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을 이대로 받는게 맞아? 엄마, 아빠 치매 보험 있지?
이해가 잘 가지 않았다. 그래서 물었다.
"그럼, 우리 아빠가 치매라는 말씀이신거에요? 선생님은 그냥 뇌만 좀 줄었다고 하셨는데요..."
"네??"
간호사 선생님의 난처함이 수화기 너머로 느껴졌다.
"그... 하여튼, 치매가 아니면 치매 코드가 안나가요. 멀쩡한 사람이 치매약을 먹으면 안되잖아요? 선생님과 다시 한번 상담을 받아보시는게 나을 것 같은데요. 날짜를 잡아드릴까요?"
"...어... 네, 일단, 알겠습니다. 저희가 날짜 보고 다시 전화드릴게요."
"네."
전화를 끊었다. 멀쩡한 줄 알았던 아빠의 진단코드는 G30.9 <상세불명의 알츠하이머병에서의 치매>.
뇌 영양제보다 더 강력한 약을 먹기 위해서 치매 진단을 받은 것인지, 아빠가 진짜 치매라 이 진단이 나온 건지 혼란이 오기 시작했다.
엄마에게 이 이야기를 전했다. 그러자 엄마는
"어쩔 수 없지, 그래야 약을 먹을 수 있으면 먹어야지. 죽을 병 아닌게 어디야."라고 했다.
찬찬히 생각해보니 그 말이 맞았다.
상태가 점점 나빠지는 아빠를 이대로 방치할 순 없었다.
뇌출혈도, 종양도 아니다. 수술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해야한다면 치매 진단을 받아서라도 약을 먹는게 하나의 방법이 될 터였다.
순순히 납득한 나는, 아빠의 보험을 확인했다.
치매 진단을 받기까지 검사한 비용이 실비 청구가 될 지, 그리고 치매 관련 보험금이 얼마나 나올지는 모르지만 당시 아빠가 내던 한달 보험료라면 충분히 치료비를 커버하고도 남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보험설계사인 엄마의 30년지기 친구가 수시로 가게를 왔다갔다 하며 들어둔 보험이 꽤 많았다.
아빠 앞으로만 한달 150만 원이 보험료로 나갔다.
유니버셜 보험 월 50만 원 가량(이모의말로는 만기 때 적금처럼 원금을 돌려준다는 보험, 이모는 이걸 저축성이라고 팔았단다.)을 빼도 한달 100만원 가량이 나가는 셈이었으니, 어느정도 보장설계는 되어 있겠지 하고 보험을 확인했다.
그리고 나는 경악할 수 밖에 없었다.
이 상태라면 약을 안먹어서라도 진단을 물러야 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아니... 도대체 치매 특약은 한달 몇천원짜리 중증치매 하나 뿐이고, 100만원 중에 재가 보험도 하나 없으며, 심혈관 질환에 관련된, 아니 질병 담보가 거의 없고 상해 담보만 가득한 이게 보험이야?"
라는 비명이 쏟아졌다.
그렇다. 보험 이모는 종종 배달을 나가는 우리아빠의 목숨을 심히 걱정하여 상해 보험만 이빠이 들어 둔 것이었다.
나는 그 즉시 패닉이 왔다. 그 보험 이모는 평소 공작새처럼 자신의 유식함을 뽐내곤 했는데, 그래서 보험을 이따위로 들어두었을거란 상상조차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이거 이대로 괜찮은거 맞아? 아빠 보장되는 보험이 아무것도 없는데...?"
엄마는 "그럴리가 없다. 한달에 보험이 얼마나 나가는데."라고 하였으나...
다시 한번 확인해 봐도 아빠는 질병 담보액이 크지 않았다. 끽해야 다 천에서 이천만원이 전부고, 실비 보험도 일년에 질병 상해 통합 입원 3천만원에 외래 10만원이 전부였다. 1세대 실비였다.
엄마와 나는 얼굴이 벌개져 무슨 말도 하지 못했다.
그나마 정신을 차린 내가, 보험이모에게 전화로 따져묻자, 한다는 말은 그랬다.
"너네 아빠가 치매 가족력이 없어서, 그렇게 넣어둔 것 같은데? 검토해보고 연락줄게."
그리고 몇시간 뒤 연락이 왔다.
"미안하지만 실비도 못받겠는데? 1세대인데 이때는 치매를 보장한다는 약관이 없다. 치매도 정신병으로 분류되어서 못받을거다." 라고 말이다.
그렇다. 한달에 보험료 150만 원을 내고도 보장을 못받는 사례. (자동차 보험 제외)
우리집이 된 것이다.
이제 치매 진단을 받았으니, 새로운 보험을 드는 것은 더 어려울 것이고 갱신되어 값비싸진 보험을 해지하거나 재설계 하기도 어렵다는 생각에 눈앞이 아득해졌다.
부모님은 매일같이 "너네에게 짐이 되지 않을거라 보험 정도는 잘 넣고 있다."고 했는데, 이게 어찌된 일이란 말인가.
나는 네이버에 <잘못된 진단 정정> 을 검색했다.
"아빠는 진짜 치매가 아니라, 그냥 약을 먹기 위해서 그 진단을 받았으니까. 그렇담 굳이 그 진단을 받지 않아도 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었던 것이다.
나는 당시 며칠동안이나 이 진단을 물러야 하는건지, 바꿔달라 해야하는건지, 앞으로 아빠의 보험은 어떻게 되는건지 등의 생각으로 잠을 잘 이루지 못했다.
왜냐하면, 치매는 결국 돈과의 싸움이 아니겠는가. 그날로부터 계속하여 치매카페를 열심히 탐색한 결과, 치매는 항암치료 등 돈잡아먹는 치료는 없지만(지금은 레캠비가 있다.) 결국 추후엔 요양비가 가산을 털어먹는다고 했다.
이런저런 정보를 취득하면 할수록 막막함이 물밀듯 밀려왔다.
보험을 이상하게 들어 둔 이모는 그 사실을 질릴만큼 잘 알았다. 그래서 우리집을 설설 피해 지나다녔다. 엄마는 그 이모가 어떻게 나오는지 지켜보자고 했다. 오래 알던 사이이니 만큼, 무슨 대책이라도 가져 오겠지 하는 한낱 신뢰가 있어 보였다.
하지만 나는 그 이모를 더 믿을 수가 없었다. 필자가 금융보험학과를 나와 손해사정사 공부까지 했건만, 150만원이나 되는 월 보험료의 위력을 믿고 가만히 내버려 둔 처참한 결과를 이미 보아 버렸으니 말이다.
(이 돈이면 충분히 웬만한 병은 보장 받고도 남을 돈이었으니.)
그래서 내 지인을 통해 보험 검수를 싹 했다.
그렇게 보니, 엄마의 또 다른 친구인 삼0화재 이모와 이 30년지기 이모가 번갈아가며 아주 보험을 잘 해먹은 사실이 드러났다. 비례보장밖에 안되는 걸로 같은 담보를 서로 또 들어놓질 않나, 입원수당 하루 2만원 받으려고 한달에 2만원을 내고 있질 않나.
나는 분석받은 자료를 토대로, 만류하는 엄마를 뒤로하고 이모에게 따졌다.
"엄마가 유니버셜 보험을 저축성이라고 알고 있던데, 이거 왜 이러신거냐."
"아빠가 질병 담보가 거의 없던데 이게 뭐냐."
"이모 한달에 보험만 백오십이 나가는데 이거 맞냐."
이모는 말을 잇지 못했다. 몇마디 변명을 했을 뿐이었다. 유니버셜은 저축성이랑 거의 비슷하다며, 만기때 전액을 돌려받는다니 어쩌느니 했지만, 약관을 검토해보니 10년 납부를 끝내고 6년을 더 넣어야 원금 회수가 가능했다. 그 이후로도 이자가 붙는다면 고작. 연 1%.
그러면서도 사업비며 운영비는 꼬박꼬박 가져가는 그런 보험이다.
도대체 누가 맨정신에 이런 보험을 든단 말인가.
엄마는 그때 아빠의 은퇴 퇴직금 적금 대신 이걸 넣으라는 이모의 말을 들었다고 한다.
적금은 깨서 쓰면 그만이지만, 이건 빼기 어려우니 이렇게 모으라고 말이다.
평소 보험을 그렇게 잘한다고 뽐내던 이모는 어디를 갔을까.
이래서 보험은 드는 것 보다 받는게 더 중요하다고 한 모양이지.
어쨌거나 개판이 된 보험 현황을 확인하고, 설계사 이모에게 전화를 걸어 따지고, 엄청나게 분노하다가, 부모님의 보험을 세밀히 확인하지 않은 나를 탓했다.
"적어도 병원 가기 전에 심혈관 보험 금액이랑, 치매 보험 정도는 확인할 걸..." 하고 말이다.
물론, 우리 가족도 아빠의 치매는 전혀 예상을 못했던 일이지만 말이다.
일이 터지고 나니 반성을 하게 된달까.
수일을 이 후회로 몸서리쳤지만, 달라지는게 없었다. 뭘 여기서 어떻게 해야하는걸까, 하는 허무함이 밀려들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냥 이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모든게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딱 한가지는 확실했기 때문이다.
우리 아빠는 치매 진단을 받을 정도로 상태가 나쁘고 심리적인 불안감이 있다.
고로 보험은 미리 잘 들어두었으면 좋았겠지만 이렇게 된 이상 금전적인 이득보다도, 아빠의 상태에 맞춰 모든 일이 진행되어야 한다.
는 것으로 말이다.
치매카페를 보니, 경도인지장애때와 치매초기때 몇달에서 몇년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치매환자의 남은 시간이 결정된다는 글들이 많이 보였기 때문이기도 했다. 우리는 더 망설일 여유를 가질 수 없는 입장이었다.
이미 빠르게 흘러간 아빠의 시간을 이제라도 붙잡기 위해서, 우리는 치매 진단을 받아들여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