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 힘들다
나는 글쓰기를 좋아한다. 사실 굳이 말하자면 웹소설이 아니라도 글 쓰기 자체를 좋아하는 것 같다. 나의 글쓰기 기억은 초등학교 시절부터다. 초등학교 1학년 시절, 아무것도 모른 채 노트 여러권에 엉망진창으로 글을 썼던 기억이 있다.
인터넷에 글을 쓰기 시작한 건 초등학교 5학년 무렵이었고, 중학교 1학년 때부터는 노트북이 생기게 됐고 그때부터 쭉 인터넷에 글을 썼다. 만화 팬카페, 소위 말하는 인터넷 소설 등등 완결은 내지 못하지만 습작으로 썼던 소설들도 꽤 된다.
내 책상 옆에는 아직도 중학생 시절 열심히 손으로 썼던 설정집이 고스란히 보관되어 있다. A4용지로 40장 정도, 작은 책으로도 여러권있다. 언젠가 다시 이 스토리를 쓸 거라며 열심히 설정을 짰지만 안타깝게도 시간이 지난 지금 나는 그 시절의 내가 어떤 소설을 구상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회사 생활을 하지 않은 채 바로 웹소설 작가가 된 것도 '내가 글을 좋아한다.'라는 깨달았기 때문이다. 안정적인 직장에서의 취직과 불안정한 작가 생활, 둘 중 하나를 놓고 (어떻게 보면 인생에서 꽤 중요한 결정이 될지도 모르는) 고민했을 때 나 스스로에게 했던 질문이 있다.
일단 나는 성격상 뭘 잘 못 한다. 왜 그런 학창 시절에 그런 친구들 있지 않나, 같은 걸 배워도 센스나 감이 좋아서 빠르게 치고 나가는 친구들. 안타깝게도 나는 후자였다. 뭔가를 배우면 남들보다 많이 느리다. 그래서 오기가 강했다.
한 번 해서 안 되면 두 번 하면 되지, 세 번 하면 되지, 될 때까지 하면 되는 거 아닌가? 하고 만다. 내가 반드시 이건 한다. 하는 경향이 생겼다. 나 스스로와의 경쟁에서 만족하지 않으면 안 되는 성격이 되어 버렸다. 나는 회사를 다니면 분명히 내가 목표로 한 '나'와 경쟁을 할 게 자명했다.
회사라는 곳은 적당히, 대충 해서 다닐 수 있는 곳이 절대 아니다. 냉정한 사회고, 그 안에서 살아남으려면 당연히 나도 진지하게 임해야 한다. 즉, 회사 생활을 하면서 뭔가를 병행하는 건 나에겐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났다. 여기서 내린 질문은 간단했다.
Q. 나는 회사를 다니면서 글을 포기할 수 있을 것인가?
이게 나에 대한 질문이었다. 답은 바로 나왔다.
나는 글을 포기하지 못한다. 포기할 수가 없다.
얼마 되지 않은 짧은 인생을 돌아봤을 때, 학창 시절의 나는 글을 계속 썼지만 계속 열심히 쓴 건 아니었다. 내가 내 인생에서 가장 열심히 글을 썼던 시기는 아이러니하게도 고2와 고3시절이었다. 웃기게도 가장 살만했던 시절에는 글을 쓰지 않았다. 글이 생각나지 않았다.
나라는 인간은 힘들면 글을 찾는 사람이구나, 뭔가를 보고 느끼면 글부터 쓰고 싶어지는 사람이구나 싶었다. 그동안은 간간히 썼던 브런치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도 내가 정신적으로 많이 지쳐서 일 가능성이 있었다.
여행을 가서 뭔가를 느끼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게 글을 쓰고 싶다는 욕망이었다. 회사를 다닌다고 해서 그 욕망이 사라질 것 같지 않았다. 전업 작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남들은 회사를 다니고, 직장을 갈 때 나는 전업작가가 되었다.
좋아하는 일 하면서 돈 벌면 행복하지 않으세요?
반반이다. 나는 글 쓰는 걸 좋아하고, 글로 돈을 벌 수 있다는 걸 감사하게 여긴다. 하지만 가장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글은 지금 이렇게 편하게 쓰는, 아무런 돈도 되지 않고 수익도 창출되지 않은 글들이다. 돈이 되는 글들은 쓰기가 힘들다.
수익 창출을 하지 않으면 장점이 참 많다. 내가 쓰고 싶을 때 글을 써도 되고, 악플이 있으면 무시해도 되고,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뭐라고 하는 사람도 없다. 하지만 돈을 벌기 시작하는 순간부터는 모든 게 달라진다.
내가 글을 쓰기 싫어도 써야 하고, 악플도, 업계에 대한 이야기나 여러 가지 것들도, 다른 작가와의 관계도 무시 할 수 없게 된다. 거기에 나는 있지만 없는 존재가 된다.
유퀴즈에 나온 모델의 유튜브 영상을 봤다. (아마 워낙 유명한 영상이라 본 사람이 많을 거다.) 다른 내용은 모르겠고 딱 하나의 장면만 힘이 들 때면 계속해서 머릿속에 남는다.
내 몸은 썩어가는데 사람들은 내 몸이 아름답다고 말한다.
그런 패션계에 환멸을 느끼지만 그럼에도, 그것 조차 내가 사랑하기 때문에 이 일을 한다.
웹소설 작가에도 어두운 면이 왜 없겠는가? 가끔은 나 역시 글을 쓰면서도, 원고를 하면서도 이게 맞나 싶은 고민을 많이 한다. 작가라는 것에 가려져 있으나 작가의 글쓰기는 대부분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웹소설에 대해서만 말하려는 건 절대 아니다. 작가로 있으면서, 또 강사로 활동하면서 좋은 점은 정말 많고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면 결론은 똑같다. 작가로 돈을 버나, 회사에서 돈을 버나 다 똑같다. 가끔 PT선생님이랑 운동하면서 이야기하는데, 말하다 보면 그쪽도 별로 다르진 않다.
취미가 직업이 되면 정말 힘들다는 게 어떤 건지, 최근 들어서 정말 몸소 실감 중이다. 매일 같이 글 쓰기 싫다는 걸 경험하고 있다. 그런데 우습게도 글 쓰기 싫다며 다른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나는 마감으로 1만 자를 12시간 동안 썼다.
출근하기 싫다고 출근을 안 하는 직장인은 없다. 마찬가지로 글쓰기 싫다고 해서 글을 안 쓰는 작가는 없다. 취미라는 건 내가 하고 싶을 때 하고, 하기 싫을 때 하지 않는 것이 취미다. 하지만 직업이라는 건 '내가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일'이라는 뜻이다.
더 늦기 전에 다른 일을 알아볼까 하다가도, 힘듦을 참게 해 주는 건 정말 우연히 보았던 저 말 때문이다. 어차피 글 쓰기 싫어도 다시 글을 쓰게 될 테니까 그냥 이 힘듦 조차도 내가 글을 사랑해서라고 생각하며 버티고 있다.
작가의 단점, 혹은 '웹소설 작가 하지 마세요!'같은 걸로 글을 쓴다면 책 한 권을 쓸 수 있다. 하지만 굳이 그렇게 해야 할까? 단점이 없는 직업은 없다. 어떤 직업을 선택하든, 혹은 뭔가 좋아하는 것이 있어서 업으로 삼고 싶어도 마찬가지일 거다.
작가가 아니어도 좋다. 무언가를 도전한다면 단점보다는 장점을 보는 사람이면 좋겠다.
나의 경우에는 작가라는 직업이 가져다주는 돈보다는 그 외적인 것들에 가치를 많이 두고 있는 편이다. (노래를 들으면서 일할 수 있거나, 사람 스트레스가 상대적으로 덜 하다거나, 내 마음대로 일 할 수 있다거나 등)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그 가치가 돈 일 수도 있다.
돈이면 어떤가? 다른 정신적인 것이면 어떤가? 다만, 그것이 주는 가치가 단점을 상회할 정도라면 이 직업을 계속해도 좋다. 하지만 그 장점보다 단점이 크다면 한번쯤은 스스로를 되돌아볼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