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 어지럽고, 띵하고, 이상하다.
우리 아빠는 20여년간 동네 곳곳을 누비며 배달을 해온 배테랑 배달 기사님이다. 동시에 식당 사장님이기도 하다. 엄마는 주방을 보고, 아빠는 배달을 한다. 우리 가족 비지니스의 불문율이었다. 아빠는 옛날부터 타고난 공간지각능력과 비상한 머리로 지도를 한번 스윽 보면 원하는 주소를 척척 찾아갔다. 주택이 많아서 복잡한 동네 중앙에 가게가 떡하니 있었지만, 아빠는 두려워 하지 않았다. 어디든 배달을 시키면 바람처럼 달려가 바람처럼 돌아왔다. 24년간,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말이다.
그런데, 2024년 여름 즈음부터 아빠가 한번 배달을 나가면 전처럼 빠르게 돌아오질 않았다. 원래 5분이면 다녀올 거리도, 20분 30분간 감감무소식이다가 등장하곤 했다. 엄마는 어디를 들렀다 오는 거냐며 잔소리를 해댔고, 아빠는 입을 꾹 다물고 계셨다. 그런 일이 잊을 만 하면 한번씩 생기던 어느 날, 몹시 바쁜 시간대에 아빠가 또 30분 정도 돌아오지 않았다. 가지고 간 배달 음식은 1봉지. 한 군데에 갖다 주고만 오면 되는 거였고, 거리도 멀지 않았다. 엄마는 다음 주문이 있으니 답답한 마음에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아빠는 전화를 받자 마자 뚱딴지 같은 말을 했다. "집이 없다."고 말이다. 분개한 엄마는 "집이 없기는 왜 없어! 당신이 못 찾는 거겠지! 못 찾으면 돌아와! 기사님 불러서 보내게!"라고 소리를 왈칵 질렀더랬다. 아빠는 "왔는데 배달은 하고 가야지."하며 전화를 끊고도 돌아오지 않았다.
20분 정도 더 지난 뒤 아빠는 기어이 집을 못찾아 배달 음식을 도로 오토바이에 실은 채 가게로 돌아왔다. 음식을 꺼내 다시 데운 뒤 포장하고, 컴퓨터 앞에서 머리를 맞댄 엄마와 아빠는 로드뷰까지 봐가며 집의 생김새를 확인했다. 그러고 출발한 아빠는 목적지 근처에서 엄마와 전화를 해가면서 겨우겨우 집을 찾아내 음식을 전달할 수 있었다. 끝내고 보니 이 배달 하나에만 1시간 30분이 넘게 걸렸더란다. 그날의 손님은 배달이 너무 늦어서 굉장히 화가 나셨는데, 다행히도 엄마가 아는 분이라 큰 문제 없이 넘어갈 수 있었다. 웬만한 손님이라면 환불을 요청했을거다.
엄마는 처음에 아빠가 환갑고개를 넘어가려 그런가보다 했다. 엄마는 시장 아저씨들이 다 환갑을 기점으로 지병이 하나씩 생기거나, 갱년기 아줌마들처럼 얼굴이 벌개지고 성격도, 입맛도 바뀐다는 얘기를 종종 들으셨다고 했다. "우리 아저씨는 아침에 나왔는데, 팔이 안올라 가더란다! 그래서 자기가 남은 팔로 병원에 전화해서 구급차 타고 갔다이가!", "우리 아저씨는 얼굴이 벌개지고 화도 음청 냈다! 근데 한 일이년 그라고 나니까 돌아오드라.", "우리 아저씨는 병걸린 사람마냥 시꺼매지고 사람도 좀 우울해 하드만, 병원에서도 이상 없다 캐서, 머 가만 있는 수 밖에 더 있나. 요새는 좀 낫다.", "계산? 남자들은 원래 여자보다 머리가 빨리 굳드라! 나이들면 다 그렇지!" 이런 수많은 간증에, 엄마는 아빠를 가만히 놔두면 나아지겠지 싶었단다. 하지만 아빠는 그 뒤로 더 자주, 더 많이 배달을 해내지 못하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10년이 넘도록 새벽 6시에 출근하던 아빠는 불판을 청소하던, 바닥을 쓸던 뭐라도 새벽에 출근해 해놓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새벽 6시에 나온 것 치고는 일이 제대로 되어있지도 않고 하는둥 마는둥 집기들만 엉성히 나와 있다거나, 전날 밤에 "압력밥솥에 밥 할거니까 오늘은 밥 하지 마."라고 일러도 마음대로 밥을 안친다거나, "뼈 불순물 씻어야 하니까 물 조금만 잡아서 한소끔 끓이기만 해."라고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엄마가 출근해서 보니 씻지도 않은 사골로 육수 우리듯 물을 가마솥 한가득 잡아 끓이고 있는 둥,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이 일어났다.
엄마는 "다 사람이 정성이 없고, 일이 하기 싫고, 자기 컨디션에 신경을 안써서 그렇다."고 했다. 틀린말은 아니었다. 아빠는 밤 10시 11시에 퇴근하고 나면, 하루가 아쉬워 꼭 컴퓨터 앞에서 드라마를 한편 봐도 야식까지 먹어가며 1-2시까지 버티는 사람이었다. 늦은 밤, 엄청나게 시끄러운 이어폰을 끼고서 잠까지 쫓아가며 문화활동을 꼭 하겠다는 아빠를 이길 사람이 우리집에는 없었다. 새벽 3-4시쯤 정신이 들면 침대로 자러 가시곤 했는데, 새벽 6시 30분쯤 되면 꼭 눈이 떠지는 분이다 보니, 숙면을 취할 수 없었을터다.
엄마는 아빠더러 일찍일찍 자라고 했지만 아빠가 그 말을 들을 턱이 있을까. 여전히 의자에 앉아서 조는 아빠에게 우리는 차라리 출근시간을 늦추자고 했다. 아침에 나가서 할 일도 없다며 나갈 필요가 없음을 설득했다. 하지만 아빠는 마치 그러지 않으면 안되는 사람처럼, 알람시계를 꺼둬도 6시 30분쯤 득달같이 눈을 떠 가게로 향했다.
그리고, 2024년 겨울. 아빠는 백기를 들었다. 20년이 넘도록 배달을 다닌 동네가 너무 새롭고 이상해서 배달을 하기가 무서워졌다고 고백했다. 생전 수백번도 더 다녔을 동네인데 생전 처음 보는 동네처럼 느껴진다며 두려움을 호소했다. 엄마는 이 때, 아빠의 이상함이 스쳐지나가는 바람이 아님을 직감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