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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더헛 Jan 03. 2022

해바라기가 준 치유

초록의 경이로움

작년 늦여름, 화분에 해바라기를 심었고 두 달만에 꽃을 볼 수 있었다. 




나의 작은 화분에서 작은 해바라기가 피었다. 씨앗을 심은 지 정확히 두 달 만이다. 침울한 기분을 달래고 싶어 다이소에서 해바라기 씨앗을 샀었다. 씨앗 두개를 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성장기의 아이처럼 무서운 기세로 자라났다. 하루가 다르게 키는 자랐지만 결국엔 '잭과 콩나무'의 콩나무처럼 키'만' 기형적으로 자라났다. 줄기는 죽 한 그릇 제대로 못먹은 아이처럼 앙상하기 짝이 없었다. 과연 이 아이가 꽃을 피울 수 있을지 의문이었지만 해바라기 꽃은 꼭 보고 싶었다. 나는 내게 주어진 환경 안에서 나름대로의 행복과 평안을 찾고 있었다.


꽃을 꼭 피우겠다는 일념 하나만으로 다른 씨앗 두 개를 새로운 화분에 다시 심었다. 이 4개의 씨앗 중에서 어떻게 해서든 하나만 성공해라. 제발 하나만 성공해줘. 화분이 영양분을 충분히 흡수하기에는 턱없이 작기 때문이었는지 이번에도 줄기는 여전히 가늘었다. 그래도 내 기필코 꽃을 피워보고야 말겠다. 지지대를 세워줬다. 



해바라기 키우기란 절대 쉽지 않았다. 인터넷에 찾아보면 다른 사람들은 어쩜 그리도 다들 잎을 싱싱하게 유지하고 꽃도 피우던데 왜 내 해바라기만 이렇게 비실비실할까 싶었다. 해바라기가 목말라하는 것 같아 물을 충분히 주고 바람과 햇빛도 쐬주고 하는데 아랫잎은 자꾸 과습이라고 말하며 노란빛을 띄기도 하고 갈색으로 마르기도 했다. 


꽃봉오리 출현


그렇게 일주일, 이주일 꼬박 한 달이 지난 어느 날. 이파리들 사이로 고개를 빼꼼 내밀고 있는 꽃봉오리를 발견했다. 신기했다. 해바라기가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꽃 피기까지 아직 시간이 남아있다고 대답하는 것 같았다. 


8월 27일 꽃봉오리 출현


꽃을 피우기까지의 여정 중 단조로운 시간도 분명 존재한다. 어제의 모습도 같았는데 오늘의 모습도 같고, 키가 자라는 것 외에 달라지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하루 이틀 내 머릿속에서 잊혀지는 날들이 있다. 그럴 때에도 해바라기는 자기 자리에서 자기의 할 일을 한다. 바람을 맞고 햇빛을 쬐고 물을 달라고 신호를 보내며 은은하게 나에게 존재를 알린다. 그리고 해바라기 꽃에 대한 목표가 흐릿해질 때쯤 꽃이 많이 가까워졌음을 알리며 다시 한번 희망을 준다. 


                    8월 29일(왼쪽) 9월 2일(오른쪽)                                       


1mm 정도 밖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꽃봉오리는 신기하게도 나날이 커져갔다. 보고 있으면 생명의 신비함과 경이로움을 느낀다. 화분이 작아서 자랄 요건이 완벽하지도 않을텐데 기어코 흙을 뚫고 자라나 화분 안에서 자기만의 둥지를 튼다. 분명 어제는 손톱 크기였던 꽃봉오리가 밤새 마법을 부린 건지 눈의 띄게 커졌고 나는 꿋꿋하게 자라나고 있는 그 작은 해바라기에게 위안과 격려를 받는다. 해바라기 씨앗이 싹을 틔우고 주어진 환경 안에서 자기만의 꽃을 피워내는 그 모든 과정들이 나를 도닥였다. 


처음 씨앗을 심을 때는 내가 이토록 집중하게 될 줄은 꿈에도 알지 못했다. 그저 근심에 잠겨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내 마음을 돌릴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했었다. 그런데 꽃봉오리가 보이기 시작한 날부터 매일 아침 꽃봉오리와 인사하기 시작했고 해바라기가 성장하는 모습을 가까이 지켜보며 비로소 나는 초록의 힘과 신비함을 몸소 느끼고 있었다. 


9월 15일 꽃봉오리 사이로 해바라기 노란잎이 보인다



Everything's coming up roses


드디어 내가 알고 있는 해바라기의 노란잎이 모습을 드러냈다. 신기한 것은 해바라기 두 줄기 중 꽃은 더 얇은 줄기에서 먼저 피웠다는 것이다. 바람 불면 금방이라도 날아갈 것 같은 비실이였는데 먼저 꽃을 피웠다. 

엄마가 말했다. "꽃이든 사람이든 어느 줄기에서 꽃이 필지 아무도 모르는거야."

그래, 사람도 꽃도 生은 모르는거다. 꽃을 피우느라 너무너무 고생했다는 말을 해주고 싶었다. 정말 고맙다는 말도 해주고 싶었다. 아마 곧 회복하게 될 나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지 않을까 싶다. 


9월 16일 노란잎이 드러났다


9월 18일 한주먹도 안되는 작은 해바라기가 피었다


우리는 몸과 마음이 지칠 때 때때로 자연으로부터 힘을 얻곤 한다. 그 자연은 자연 속에서 하는 여행이 될 수도 운동이 될 수도 수목원에서 짧게 하는 산책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조차 할 수 있는 여건이 안된다면 살아 숨쉬는 작은 식물 하나를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초록의 힘은 생각보다 강하다. 보잘것없는 작은 식물 하나가 지친 생활에 활기를 불어 넣어주고 현대 의학은 손뻗기 어려운 마음의 응어리를 어루어만져준다. 초록이 성장해나가는 모습을 보며 앞으로의 나의 회복을 믿게 되고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에서 빠져나와 낙관적인 사고를 가질 수 있게 도와준다. 

초록이 주는 회복탄력성은 어떠한 동기보다 강하다고 믿으며 난 이 시기를 기점으로 더 높이 도약할 수 있을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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