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따라와 주세요. 그리고 주목해주세요, 33일간 동남아 여행'
흩뜨려져 있는 여러 개의 퍼즐 조각들은 각각의 그림을, 삶을 담고 있었다. 마치 이 순간을 위해 존재해왔듯, 그것들은 각자 자신의 자리를 찾아갔고 하나의 그림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어쩌면 이 여행은 전적으로 우리에게 맞춰져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힘들 때쯤 우리에게 찾아오는 응원과 도움의 손길들, 지루할 것 같을 때쯤 다가오는 즐겁고 흥미로운 일들. 그것은 우리의 여행이었다. 더 정확히는 20대 청년 그들 인생의 모형이었다.
이미 시작된 이야기
“지효야, 자? 할 말 있어.”
“뭔데? 이야기해.”
“우리 이제 곧 전역인데, 배낭여행 갈래?”
“어디로?”
“아니 그건 나중에 정해. 일단 갈 거야, 말 거야?”
“가자. 그럼 벼리, 말 바꾸기 없다?”
“응. 그리고 규환이도 물어보자.”
나와 어떤 인연도 없는 타국에 직접 내 발로 뛰어드는 경험은 처음이다. 벼리도 처음이다. 서로에게 여행의 이야기가 오고 갔던 순간 우리는 두려움이 살금살금 다가오는 것을 눈치채기 시작했다. 그렇다. 우리는 눈치가 빨랐다. 그래서 하나하나 계획을 세워갔다. 그리고 모든 시도와 처음의 경험이 두려움이란 이름으로 다가오기까지 설렘 한 움큼, 가끔은 용기 한 움큼을 쥐며 우리는 그것을 당당히 마주했다. 지칠 줄 모르고 각자의 위치에서 열심히 재정을 채워갔고 한 달이 조금 넘는 준비기간을 거쳐 동남아(베트남, 라오스, 태국, 캄보디아) 여행을 위한 책 한 권이 만들어졌다. 지효와 벼리, 그들의 여행은 이렇게 시작됐다.
자, 이제 출발. 두근두근
우리의 스물넷 이야기의 첫 장, 나와 벼리는 새로운 이야기를 적어 내려 가기 시작했다. 그들은 각자의 느낌으로 누구보다 신중히, 그리고 천천히 그들이 보는 세상을 한 글자, 한 글자 적어내려 갔다. 그다음, 말로 뱉어냈다. 서로가 들을 수 있게.
광주, 울산에서 각자 출발하여 서울에서의 조우. 우리의 외관을 보면 누가 봐도 어린아이처럼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어느새 우리의 얼굴엔 치기 어린 표정들이 속속히 드러났다. 두근두근 설렜다. 누가 봐도 기쁜 것 마냥 그들의 어조는 격앙되어 있었고, 행동은 과장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서로의 여행을 위해 가장 자연스러운 태도였다. 우리의 마음은 스스로를 주체하지 못하고 이미 하늘이 내려다 보이는 비행기 창가에 앉아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첫 단추가 데구루루.. 떨어졌네
베트남 다낭 공항에 도착한 1.2일 새벽, 우린 그때야 한국에서 미리 준비해왔던 복수비자 날짜가 잘못 기입되어있는 사실을 알았다. 종이 쪼가리에 불과하게 된 비자로 인해 철저하게 여행을 준비했다고 생각했던 우리의 확신이 산산이 부서졌다. 그리고 다음날 동생 규환이도 베트남에 입국했다. 그리고 그도 우리처럼 그러했다. 그렇게 얼떨떨한 심경으로 바보가 된 것처럼 우리의 여행은 무비자로 시작됐다.
포기하지 않아, 우린 여행할 거야
동남아 커뮤니티 사이트, 하노이의 대한민국 영사관, 베트남에 거주하고 있는 한인들 모두에게서 돌아오는 대답은 “모르겠다, 도와줄 수 없다”로 일관되었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은 그림자로 드리워졌다. 걷는 길이 어두 껌껌하기만 했고, 해님은 도대체 얼굴을 들이밀지도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계속해서 길을 물었고 걸었다. 때론 가만히 서서 어둠이 걷히기만을 기다렸다. 우리가 어떻든 시간은 흘러갔다. 그리고 이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사람을 만나게 됐다.
베트남, 가지각색의 자연과 도시를 담은 무대
해발고도 1900m의 고산지대 사파, 세계에서 2번째로 큰 거대한 카르스트 동굴, 호수의 도시 하노이, 바다와 사막을 품은 무이네, 고대도시 호이안 등 남과 북으로 약 1800km의 거리까지 차이가 났던 베트남은 너무나 많은 풍경과 지역을 품고 있었다.
드넓고 아름다운, 거대한 자연은 우리가 활동하기에 충분한 무대였다. 이 무대에서 우리는 마치 감독이자, 주연이자, 조연이자, 스턴트맨이었다. 각본조차 우리 뜻대로 적어내려 갔다. 그렇게 오토바이에 몸을 맡기고, 바람이라도 된 듯 자연에 따라 이끌려 다녔다. 그리고 엔진 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쯤 시간은 멈춘 듯, 우리의 모든 시선이 자연에 빼앗겼다. 수없이 긴 시간 동안, 누군가 가장 아름답게 빚어놓은 듯한 자연의 경이로움에. 그 이상의 섭리에.
라오스, 관광을 벗고 여행을 입다
베트남 국경을 넘어 라오스 루앙프라방까지 넘어오기까지 버스만 26시간. 엉덩이가 사라진 듯했다. 하지만 동시에 라오스 꽝시 폭포에 대한 기대는 더욱 선명해져 갔다. 그리고 그 기대에 힘입어 당당히 자전거에 올라탔고 우리는 편도 30km에 계속되는 오르막, 뜨거운 햇볕과 맞섰다. 중간중간 라오스 인들의 웃음은 우리에게 목마름을 채워주듯 오아시스가 되어주었고 우리를 제외한 모든 관광객들은 트럭, 그리고 오토바이를 타고 바람처럼 스쳐 지나갔다. 지나가는 트럭을 잠깐 세워 자전거를 실을까, 마음이 흔들리곤 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페달을 밟고 있었다. 포기하지 않았다. 목적지에 3~4시간이 지나고서야 도착을 했고, 우리의 귀엔 어느새 폭포 소리가 서서히 맴돌고 있었다. 트럭에서 우리를 목격했던 한국인들과 외국인들이 우리를 보며 지르는 환호성과 함께. 그리고 펼쳐진 폭포, 우리는 그곳에 뛰어들기로 했다. 아 참고로, 난 맥주병이지만 말이다. 퐁당!
태국, 이별여행
“형들, 나 한국으로 돌아가려고.”
“진짜? 아니, 진짜로? 형들이 뭐 잘못한 거 있어? 이야기해봐. 왜 그러는데?”
어쩐지, 태국으로 오는 버스에서 표정이 안 좋더라. 나와 벼리는 동생이 편하게 따라오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었다. 따라만 다녔으니, 여행을 하는 느낌도 들지 않았고 끌려다니는 느낌뿐이었다고 한다. 여행 자체도 체력적으로 많은 부담이 되었었다. 무거운 배낭과 함께 하루에 10~15km 정도를 걸어 다녔고 버스만 약 6,000km 가까이 탔기 때문이다. 어쩌면 규환이는 ‘우리의 여행’에 속하지 않는다고 느꼈을 테다. 이야기를 듣고 그때서야 함께 여행해왔던 동행자에게 시선이 갔다. 하지만 어느새 찾아온 오만함은 ‘함께’라는 관계의 중요성보다 여행을 헤쳐가는데 필요한 대처에 시선을 돌리게 했고 그것은 어느새 ‘우리의 여행’보다 ‘나만의 여행’을 만들어갔다. 우리는 충분히 서로 이야기해야 했고 어쩌면 그것을 이끌어주는 각자의 역할이 필요했을지도 모르겠다.
규환이와 태국에서의 마지막 자전거 여행, 아유타야. 14세기 즈음 태국의 왕조가 있었던 곳.
“진짜, 거짓말 안치고 진짜 덥다.”
“우리 인생 샷 몇 장 찍고 공항으로 가자”
캄보디아, 낯섦과 익숙함 두 마음이 만나는 접점
여행의 막바지에 다다를 무렵, 우리의 발걸음은 어느새 뜨거운 태양 아래 캄보디아를 거닐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의 마음은 뜨겁지 않았다. 처음의 설렘, 두근거림은 어느새 우리의 여행이 일상처럼 느껴졌던 순간 멀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우리는 탄성을 잃어버린 고무처럼 축 늘어졌다. 우리의 목적지를 분명히 알고 있음에도 움직이기를 거부했다.
억지로 몸을 움직여야 했고 마침내 앙코르와트에 도착했다. 그때 펼쳐진 광경,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표정과 그들의 발걸음엔 설렘과 기대가 녹아있었다. 우리는 그것을 충분히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우리의 나태함은 정확히 그들의 생명력 있는 설렘을 마주했고 우리는 그것에 짓이겨졌다.
베트남, 라오스, 태국, 캄보디아 이렇게 네 조각의 여행. 그것은 또 수많은 조각들로 나누어져 있다. 가장 적절한 때에, 가장 적절한 곳에서 우리는 필요한 사람들을 만났고 필요한 정보들을 얻어 갔다. 우리가 계획했던, 그리고 걸어왔던 여행은 현실이 아닌 것만 같았다. 각각의 상황이 벌어진 이유를 이야기해주듯 모든 퍼즐 조각들은 하나의 그림을 향해 맞춰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모여 큰 그림, 우리의 여행을 만들어갔다. 그래, 이건 꿈인 거야. 누군가 꾸민 거야. 단 한번 흐리지 않았던 따사로운 햇살만이 비추는 날씨마저도 우리 편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