 내려놓고 똑바로 앉은 상태에서 목을 오른쪽으로 끝까지 돌려보라. 목이 어디까지 돌아가는가, 느낌은 어떠한가를 잘 기억해둔다. 다시 똑 바로 앞으로 보고 앉는다. 이제 내 뒤에서 누가 날 부른다고 상상해보라. 반갑게 날 부르는 소리에 누군지 확인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려 뒤돌아본다고 생각하라. 이 때 고개는 어디까지 돌아가는가? 느낌은 어떠한가?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이 두 동작은 사실상 같은 동작이지만 결과는 상당히 다르다. 의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린다"라는 의도와 "날 부르는 목소리 쪽을 쳐다본다"라는 의도는 상당히 다른 의도다. 의도가 다르기 때문에 동원되는 미세한 근육의 시스템도 달라진다. 

우리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누군가 내 이름을 불러서 뒤돌아본 경험이 여러번 있을 것이다. 그러한 경험들이 쌓여서 하나의 습관이 된다. 누군가 날 부를 때 돌아보는 특별한 나만의 방식이 생겨나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어려서부터 누군가가 뒤에서 부르면 깜짝 놀라면서 휙 뒤돌아본 적이 많았던 사람과 친한 친구가 뒤에서 같이 놀자고 부르곤 해서 늘 즐거운 마음으로 반갑게 휙 뒤돌아본 적이 많았던 사람은 "누가 날 불러서 뒤돌아 보기"의 행동에 있어서 상당히 다른 근육들의 조합을 사용하게 마련이다. 

마찬가지로 "목을 오른쪽으로 돌리기"라는 동작은 스트레칭이나 특정한 운동을 하면서 많이 하게 된다. "목을 오른쪽으로 돌린다"라는 의도를 실행하는데 있어서 요가 수련을 오래했던 사람과 타이치를 오래했던 사람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근육의 조합을 사용하게 된다. 이처럼 하나의 "의도"와 "행위"간의 조합은 사람마다 다 약간씩 다르게 마련이다. 사람마다 살아온 경험이 다르기 때문이고 또 체형이나 생활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사람마다 독특한 걸음걸이가 생겨나고 앉거나 서는 자세가 다 달라지게 된다. 

문제가 되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건 비효율적이거나 불균형한 방식으로 움직임의 의도를 수행해내는 나쁜 습관이 거의 모든 사람에게 있다는 사실이다. 똑바로 서서 무릎을 편채로 허리를 숙여 두 손으로 바닥을 짚을 때, "허리를 굽힌다"라는 의도를 갖고 두 손을 내릴 때와 바닥이 내 손을 향해 올라온다라는 상상을 하며 손을 내릴 때와 또는 정수리를 바닥으로 향하게 해서 배를 허벅지에 붙이겠다는 의도를 갖고 손을 내릴 때 모두 다 다른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펠덴크라이스는 동일한 움직임에 대해서 다른 의도를 갖고 움직이면 관여하는 신경시스템이 달라진다는 것을 파악했다. 특정한 움직임에 대한 전혀 다른 "의도의 습관"을 심어주는 것이 중요한데 문제는 사람마다 무의식적인 습관이 다 다르고 체형이나 근육의 발달 정도도 다 다르다는데 있다. 따라서 어떠한 새로운 습관을 들여야 하는지는 사람마다 다 다르다. 특정한 행동 (예컨대 걷기)를 위한 단 하나의 올바른 방법이란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다양한 움직임 방식의 반복적인 시도를 통해 "스스로 깨닫는" 자각능력을 키워가는 것이 중요하다. 의도를 버림으로써 몸에 주어진 원래 움직임의 방식을 찾아간다는 점에서 펠덴크라이스는 움직임에 관한 무의식 레벨에서의 훈련이라 할 수 있다. 움직임에 관한 훈련이면서도 "모범적인 표준 움직임 방식"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그런 것은 없다) 스스로 다양한 의도를 통한 움직임을 통해 결과적으로 스스로 깨달아가고 자각하고 나아가 무의식적인 움직임의 습관을 바꾼다는 점에서 펠덴크라이스 요법은 교육의 새로운 방식을 제시한다고도 볼 수 있다. 펠덴크라이스의 교육 방식은 그래서 불립문자로 전해지던 선 수행의 전수 방법이나 우파니샤드의 전통과도 상당한 유사점이 있다. 

펠덴크라이스에 따르면 우리는 대부분 자각하지 못하는 나쁜 습관을 갖고 있다. 예컨대 일어설 때 과도하게 몸무게를 앞으로 쏠리게 하는 경향이 대부분의 사람에게 있다. 실제 몸의 움직임과는 잘못된 선입견에서 비롯된 오래된 나쁜 습관이다. 이러한 잘못된 몸의 사용이 결국 여러가지 통증을 가져온다. 아프지 않으려면 몸을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원래 주어진대로 사용해야 한다(Feldenkrais, 1972). 자연 그대로, 있는 그대로의 모습대로 사용해야 한다. 펠덴크라이스는 제대로 잘 움직이기 위해서는 기존의 모든 "의도"를 버려야 한다고 보았다. 일어선다는 의도를 버리고 몸의 자연스러운 상태를 느끼면서 일어서야 한다. 걸을 때에도 왼발에 체중싣고 오른발에 체중싣고 하는 식으로 "의도"를 지니게 되면 걸음걸이는 어색해진다. 의도를 버려야 한다. 장자의 무위자연 철학을 움직임에 적용한 것이 펠덴크라이스라 할 수 있다(Feldenkrais, 1972).  

펠덴크라이스는 몸 자체에 내재하는 똑똑함(intelligence)를 믿었다. 우리의 의식이 미치지 않는 여러 곳에서 우리 몸은 상당한 지능을 발휘한다고 본 것이다. 따라서 몸이 주는 여러 감각 정보에 집중하면서 기본적인 움직임을 다양한 방식으로 반복하다보면 몸 스스로가 편안하고 올바른 움직임의 방법을 찾아간다고 본 것이다. 그래서 펠덴크라이스 요법에서는 흔히 몸의 한쪽만을 집중적으로 훈련한다. 한쪽으로만 진행하는 이유는 훈련의 목표가 모든 움직임의 저변에 있는 무의식적인 고정된 행위 습관을 변화시키는데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특정한 의도된 움직임을 가능하게 하는 신경망의 작동 방식을 변경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기 때문이다. 

예컨대 오른쪽 목과 어깨 부위가 뭉치고 경직되어 있어서 고개를 왼쪽으로 돌리는 것이 어렵다고 하자.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는 것은 상대적으로 쉽게 느껴진다. 이럴 경우, 피험자를 편하게 눕게 한 뒤에 더 편하게 움직일 수 있는 방향인 오른쪽으로 고개 돌리기를 다양한 방식으로 계속 반복 시킨다. 그냥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그 움직임이 주는 미세한 변화들을 계속 알아차리도록 훈련을 시킨다. 20분 정도 지나면 원래 편했던 오른쪽으로 고개 돌리기가 훨씬 더 편해진다. 그 상태에서 5분 정도 가만히 누워있게 한다. 이때 뇌에서는 "오른쪽으로 편하게 고개돌리기"에 관한 새로운 정보가 "왼쪽으로 고개돌리기"와 관련된 뉴럴 네트워크로 전이(transition)된다. 우리 몸은 좌우의 균형을 맞추려는 본능이 늘 작동하기 때문이다. 5분정도 지난 뒤 원래 불편했던 방향인 왼쪽으로 고개돌리기 움직임의 느낌이 어떤가를 확인해본다. 놀랍게도 왼쪽으로 고개돌리기 전혀 훈련을 안했음에도 불구하고 확연한 차이가 느껴진다. 왼쪽으로 고개돌리기가 오른쪽으로 고개돌리기 처럼 상당히 편하게 느껴지게 된다. 

우리 뇌에는 몸의 좌우 균형을 지키려는 강한 기제가 작동한다. 오른쪽으로 편하게 고개 돌리기에 관해서 "알아차림"을 하게되면 고개돌리는 동작과 관련된 새로운 뉴럴 네트워크의 작동 방식이 양쪽 움직임에 다 관여하게 된다. 심지어 이러한 "전이"에 따른 치유 효과는 직접적인 움직임에 따른 변화보다 더 강력하고 지속적이다. 펠덴크라이스는 외부의 동작으로부터 배우는 것보다 내 몸의 한쪽으로부터 다른 한쪽이 스스로 배우는 것이 가장 강력한 효과를 지닌다고 오래전부터 주장했다. 대단한 통찰력의 소유자라 할만 하다. 


알렉산더 테크닉

알렉산더도 마찬가지로 "의도"를 버려야 함을 강조한다. 알렉산더는 이를 "억제(Inhibition)"라 불렀다(Alexander, 2019). 습관적인 움직임 패턴에서 벗어나기 위한 첫걸음인 셈이다. 습관에서 비롯되는 자동적인 행위를 억제하는 것은 전전두피질의 활성화를 가져오며 집중력과 자기조절력 향상을 위한 좋은 훈련이 되기도 한다. 

알렉산더는 원래 셰익스피어의 희곡 등을 무대 위에서 낭송하는 목소리 배우였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목이 잠기고 쉰목소리가 나왔다. 목소리 치료를 위해서 온갖 병원을 다니고 백방으로 노력해봤으나 허사였다. 20대 초반의 젊은 알렉산더는 스스로를 관찰해가며 무엇이 문제인지 찾고자 했다. 1869년에 태어난 알렉산더에게는 비디오 카메라가 없었기에 그는 방안에 거울을 가득 세워놓고 앞모습뿐만 아니라 옆모습도 봐가면서 자신이 낭송하거나 말을 할 때 어떠한 나쁜 습관을 갖고 있는 발견하고자 했다. 펠덴크라이스가 무릎의 통증을 인해 스스로를 관찰했다면, 알렉산더는 목소리가 잘 안나와서 스스로의 발성 모습을 관찰했던 것이다. 결국 그는 발성할 때 목을 치켜드는 등의 과도한 긴장으로 인한 나쁜 습관이 자연스런 발성을 방해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스스로의 습관을 고치고자 다양한 시도를 한 끝에 몸의 올바른 자세와 움직임의 습관을 위한 체계적이고도 독창적인 훈련 방법을 만들어낸다. 훗날 알렉산더 테크닉이라고 불리우게 된 그 훈련법은 목소리 뿐만아니라 자세교정, 통증 완화, 심리적 안정 등 다양한 효과가 있음을 알게 되었고 전세계적으로 널리 퍼지게 되었다. 

알렉산더는 움직임에 관한 새로운 의도를 만들어내기 위한 방법으로 언어적 지시인 "디렉션 (Direction)"을 제안했다. 디렉션은 올바른 움직임을 위한 일종의 지침인데, 말하자면 짧은 문장으로 표현된 표준화된 의도라 할 수 있다. 알렉산더는 일종의 내면소통 혹은 자기 암시라 할 수 있는 일련의 디렉션을 통해서 움직임을 위한 새로운 의도의 습관을 심어주고자 했다. 디렉션의 대표적인 것들은 다음과 같다.

"내 목은 자유롭다"

"내 머리는 앞으로 그리고 위로 향한다"

"내 척추가 길어지고 넓어진다"

"내 두 다리는 몸통으로부터 자유롭게 풀려난다"

이러한 디렉션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알렉산더가 머리와 몸통의 연결 부위의 긴장 완화와 안정화를 매우 중시했다는 점이다. 그가 중점을 두었던 머리-목-몸통의 관계는 우리가 이미 자세히 살펴본 것처럼 뇌신경계와 직접 연결된 부위이며 감정 유발이나 감정 인지와 밀접한 관련을 갖는 부위다. 구체적으로는 흉쇄유돌근, 승모근, 교근, 얼굴근육, 혀근육 등이며 관절로는 주로 경추 1번과 2번이 관련된다. 이 부위를 안정화시키고 긴장을 완화시키는 것은 자연스러운 목소리를 찾는데 있어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물론 편도체를 안정화시켜서 신체의 스트레스 레벨을 떨어뜨리고 나아가 불안감과 우울감 분노 등의 부정적 정서도 가라 앉게 한다. 

알렉산더의 디렉션은 일종의 만트라와도 같은 내면소통이다. 반복해서 마음속으로 셀프토크를 하게 되면 저절로 뇌신경계 관련 부위의 긴장이 완화되고 똑바로 서고 걷기 위한 자세가 만들어진다. 결국 움직임에 대한 새로운 의도를 내부상태에서 반복적으로 발생시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내 몸의 움직임에 관한 새로운 스토리텔링을 함으로써 새로운 의도의 습관을 만들어낼 수 있게 된다. 

펠덴크라이스 요법과 비교해보면 알렉산더테크닉은 보다 스토리중심이라 할 수 있다. 일련의 디렉션을 통해 내부상태에서의 새로운 메시지 (의도)생성에 중점을 둔다는 점에서 그렇다. 발목과 무릎을 수직으로 일직선 상에 둔 상태에서 엉덩이를 뒤로 빼고 엉거주춤한 스쿼트 자세를 취한 멍키 자세나 런지 자세 등 바람직한 모형 자세를 가르치고 배우기도 한다. 반면에 펠덴크라이스 요법에서는 만트라와도 같은 디렉션은 없다. 모든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특정한 모형 자세도 없다. 다만 몸을 통합적으로 사용하는 수많은 단계별 움직임의 세트만이 존재할 뿐이다. 알렉산더테크닉이 내부모델에 직접적인 메시지 전달을 통해 보다 의식적인 훈련에 중점을 둔다면, 펠덴크라이스 요법은 다양한 움직임에 대한 자각을 통한 무의식적인 훈련에 더 중점을 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알렉산더테크닉이 모든 움직임의 새로운 습관을 의도와 의식적인 메시지를 통해서만 심어주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알렉산더 역시 강한 "목적의식(End-gaining)"을 무엇인가 열심히 해보려는 태도를 경계했다. "허리를 펴겠다" 혹은 "목의 긴장을 풀겠다" 등등의 구체적인 "의도"를 갖고 훈련을 하게 되면 항상 역효과가 나게 마련이라는 것을 많은 경험을 통해 터득했던 것이다. 반드시 "무엇을 이루겠다" 혹은 "해내겠다"는 굳은 의지는 집착을 낳게되고 모든 불안감과 걱정과 긴장과 스트레스의 근본 원인이 되기 때문에 이를 자제하도록 강조한다. 뿐만아니라 문제는 무의식적인 레벨에서의 의도와 결과간의 괴리이기 때문에, 즉 특정한 의도를 잘못 수행해내는 무의식적인 습관이다. 이러한 상태에서 나름대로 강한 의도를 갖고 무엇인가를 "올바른" 시도를 해보려는 것은 늘 잘못된 결과를 초래하기 마련이다.  

알렉산더는 한마디로 집착을 버리라고 누누히 강조하면서 이를 "무행위 (Non-doing)"라는 개념으로 강조하기도 한다(Alexander, 2019). 알렉산더가 말하는 "무행위"는 종종 많은 오해를 불러 일으키는데, 이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상태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조용히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은 오히려 엄청나게 어렵고도 힘든, 강인한 의지와 집념을 요구하는 "행위"이지 무행위가 아니다. 알렉산더가 말하는 무행위는 한마디로 의도 없는 움직임이다. 특정한 결과를 목표로 하지 않는 움직임이다. 이 점에서 장자의 핵심 사상인 무위자연과 비슷하다. 장자의 무위자연 역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의도된 행위, 결과를 바라는 행위, 집착에 따른 행위를 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세상 그대로를 있는 그대로 놓아두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임으로써, 아무 것도 (의도)하지 않음으로써 (자연스럽게) 하지 않은 일이 하나도 없도록 하는 상태다. 알렉산더테크닉 역시 몸이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것을 지향하며 행위자가 특정한 움직임의 의도를 갖고 무엇인가 올바른 움직임을 해내려고 하는 것을 경계하고, 그것을 억제하도록 한다. 

"똑바로 서야지"는 의도가 사실은 몸의 불균형을 가져오고 "똑바로 걸어야지"라는 의도가 또 다른 왜곡된 움직임을 가져오는 경우는 매우 흔하다. 의도와 실제 움직임 사이에 잘못된 습관이 개입되기 때문이다. 나쁜 습관으로부터 자유로워지려면 버려야 한다. 그런데 "나쁜 습관을 버려야지" 하는 의도는 또 다른 나쁜 습관을 낫게 한다. 자연스러운 몸의 움직임을 알아차리기 위해서는 모든 의도를 버려야 한다. 어찌보면 이것이 진정한 자아의 발견의 첫걸음이다. 내몸의 상태와 내몸의 움직임과 내몸이 주는 감각 정보를 늘 알아차리고 살펴볼 수 있는 것은 매우 중요한 능력이다. 이것이 몸과의 내면소통의 핵심이다. 몸은 늘 변하고 있기 때문에 내 몸에 관한 새로운 통찰은 지속적으로 요구된다. 소매틱 운동들은 내 몸이 나에게 주는 고유감각에 대한 자각능력을 향상시켜주는 좋은 훈련법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타이치나 기공도 매우 훌륭한 소매틱 운동이다. 새로운 움직임에 있어서의 고유감각에 집중함으로써 새로운 습관을 들이는 것을 환골탈태라 부를 뿐이지 기본적인 지향점은 갖다. 타이치가 스트레스 완화와 정신건강 증진에 도움이 되며 불안장애, 우울증, 트라우마 치료 등에도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는 많이 나와 있다(Abbott & Lavretsky, 2013; Miller & Taylor-Piliae, 2014; Wang et al., 2014). 권위있는 여러 의료기관에서도 관절염이나 심장병 환자 뿐만아니라 암이나 치매 환자를 위한 타이치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시행하고 있기도 하다(Wayne & Fuerst, 2013).


바마움: 바른 마음을 위한 움직임

내부감각이나 고유감각에 대한 자각능력 향상에 중점을 두는 소매틱 운동들은 정신건강 증진에 도움이 된다. "바른 마음을 위한 움직임(바마움)" 프로젝트는 다양한 소매틱 운동들로부터 특히 마음근력 향상에 도움이 될만한 움직임 요소들을 추려내서 효과적인 정신건강 향상 프로그램을 만들어보고자 목표를 갖고 출발했다. 내가 경험해 본 운동들 중에서 실제로 마음근력 강화에 효과가 있다고 확신이 든 타이치, 알렉산더테크닉, 펠덴크라이스, 고대진자운동 전문가들을 트라우마학회장과 명상의학회장 등을 역임하신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에게 소개했다. 동시에 이러한 소매틱 운동 전문가들에게는 각각의 운동들이 몸에만 좋은 것이 아니라 마음근력 강화의 효과도 있는 것임을 설득했다.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정신과 의사와 소매틱 전문가들은 순식간에 의기투합하게 되었다.  

여러차례 미팅을 거쳐 고대와 현대의 소매틱 운동들로부터 정신건강을 위해 가장 효과적인 움직임을 골라낼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2019년 1월 정신과 의사들과 소매틱 전문가 50 여명 앞에서 바마움 프로젝트의 출범을 알리는 세미나를 개최했다. 그리고 그해 7월 실제로 환자들에게 적용해볼수 있는 바마움 프로그램을 국립정신건강원에서 전국에서 모인 정신과의사들과 소매틱 운동 전문가 100 여명 앞에서 발표를 했다. 아울러 바마움 프랙티셔너 양성 교육도 시작했다.  

 바마움 프로젝트에는 각자의 분야를 평생 연구하고 수행해 온 최고의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나는 혹여나 자신의 분야가 최고라고 생각해 특정 관점을 고집하거나 다른 전통을 내심 폄하하는 일이 생길까봐 걱정을 했다. 움직임 명상은 전통적으로 종교적인 색채를 띠고 발전해온 경우도 많고 각자의 근본적인 세계관과 직결되는 경우가 많아 서로 양보하기 어려운 이견이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또한 바마움 프로그램은 과학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최신의 정신건강의학과 다양한 전통의 움직임 명상을 접목시키고자 한 것이었는데, 서로 다른 전통의 전문가들이 함께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에 더욱 우려가 되었다. 그러나 지난 수년간의 협업 과정을 거치면서는 나의 걱정이 완전한 기우였음을 알게되었다. 기쁘면서도 또 한편으론 신기하기도 했다. 바마움 프로젝트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모두 자신의 분야에서 일가를 이루었음에도 다른 움직임 전통에 대해 적극적으로 배우려는 열린 태도를 보였다. 호기심과 배려심을 갖고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했다. 그리고 기존에 없었던 완전히 새로운 길을 걷는 데에도 많은 열정과 관심을 보였다. "모든 것에 열려있되 어느 것에도 집착하지 않는다(open to everything, attached to nothing)"는 틸로파의 말처럼, 바마움은 모든 것에 대해 가능성을 다 열어 놓으면서 어느 특정한 움직임 전통이나 유행에 쏠리거나 집착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바마움 프로그램은 불안, 우울, 트라우마, 강박, 공황장애 등 정서조절 문제를 겪는 만성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폭 넓게 사용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만성 스트레스가 지속되는 현대인의 마음근력을 키우기에도 매우 유용할 것이다. 특히 명상과 수행에는 관심이 있으나 가만히 앉아서 명상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는 분들에게 바마움 프로그램은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움직임 명상

전세계적으로 명상 열풍이 불고 있는 요즈음 많은 사람들이 명상에 관심을 보인다. 명상은 몸과 마음의 건강과 행복감을 향상시킨다. 또한 누구나 즐겁게 할 수 있는 아주 유익한 취미활동이다. 몸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필요하듯 마음 건강을 위해서는 명상이 필요하다. 수십 년 전만도 해도 열심히 운동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하지만 이제 운동을 해야한다는 말은 상식처럼 되어버렸다. 비슷한 현상이 명상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예전에는 종교인이나 특별한 사람만이 하던 것이 명상이었다. 오늘날 세계 각국에서는 일상생활 속에서 꾸준히 명상을 하는 문화가 급속도로 퍼지고 있다. 

하지만 명상을 하고 나면 오히려 불안해져 어려움을 호소하는 사람들도 많다. 공황장애와 같은 불안장애나 트라우마 증상이 있는 사람한테는 차분하게 앉아서 호흡에 집중한다는 것 자체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자신의 내면을 한동안 고요히 들여다 볼 수 있다는 것은 이미 멘탈이 상당히 건강하다는 의미다. 정서조절장애가 있는 사람은 가만히 명상을 하려고 하면 여러 부정적인 생각이 떠오른다. 온갖 두렵고 부정적인 감정은 점점 불어나 통제하기 힘들 정도로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결국 더욱 큰 고통을 겪게 된다. 게다가 명상에서 뭔가 특별한 경험을 얻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이러한 편견은 명상을 더욱더 어렵고 힘든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명상은 신비로운 상태를 경험하는 것이 아니다. 틈틈이 운동을 하는 습관은 과학적으로 건강에 좋다. 명상도 일상생활 속에서 조금씩만 해도 마음근력 향상에 큰 도움이 된다. 명상의 핵심은 "가만히 앉아서 생각을 잠재우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자신의 몸과 마음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다. 호흡과 몸의 긴장을 가라앉힘으로써 지금-여기에 존재하기 위한 훈련이다. 명상의 핵심은 몸을 다스려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다. 수행은 몸을 통해 마음으로 가는 여정이다. 

몸을 통해서만 지금 여기에 존재할 수 있다. 마음은 과거나 미래로 달려간다. 과거에 집착하면 분노나 트라우마가 일어난다. 미래를 향해 기억을 투사하면 불안이나 두려움이 나타난다. 마음이 과거나 미래에 있을 때 스트레스 반응이 일어나는 것이다. 행복감과 긍정적 정서는 몸과 마음이 지금 여기에 현존할 때 가능하다. 명상은 종류, 방법, 전통과 상관없이 몸을 통해 지금 여기에 현존해 부정적 정서를 걷어내는 것이 목표다. 우리는 적극적으로 몸을 쓸 필요가 있다.

다른 모든 종류의 명상과 마찬가지로 마음근력 향상을 위한 내면소통 훈련을 할 때 몸과 마음은 항상 편안해야 한다. 명상할 때 몸과 마음이 괴로우면 명상을 제대로 하는 것이 아니다. 명상하는 사람은 이를 악물고 고통을 감내하지 않는다. 명상은 내 몸과 마음에 평온, 고요, 행복을 가져다 준다. 명상에서 호흡 훈련을 할 때 호흡은 항상 편안해야 한다. 호흡을 억지로 길게 늘이거나 멈추거나 하면 오히려 편도체가 활성화되어 역효과가 날 수 있다. 

명상을 하면 평온함, 고요함, 편안함, 줄거움, 행복감이 잘 느껴진다. 그렇지 않다면 명상이 아니고 애를 쓰며 노동을 하는 것이다. 움직임 명상의 일종인 고유감각이나 내부감각 훈련 역시 마찬가지다. 만약 훈련을 하는 동안 혹시라도 몸과 마음이 불편해진다면 즉시 중단해야 한다. 무언가 잘못되고 있거나 몸에 맞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몸에 안 맞는 운동을 강행하다보면 결국 건강을 해치게되는 것처럼 불편한 움직임 명상을 억지로 계속하면 오히려 해롭다. 

고유감각이나 내부 감각 훈련을 위한 움직임 명상을 꾸준히 하다보면 어느 순간 몸과 마음이 평온해지고 그 평온함 속에서 지극한 행복감이 올라온다. 나의 기억 속에서 여기저기 숨어있던 행복감과 즐거움이 되살아난다. 명상을 통해 지속적으로 움직임과 호흡을 따라가다 보면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이 온 몸으로 퍼져나간다. 실제로 목 뒤, 등, 허리, 어깨, 팔, 다리, 발끝으로 찌릿한 느낌이나 스멀스멀한 쾌감이 느껴진다. 무엇 하나 원하지 않을 정도로 완벽한 충족감과 만족감이 차오른다. 마치 모든 사물을 가진듯한 풍요로움마저 느껴진다. 놀라운 경험이다. 

내 마음과 몸은 다시 제자리를 찾고 모든 것이 완벽하게 작동한다는 확신이 온 몸으로 퍼진다. 내 몸과 마음은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그리고 주변 환경과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다. 무엇에도 견줄수 없는 완벽한 행복감이다. 내 몸과의 내면소통인 고유감각 훈련을 통해 누구나 이러한 행복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는 누구나 쉽게 해볼 수 있는 기초적인 고유감각 훈련을 하나 소개해둔다.  


고유감각을 향상을 위한 걷기 명상 실습

1. 준비자세

서서 하는 명상 자세로 똑바로 선다. 

꼬리뼈부터 정수리까지 일직선 상에 놓이도록 한다.

온 몸에 긴장을 풀고 호흡에 집중한다. 

특히 깨물근(교근), 승모근, 흉쇄유돌근, 얼굴 표정근, 혀근육 등에 긴장이 풀어져 있나를 하나 하나 확인한다. 

눈을 감거나 아니면 한 점을 정해서 그곳만을 계속 바라본다. 

눈동자는 움직이지 않고 안구근육은 모두 긴장을 푼다.

몸무게가 발바닥에 실리는 것을 느껴본다. 나의 체중이 발바닥을 지그시 누르는 힘을 자각한다.


2. 손바닥으로 얼굴과 가슴, 복부 스캔하기

손바닥을 복부쪽으로 향하게 해서 두 손을 천천히 들어올린다.

두 팔로 커다란 나무 기둥을 얼싸안고 있는 듯한 자세로 손바닥이 가슴, 목, 얼굴 앞을 지나도록 한다.

두 팔을 쭉 펴고 손바닥도 쭉 펴서 손가락 끝이 하늘을 찌르도록 하면서 고개를 젖혀 두 손을 바라본다. 

두손을 천천히 내려면서 손바닥을 얼굴 쪽으로 향하게 한다.

얼굴쯤 내려올 때 손바닥이 얼굴로부터 한뼘 정도 떨어지게 하고

어깨와 팔의 긴장을 풀어 양팔꿈치를 손의 위치보다 더 낮게 유지하면서 

두 손으로 마치 몸을 스캔하듯이 천천히 내린다. 

얼굴을 지나 목, 가슴, 배를 거쳐 아랫배까지 천천히 내리면서  

손이 지나가는 부분에서 느껴지는 몸 속의 내부감각에 집중합니다. 

손이 복부를 지나 아랫배까지 왔을 때, 잠시 멈추고 온 몸의 긴장을 푼다.

다시 천천히 손을 들어올리면서 위 동작을 반복한다 (반복)


3. 체중이동

어깨 넓이로 두 발을 벌려 똑바로 선 후에 무릎을 약간 굽힌다.  

무릎과 발목은 지면으로부터 수직선상에 놓이도록 해서 무릎이 발끝보다 더 앞으로 나가지 않도록 한다. 

꼬리뼈는 발뒷꿈치 보다 더 뒷부분의 지면을 향하도록 뒤로 걸터앉는 듯한 느낌을 갖는다. 

천천히 호흡하면서 체중을 발바닥의 앞, 뒤, 좌, 우로 조금씩 이동시켜 본다.  

발 앞꿈치에 체중이 실렸다가 뒷꿈치로 옮겨졌다가 다시 좌우로 옮겨지는 느낌에 집중한다. (반복)

체중이 발뒷꿈치로부터 시계방향으로 원으로 그려 왼발 발날쪽을 지나 발 앞꿈치까지 왔다가 

다시 오른쪽 발날 쪽을 지나 발뒷꿈치로 돌아오는 것을 4회 반복한다.

다시 방향을 바꿔서 반시계방향으로 마찬가지 방식으로 원을 그리면서 체중이동한다. (반복)

체중이동 하는 내내 꼬리뼈와 정수리는 일직선상에 놓인채로 지면과 수직인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절대 몸통이 좌우로 기울어져서 안된다. 

겉에서 보기에는 체중이동을 거의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로 미세하고 조용하게 움직인다. 

체중이동의 느낌이 스스로에게는 분명하게 느껴지지만,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가만히 서있는 것처럼 보일정도로 고요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꼬리뼈부터 정수리까지의 척추의 축이 흔들지 않도록 일직선을 유지해야 한다. 


4. 한발 서기

천천히 체중을 오른쪽 발로 옮겨 간다. 이때에도 몸의 중심축은 흔들리거나 기울어지지 않는다. 

왼발을 지면에서 살짝 들수 있을 정도로 체중을 오른발로 완전히 옮긴다. 

체중이 완전히 오른발에 실린 다음에 왼발은 가볍게 들어서 발목에 힘을 뺀다.

중심잡기가 어려우면 왼발 엄지발가락만 살짝 땅에 닿아있도록 한다. 

오른쪽 무릎은 살짝 굽혀져있지만 발 앞쪽으로 튀어나와서는 안되고 발목과 무릎이 일직선상에 있어야 한다. 

체중이 오른쪽으로 이동한다고 해서 상체가 오른쪽으로 기울어지거나 하면 안된다.

이때에도 꼬리뼈부터 정수리까지의 척추는 지면으로부터 수직인 상태를 그대로 유지한다. 

나의 머리 무게가 척추와 골반과 다리를 거쳐 그대로 발바닥에 전달되는 느낌을 갖는다. 

그 상태에서 체중이 오른발을 통해 지면으로 쑥 내려가는 느낌으로 견고하게 선다. 

이를 위해서는 몸의 긴장을 전반적으로 풀어야 한다. 

허벅지의 대퇴근, 무릎 주변, 발목, 어깨, 허리, 복부 등에서 전달되는 고유감각에 최대한 집중한다.

천천히 호흡하면서 몸 어딘가에 긴장이 있나 살펴보면서 하나 하나 풀어주도록 한다. 

다시 천천히 왼발쪽으로 무게중심을 옮기면서 같은 방식으로 체중을 왼발로 완전히 옮겨간다. (좌우 반복)


5. 걷기 명상

오른손으로 가볍게 주먹을 쥐고 복부 위에 올려놓는다. 

왼손은 손바닥으로 부드럽게 주먹쥔 오른손 손등을 덮는다. 

양쪽 팔꿈치가 90도 정도 되는 위치에 손을 놓도록 한다. 

어깨의 긴장을 완전히 풀고, 턱은 지면과 평행이 되도록 한다.

한발 서기로 체중을 왼발에 싣고 오른발은 엄지발가락이 지면에 가볍게 닿아 있는 상태에서 시작한다.

오른발을 살짝 들어서 발꿈치를 왼쪽 엄지발가락 옆에 내려놓으면서 발바닥 전체로 지면을 지긋이 딛는다.

이때 체중은 자연스럽게 왼발에서 오른쪽 발로 옮겨간다. 

호흡을 천천히 들이쉬면서 체중을 오른발 쪽으로 옮기면서 왼발은 발뒤꿈를 살짝 든다. 

체중이 오른발로 완전히 옮겨간 후에 왼발을 살짝 들어 오른발 쪽으로 가져온다. 

이때 왼쪽 발바닥을 지면으로부터 2-3센티미터 정도 띄워서 지면과 평행인 상태를 유지하면서 움직인다.

왼쪽 발뒤꿈치를 오른쪽 엄지발가락 옆에 놓는다. 이때 체중은 여전히 오른발에 실려있다.

왼발로 지면을 지긋이 누르듯이 딛으면서 체중을 옮겨가기 시작한다.  

마찬가지 방식으로 체중을 왼발로 옮기면서 오른쪽 발을 발뒤꿈치부터 서서히 든다. 

이런 식으로 한쪽 발뒤꿈치를 다른쪽 발 엄지발가락 옆에 놓은 정도의 움직임으로 계속 걷는다. (반복)

발을 들고 지면과 평행하게 옮기고 내려놓고 하는 등이 모든 동작에서 어떠한 고유감각이 느껴지는가에 집중한다. 

체중이 좌우 앞뒤로 움직여갈 때의 나의 몸의 중심축이 어떻게 옮겨가는가를 느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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