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힘든 일을 계속 겪던 착각씨의 유일한 도피처는 게임이었다. 대학 생활은 생각보다 녹록지 않았다. 전공 수업은 어렵고, 아르바이트는 고되고, 인간관계는 더더욱 복잡했다. 현실이 버거울수록 착각씨는 게임 속으로 도망쳤다. 그곳에서는 누구도 그를 평가하지 않아서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 있었다. 퀘스트를 해결하고 레벨을 올릴 때마다 인생이 조금씩 나아지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가 즐기던 게임 속에서 착각씨는 ‘용기사 카카’라는 이름으로 활약 중이었다. 오늘 새벽 게임 서버가 갑작스럽게 다운되었고 착각씨는 스트레스를 풀지 못하고 학교로 향했다. 게임 앱에는 “서버 오류로 인해 접속이 불가능합니다”라는 문구가 떠 있었고, 게임 공식 홈페이지에 공지가 올라왔다.
[운영진 공지] 서버 오류에 대한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착각씨는 그 문장을 보고 게임사가 유저를 약 올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심심한 사과? 맛없는 사과야? 아니면 지루하게 게임하는 유저들이 심심할까 이런 일을 벌였다는 거야.’
그는 댓글 창에 글을 남겼다.
“운영진이 사과를 심심하게 하다니, 진심이 없는 거 아님?”
그의 댓글은 곧 여러 유저들의 반응을 불러왔다. 함께 공분하는 이들이 있었던 것이다. 좋아요와 추천을 많이 받은 댓글에 착각씨는 기분이 좋아졌다.
그때 착각씨가 다니는 학과 대화창에 휴강을 안내하며 심심한 사과를 전한다는 메시지가 떴다. 이를 본 착각씨는 같은 과 학생들에게도 방금 전 했던 농담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해 채팅창에 글을 올렸다.
[교수님이 심심해서 사과를 먹었는데, 사과가 맛없었나 봐 ㅋㅋ.]
순간 채팅방이 조용해졌다. 그리고 곧이어 친구들의 반응이 쏟아졌다.
“야, 그게 무슨 말이야?”
“진짜 몰라서 그래?”
“심심한 사과는 ‘깊은 사과’라는 뜻이야. 국어 안 배웠냐?”
가뜩이나 친구들과 거리감을 느끼던 착각씨는 당황해서 말문이 막혔다. 분명히 게임 사이트에서는 모두가 웃던 농담인데 이렇게까지 싸늘한 반응이 돌아올 줄 몰랐기 때문이다.
‘내가 무식한 사람처럼 보였나? 그냥 농담이었는데…’
착각씨는 억울했다. 하지만 동시에, 자신이 정말 몰랐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다.
[내가 농담이 지나쳤네.]
착각씨는 대화창에 메시지를 겨우 썼다. 바로 도망치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오히려 더 문제가 생길 것 같아서 겨우겨우 보낸 것이다. 그리곤 바로 검색창에 '심심한'을 검색해서 사전을 찾았다.
심심-하다 甚深하다
1. 마음의 표현 정도가 매우 깊고 간절하다.
착각씨는 ‘심심한’이라는 단어를 보고 ‘재미없다’, ‘싱겁다’ 같은 뜻을 떠올렸다. 그러나 '심심한'은 ‘깊고 간절한’이라는 의미로 쓰이는 경우도 있었다. 대화창에 있던 동기들 모두는 그 맥락을 이해했지만, 자신만 그러지 못했다는 생각에 착각씨는 당장 게임 속으로 도망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