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보는 선생님이 있대. 근데 좀 까칠하대.
우리는 진단을 받아들이기로 하고선, 더 큰 병원에 가보기로 했다.
어차피 치매가 맞고 계속해서 약을 먹고 병원을 다녀야 한다면 한방병원이 아니라 좀 더 정밀한 검사기기와 전문 의료진이 있는 곳을 가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별다른 수술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해서 근처에 규모가 좀 있는 종합병원으로 예약을 잡았다.
이 또한 주변 이모들이 치매와 뇌질환을 잘 본다고 소개해주신 선생님이었다.
인근 종합병원의 신경과 과장님이었다.
말을 예쁘게 하시는 편은 아니지만 진료는 잘 보신다는 말에 솔깃했다.
그러나 예약을 잡으려 하자, 환자가 많이 밀렸다며 예약이 불가능했다. 대신 당일 내원하면 몇시간을 기다려도 초진은 볼 수 있다고 했다.
그 날은 마침 남동생은 분당에 공부를 하러 떠나 있었고, 나도 며칠간 집을 잠시 나와 있던 상황이었다.
장사를 하던 부모님은 가게를 아예 접고 갈 수가 없어서, 놀랍게도 엄마가 나와의 전화를 끊고 그 보험 이모에게 전화를 걸었단다.
"니가 가서 진료 대기 해달라."
"알았다."
이모는 만사를 제쳐두고 와서 아빠 진료를 접수하고 기다렸다.
두시간쯤 기다렸을까, 아빠의 순서가 다 되어 간다며 오라고 해서 부모님은 병원엘 갔다.
그날의 선생님은 차가웠다고 한다. 아빠가 먹는 약 설명도 듣는 둥 마는 둥, 앞선 병원의 결과도 듣는 둥 마는둥.
그러고서는 한마디 물었단다.
"그 병원 더 다니시지 왜 저한테 오셨어요?"
사람 입을 턱 들어막는 말이었다. 원래 말주변이 없던 아빠와, 미안함 때문인지 유난히 선생님 앞에서 알은척 떠들던 이모는 선생님의 기에 눌려 말을 잇지 못하고 멍해졌다고 한다.
엄마는 재빨리 선생님께 부탁했다.
"선생님이 치매를 잘 보신다고 해서요. 저희가 처음에는 치매인줄도 모르고 그 병원을 갔고, 남편 아버지가 중풍이라 그거 예상하고 간건데... 치매라고 하니까 치매 잘 잘보신다는 선생님께 온 겁니다. 저희 거기서 검사만 하고 진단만 받았지, 약을 먹지도 않았어요. 병원을 좀 더 알아보려고, 아직 아무것도 안했습니다 선생님."
이러자 선생님의 표정이 조금 누그러졌다고 한다. 왜일까? 이유는 모르겠다.
선생님들만의 생태계가 있는 모양이지.
선생님은 그길로 직접 나서서 병원 투어를 잠시 시켜줬다고 한다. 연령이 높은 치매 환자, 그리고 40대 치매 환자가 다같이 모여 인지훈련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고, 나이가 많지 않아도 이러이러해서 저러저렇게 케어가 가능하다고 설명을 쭉 하셨다나.
그리고 진료실로 돌아와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솔직히 검사를 전부 다시하는건 금전적으로 너무 부담이 되실테고, 앞에 병원에서 했던 검사 결과지를 다 가지고 오세요. 부족하면 저희가 더 검사 하고요. 그거 보고 일단 마저 말씀드리겠습니다. 약은 일단 드시지 말고 계세요." 라고 말이다.
그렇게 그날 부모님은 집에 잘 돌아 오셨다. 엄마는 이모가 그날 병원에 따라와서 정말 많이 설쳤다고 말했다. 나는 그게 고맙기도 했지만, 자신이 해야할 일보다도 그냥 나서는걸 좋아하는 사람 같아서 이모에 대한 마음이 썩 돌아오진 않았다.
그리고 나는 원래 갔던 병원에 들러 서류를 다 뗐다. 아빠를 두고 가면, 이런저런 동의서가 필요했지만 당사자가 가면 훨씬 편하니 미리 전화해서 준비해달라고 하고선 아빠와 함께 갔다.
잠시 후 우리는 거기서 했던 MMSE CDR, MRI, MRA, CT, 피검사 등의 내역과 씨디를 한아름 받아나왔다.
그리고 어느 덧 찾아온 종합병원 예약일.
이 날은 엄마, 아빠와 나도 함께 병원으로 향했다.
신경과 데스크에 자료를 미리 전달하고, 순서를 기다려 진료실로 들어갔다.
엄마와 아빠의 말로 굉장히 까칠하다던 그 선생님은, 생각보다 키가 작고, 생각보다 더 괴짜 과학자같은 첫인상을 주는 분이었다.
"흠... 보니까 뇌가 또래들보다 한 10년은 늙었네요."
"000환자분은 지금 뇌가요, 60이 아니라 70대인거에요? 아시겠어요?"
"햐... 이거 치매 맞네."
선생님은 검사 결과를 주르륵 내리며 모든 자료를 다 보더니, 결국 치매가 맞다고 했다.
"치매가 별 게 아닙니다. 하던거 못하고, 알던거 까먹고, 그러면 치매지. 어렵게 생각하지 마세요, 보호자분."
"일단 먹는 약을 줘 볼게요. 그 앞에 병원에서 받았던 약은 싹 잊으시고요. 지금 드리는 약 저녁에 드시면 됩니다. 자기 전에 드세요."
"약이 환자에게 맞는지 봐야되니까, 일주일 분만 드려 볼게요. 일주일 먹어보고, 괜찮으면 이주일 먹고, 또 괜찮으면 한달먹고. 그러면 되겠죠?"
"치매 약은, 치매를 치료하는 약은 세상에 아직 없습니다. 근데 뇌에 신경물질을 전달하는 효소가 있는데, 그게 일반 사람들은 그 효소가 너무 많이 남아돌아서 뇌에서 버려요. 근데 치매 환자는 무슨 이유에서던지 간에 뇌기능이 점점 떨어지는 거에요. 이런 사람들은 신경물질이 많으면 많을수록 뇌 기능이 조금은 유지가 돼요. 그래서, 치매약은 일단 그 신경물질을 전달하는 효소를 못 버리게 하는 원리에요. 일단 시중에 치매약은 다 똑같아요."
"그러면 신경물질 전달이 약 먹기 전보다는 쪼끔 더 잘 될테니까, 약 먹기 전보다는 훨씬 나아질거에요? 아시겠죠?"
"근데 약이 능사가 아니에요. 일단 약을 먹으면 훨씬 나아지긴 할건데, 사람에 따라서 결국 신경물질이 제대로 분비가 안되는 순간이 분명히 올거에요. 그러면 약을 먹어도요, 어느 순간에 점점 계단식으로 떨어질거에요. 근데 그러면 내가 말을 할거에요. 언제쯤 훅 꺾이실 거라고. 그러면 그때는 그런가보다 하시면 되요? 아시겠죠?"
선생님은 하고 싶은 말과 주의사항을 두두두두 쏟아냈다. 얼마나 많은 환자들에게 이 이야기를 하셨을까?
어떤 환자들은 이 선생님의 배려없는 화법에 질려 다른 병원으로 떠나기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데 우리는 이 가감없는 직구가 오히려 배려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우리는 까칠이 선생님의 강의를 듣다가, 일주일치 처방전을 받아서 진료실 밖으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