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가 또래보다 조금 줄긴 했는데... 치매 약이라도 드셔보시겠어요?
엄마는 그 길로 중풍을 잘 본다는 병원을 수소문했다. 이유를 몇가지 꼽아보자면 할아버지가 중풍으로 일찍이 돌아가셨기 때문이 첫번째고, 적어도 우리가 아는 선에서 아빠에게 치매 가족력은 없었기 때문이 둘째고, 치매와 연관짓기에는 아빠가 아직 젊다고 생각한게 마지막 이유였다.
무엇보다 치매를 의심하지 못했던 나름의 근거가 한가지 더 있었는데, 2024년으로부터 2년쯤 전의 어느 여름날. 유달리 어지럽다던 아빠의 손을 잡고 엄마는 근처 종합병원으로 향했다. 아빠의 뇌 MRI와 CT를 찍으러 간 것이다. 평소라면 ‘올해도 배달하다가 여름 더위를 먹어 어지러운 것이려니’ 했겠지만, 그당시 뇌검사까지 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주변 어른 중 한 분의 이야기다. 그 분은 어느날부터인가 아침에 출근해 할 일을 잊고 멍하니 서있다거나, 잘 하던 일도 처음 하는 것 처럼 서투르게 했으며 종종 소름이 끼칠 정도로 직전에 한 일도 천연덕스럽게 하지 않았다고 잡아뗐다고 한다.
하도 이상해서, 머리 MRI와 CT를 찍었더니 교모세포종이라는 암이 머리에 자리를 잡고 있었단다. 급히 서울에 가서 암을 떼내는 수술을 하셨지만 한동안 지방과 서울을 오가는 항암치료로 무척 고생하셨다. 엄마는 그 이야기를 듣고 경각심이 생겨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아빠의 머릿속을 한번 확인해두고자 병원을 찾았던 것이다.
그당시 우리는 아빠의 좋지 못한 생활습관과 식습관을 염려하며 혹시 모를 결과를 예측하면서도 아니길 바랐다. 그리고 결과는 의외였다. 종합병원 선생님께서는 아빠의 머리가 굉장히 깨끗하다고 박수를 쳤다. 혈관이 깨끗한걸 넘어서 어디 막힐 만한 데라던가, 이상하게 생긴 혈관이라던가 하는 것들이 전혀 없었으며 뇌의 모양도 너무너무 탱탱하고 건강하다고, 술담배 안하시는 분이라 그런가 아주 좋다고 말이다.
나는 아직도 코로나 끝물이던 그 여름날, 엄마와 아빠가 검사를 마치고 종합병원 근처의 공원에서 찍어보낸 그 푸르른 사진을 잊지 못한다. 마스크 아래로 환히 웃는 얼굴이 비치던 셀카 말이다. 어느 커다란 바위 위에 딱 붙어 걸터 앉아 함박웃음을 짓던 엄마와 아빠의 사진. 남동생과 나는 그 때 "둘이 사귀냐"며 엄마아빠를 놀렸다.
엄마는 화통하게 웃었다. 아빠는 배시시 웃었다. 그렇게 "머리에 무언가 시한폭탄이 들어 있으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은 사르르 풀리고 예쁜 사진이 남았다. 그래서 더더욱 치매는 예상조차 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저 어련히 나이를 먹어서 중풍의 기미가 서서히 나타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예상을 했을 뿐이다.
다시 2024년 겨울로 돌아와, 중풍을 잘 본다는 병원을 수소문한 결과는 인근 한방병원의 압승이었다. 중풍을 보는데는 그만한 곳이 없다고 할 정도라 입을 모았다. 중풍진료로 병원 건물도 크게 세웠다나 뭐라나. 그 건물을 다 통으로 쓴다고 했다.
우리는 곧바로 예약을 잡았다. 주변 이모들의 레이더망을 통해 얻은 꿀 정보, 풍을 잘 본다는 선생님을 콕 집어서 예약하자 그것도 일주일을 한참 넘게 기다려야 했다.
그리고 대망의 진료일. 아침 일찍부터 간 병원에는 노령의 환자들이 가득했다. 보호자마저도 내 또래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중년이 고령을 돌보고, 고령이 중년을 돌봤다. 개중에는 보험설계사나 보호자대리인 업무로 오신 분들도 보였다. 그분들도 최소 중년이었다.
그렇다 보니 우리는 노령환자의 틈 속에서 마치 외딴 섬처럼, 환자와 보호자가 아닌 것 처럼 엉거주춤 벽에 붙어 서서 차례를 기다려야 했다.
사람이 어찌나 많았던지 진료실 문을 아예 열어놓고 진료를 보는데, 그것도 모자라 출입문 안쪽에 다음 환자가 앉을 의자를 마련해 진료가 끊기는 일이 없도록 했다. 그것도 모자라 그 바깥에 바로 다음 환자를 미리 불러두어 이중 삼중으로 진료가 멈추는 일을 방지했다.
다들 차례를 기다리며 그 자리만 흘깃흘깃, 귀로는 누구 이름을 부르는지 쫑긋거리고 있으려니 ‘원무과 앞이 아니라 비좁은 진료실 앞에도 테레비를 하나 달아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엄마는 “이런 병원엔 노인 환자가 많아서 병원 진료시간 두시간쯤 전에 가야 우리 스케줄대로 일을 보고 올 수 있다"고 며칠 전부터 경고했다. 하지만 당일 아침이 되니 그게 그렇게 쉽던가. 나름대로 분주히 챙기고 출발했지만 아침잠이 없는 어르신들을 이기긴 무리였다. 예약 시간보다 훨씬 일찍 갔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배정된 대기시간은 한시간여즈음이었다. 가만히 기다리기엔 배도 고프고, 병원의 분위기도 영 적응이 되지 않아 근처에 열린 분식집을 찾아내 밥을 먹기로 했다.
어른들이 분식집에 가면 왜, 집에서 해먹기 어려운 돌솥비빔밥을 드시는게 국룰 아니겠는가. 엄마와 아빠는 다른 메뉴를 시켜 나누어 드시라는 말에도 꼭 짝꿍처럼 돌솥비빔밥을 2개 주문해 배를 든든하게 채웠다. 주변을 산책하기도 하고, 무인 옷가게에 들어가보기도 했다. 어쩌면 다난한 마음을 그렇게라도 가라앉히고 싶었던 것 같다.
병원을 나온 지 사십분을 조금 넘길 무렵 우리는 병원에 다시 돌아갔다. 다행히도 곧 우리 차례였다. 우리는 진료실 앞에서 또 엉거주춤 서있다가, 아빠의 이름이 호명되어 진료실 앞의 대기 의자에 앉았다가, 진료실 안쪽의 대기 의자에 앉았다가, 드디어 선생님 앞 의자에 앉을 수 있었다.
엄마는 선생님께 말을 쏟아냈다.
"남편이 20년동안 배달한 동네 길을 못 찾아요."
"계산을 못해요. 원래 계모임 총무도 하던 사람인데."
"일년쯤 전에 직접 바꾸고 온 핸드폰 전화번호를 못 외우고, 오년쯤 전에 이사한 집 주소도 못외워요."
"아버님이 중풍이었어요."
선생님은 엄마의 이야기를 듣고, 아빠에게도 컨디션이 어떠냐 물었다.
아빠는 잠깐의 정적 끝에, 얼굴을 벌겋게 물들이며 "뭐가 잘 안됩니다."라고 했다.
선생님께서는 두말없이 MRI와 CT 촬영, 그리고 인지검사 등을 해보자고 하셨다. 별 문제가 없으면 총 비용이 90만원 정도 나오겠지만 아까운 돈은 아닐 것이라 했다. 만일 이상이 있으면 최대 반값 이하로도 줄어들테지만 그런 일이 없는 게 제일 좋은 거라는 말을 덧붙였다.
우리는 곧바로 그 모든 검사를 하겠노라 대답했다. 진료실 밖으로 나와 날짜를 잡는데, 환자가 너무 많아서 MRI, CT, 피검사 등과 인지검사는 날짜를 따로 잡아야 했다.
엄마는 장사를 해야하니, 이제부터의 검사 일정은 내가 아빠와 동행하기로 결정했다. 일사천리였다.
며칠 뒤, MRI와 CT검사를 위해 병원을 다시 방문했다. 검사실 앞에선 이동식 침대에 누워 바짝 마른 어른들이 의료기사님들의 손길에 따라 들어가고 나오곤 했다. 입원병동도 같이 있는 큰 병원이란 걸 그때 새삼 느꼈다. 우리는 그 모습을 보며 별다른 말을 할 수 없었다. 한집에 살지만서도 조금씩 말라가는 입밖으로 몇마디 농담과 다 아는 근황 토크를 했을 뿐이다.
실내는 난방을 잘 해서 꽤 더웠다. 나는 아빠의 잠바를 받아들었다. 곧 아빠의 이름이 불렸다. 아빠는 탈의실에 가서 옷을 갈아입고 모든 검사를 끝낸 뒤 다시 돌아왔다. MRI와 CT촬영실 중간쯤 의료기사님들의 방 문이 열릴 때 마다 그 너머 모니터에 누군가의 뇌 사진이 보였는데 의료인이 아닌 내가 봐서 뭘 알진 못하면서도, 흘끔흘끔 우리 아빠의 뇌 사진인가 하는 심정으로 보았던 것 같다. ‘2년 전에 멀쩡했으니 뇌 자체는 별 이상 없겠지’하는 생각 정도를 하면서.
그렇게 조금 어색한 촬영 검사날이 지나고, 인지검사의 날이 되었다. 나는 그래도 두번이나 와 봤다고 꽤 능숙하게 운전해서 병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인지검사는 꽤 시간이 걸렸는데 우리는 그게 치매 검사인줄도 잘 몰랐다.
막간에 소개를 하자면, 우리가 당시 받은 MMSE와 CDR검사는 유명한 치매 검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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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MSE(Mini-Mental State Examination)
치매안심센터 등에서도 사용하는 치매 선별 검사이다. 간단하고 빨라서, 많은 곧에서 사용된다.
날짜와 위치를 묻거나, 단어를 따라하게 시키거나, 물건의 이름을 묻거나, 그림을 그리게 하는 검사 등이다.
시간과 장소 지남력, 즉각 기억, 주의와 계산, 지연 기억, 언어 기능, 시공간 구성력을 평가한다.
정상 : 24~30점
경도 인지장애 : 18~23점
중증 인지장애 : 0~17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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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DR(Clinical Dementia Rating)
치매 중증도를 평가하는 검사로, 환자의 일상생활 수행 능력을 평가한다. 환자 뿐만 아니라 보호자도 함께 면담한다.
기억력, 지남력, 판단력 및 문제 해결 능력, 사회적 활동, 가사 활동, 취미, 개인 위생 등을 평가할 수 있다.
정상 : 0점
경도인지장애 / 치매 의심 : 0.5점
경증 치매 : 1점
중등도 치매 : 2점
중증 치매 : 3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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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히 정리하자면 MMSE는 간단한 질문과 단답형 주관식 답변이 주요한 검사이고, CDR은 거의 서술형에 가까운 면담식이다. CDR의 경우 보호자 교차 면담으로 더 세밀하게 환자의 상태를 체크할 수 있다.
이러한 인지검사는 어쩔 수 없이 시간이 꽤 소요되는 검사들이었다. 약 40분 이상 걸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앞선 검사자들이 나올때까지 상담실 앞에 마련된 의자에서 잠시 기다리자, 아빠가 먼저 불려 들어갔다. 그로부터 20분쯤 뒤에 나도 호명되었다.
“000님 보호자분!”
“네”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MMSE 검사를 먼저 하고, CDR 검사 보호자 면담을 위해 나를 뒤이어 부른 듯 했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좁은 방 안에 또 다른 문이 있었는데 나는 상담 선생님 한분과 그 곳으로 들어가 앉았다.
분리된 공간을 만들어내려 얇은 가벽을 설치한건지 아빠가 질문에 대답하는 목소리가 조금씩 들려오곤 했는데 목소리가 크지 않지만 어느 질문에는 난처해 하는게 느껴졌다. 반대로 ‘이건 대답 못할 것 같은 질문이군.’ 싶었는데 의외로 곧잘 대답하는 것도 있었다.
나와 함께 안쪽 방으로 들어온 상담선생님께서는 이내 보호자 면담을 시작했다. 우선 가족 구성원이나, 아빠의 평소 상태, 성격, 취미, 평소 일상, 위생이나 약속, 친구관계 등을 물었다. 나는 특히 생활습관에서 할 말이 많았는데 늦게 주무시고, 이어폰을 시끄럽게 틀고 꾸벅꾸벅 조신다거나 하는 등 묻는 말에 착실히 대답했다.
이 중에서도 아주 기억에 남는 순간이 하나 있는데, 이건 꼭 말을 하고 싶었다.
"환자분께서 가족 구성원이 본인, 아내 000씨, 딸 000씨, 아들 000씨로 구성되어 있다고 하셨는데요. 아들 이름을 떠올리시는데에 시간이 좀 걸리셨어요."
상담선생님의 그 말을 듣자, 나는 이유를 단박에 알 수 있었다. 아빠의 아들. 그러니까 내 남동생은 그때 당시 경기도에 코딩 공부를 하러 가 있었다. 집을 떠난지 한 4개월쯤 됐으니, '아들이 있는건 당연히 알지만 이름을 잠깐 까먹으실 만 한가?' 싶어서 그 사실을 상담선생님께 말씀드렸고,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리고 이어진 질문이 나와 엄마에게 그날의 킥이었다.
"그리고... 혹시 다른 가족분들이 더 있으신가요?" 라는 질문.
나는 그 순간 머리를 한대 맞은 것 처럼 멍해졌다. '다른 가족분이라는게 무슨 말이지? 우리한테 다른 가족이 더 있나? 할머니? 우리는 개도 안키우는데?'
그런데 상담 선생님의 표정과 난처한 뉘앙스로 봐서는 그 의도로 질문을 한 것이 아니었음이 분명했다. 그러자 ‘아빠가 잊어버린, 다른 가족이 있냐는 질문이구나.'하는 생각에 순식간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문득, 아주 잠깐 슬퍼졌다.
'우리 아빠 아직 젊은데, 조금 이상해도 멀쩡한데.'
나는 단호하게 "다른 가족은 더 없습니다."하고 대답했다. 그리곤 그날 아빠를 가게로 데려다 주면서 엄마에게 일러바치듯 이 이야기를 고했다.
조금 아픈 이야기일지도 모른단 생각에 꽤 분위기를 잡고 슬며시 말했지만 의외로 엄마는 그 얘기를 듣자마자 가게가 떠나가라 크게 웃었다.
“깔깔깔깔깔! 다른! 가족이! 또! 있냐고!! 깔깔깔깔깔! 어이, 000씨, 당신이 지금 이런 질문 들어서 될 때야?" 하고 아빠를 놀리며 말이다. 아빠는 입을 웅 다물고 자신은 대답을 잘 했노라 아주 작게 항변했다. 하지만 엄마의 웃음은 멈출 줄 몰랐다.
그리고 이어진 보호자 면담은 꽤 디테일하게 진행되었는데 평소 식습관이나 생활환경이 어떤지, 이상증세는 어땠는지를 상황과 시간까지 꼼꼼하게 물어보았다. 이를테면 "아침 6시에 출근하시고 10시에 퇴근하신다."가 끝이 아니라 최근 출퇴근 시 잘 일어나지 못하시진 않았는지, 혹은 기분이 나빠보이거나 좋아 보이진 않았는지, 이외에도 근래 변화 두드러지는 변화가 없었는지 등을 세세히 물었다.
그래서 나는 ’보호자 면담을 갈 때에는 꼭 환자와 가까이에서 함께 지내는 사람이 가야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내가 대답하기 어려운 건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묻기도 했다.
우습게도, 나는 그 순간에 선생님께서 든 평가 종이에 아빠의 상태가 나쁘게 기록되는게 싫었다. 아까 그 질문(다른 가족 없으시냐)을 들을 만큼 우리아빠의 상태가 나쁘지 않다는 것을 주장하고 싶었기 때문일까.
물론 선생님께서는 있는 사실을 그대로 기록하셨을거다. 그런데 아빠가 뭔가 잘 못하고, 엉성하고, 잊어버렸다고 해서 그 모든 일이 맨 이유 없이 일어난 것처럼 보이는건 끔찍하게 느껴졌다.
"아빠가 늦게 주무시는 건 맞지만, 하루가 아까우셔서 그랬던 것 같다."
"아빠는 원래도 이런이런 일이 있을 정도로 거기에는 무던하신 분이긴 했다."
"도로명주소로 바뀐데다가 주택이 많은 동네라 옛날처럼 집을 찾기 어려우시긴 했을거다."
등의 첨언을 꼭 덧붙이게 되었다. 왜 우리끼리는 뭐라고 해도 남이 그렇게 생각하거나 말하면 싫은 것 말이다. 말을 하다 보니 조금 변론하듯 다다다 아주 조금 언성이 높아지기도 했는데 가벽이 제 기능을 다 못한지라, 아마 아빠도 조금 들었을 것 같았다. 민망해서 들으셨냐고 묻진 못했으나 어쩐지 병원에서 나올 때 조금 흐뭇해 보이시는 것 같았는데... 내 착각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인지검사를 마치고, 우리는 결과를 듣기 위해 또 다른날 병원에 가야 했다. 그날도 한참을 기다려 진료실 안으로 들어가니 선생님의 표정이 살짝 난처해 보였다.
선생님은 우리가 볼 수 있게 셋팅된 큰 모니터에 아빠의 뇌검사 사진을 띄웠다. 우선 혈관이 보이는 CT사진부터 보았는데 내 눈에도 아빠의 혈관은 아주 막힘없이 깨끗했다. 선생님은 "중풍의 흔적도 없다."고 했다.
그리고 뒤이어 뜬 MRI 사진을 함께 보며, 선생님은 말했다.
"뇌가, 또래보다 좀 수축해 있습니다. 또래들보다 뇌가 늙은 거에요."라고. 선생님께서는 아주 담백하고, 별다른 문제가 없는 것 처럼 결과를 전했다.
나는 단박에 안심했다. 그냥 아빠가 좀 지쳤고, 엄마의 말마따나 '아빠가 환갑고개 넘으시려니 그렇구나' 싶었다.
별 일이 아니었단 생각에 안도한 나는 “아빠가 평소 잘 안주무시고 잘 안드신다“고 말하며 선생님께 ”잘 먹고 잘 자야한다고 말씀 좀 해달라“ 했는데, 그때 선생님의 표정이 아주 오묘하셨다. 아닌 듯 하지만 난처해 하시는 그 표정이란.
그런데 그건 아빠도 마찬가지였다. “그냥 뇌만 조금 줄었을 뿐이지, 아무 병이 없다”는 이야기에 날아갈 듯 기뻐한 나와는 달리, 아빠는 오히려 표정이 아주 나빠졌었다. 알고보니, 본인의 상태가 이상한걸 스스로 느끼는데 아무 문제가 없다는 말이 더 무서웠다고 한다.
아빠는 망부석처럼 선생님께 무슨 말도 못하고 그 자리를 뜨지도 못했다. 아빠의 의도를 알아차린 나는 선생님께 그럼 약이라도 있느냐고 물었다.
“근데 아빠가 힘들어 하시고, 일이 잘 안되기도 하구요. 약은 없을까요?”
그럼 선생님은 뇌영양제라는걸 먹어보겠느냐고 물었다.
“뇌 영양제를 처방해드릴게요.”
하지만 아빠는 이미 뇌 영양제를 먹고 있었다.
2년 전 종합병원에서 이상이 없다는 뇌 검사 결과를 받았음에도 본인의 상태가 영 좋아지지 않는다고 느끼셨는지, 그 후 주변 내과 병원에서 홍보하던 뇌 영양제를 처방받아 복용중이었던 것이다.
선생님께 그 이야기를 하며 다른 약이라면 먹어보겠다고 했지만, 선생님은 "처방받아 먹는 뇌 영양제라면 어차피 같은 약일거라 소용이 없겠다.“고 잠시 고민했다.
선생님께서는 잠시 컴퓨터를 보며 뜸을 들이시더니 그러면 다른 약을 먹어 보겠냐고, "치매 약이고, 괜찮겠느냐"고 물었다.
아빠는 약이 있다는 말에 반색했다. 그거라도 먹어보겠다고 해서 우리는 그 약 처방전을 받아서 나왔다.
그때 처방받은 약은 도네페질 5mg.
치매 코드가 나와야지만 처방되는 치매약이었다.
우리는 그때 이 사실을 잘 몰랐다.
검사 결과를 모두 듣고, 처방전을 받아나오며 어쩐지 조금 편해 보이는 아빠에게 나는 물었다. "아빠 그래도 아무 이상 없다니까 다행이지?"라고, 아빠는 "다행이지, 좋지."라며 웃었다.
우리는 그때 처방전과 함께 무슨 서류를 받았는데, 아빠는 함께 받은 편지 봉투에 접은 서류를 넣으려 다섯번쯤 시도했지만 넣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그걸 굳이 대신하겠다 빼앗아 들지 않았다. "아빠가 손이 굳어 그런가."하고 차를 빼러 갔을 뿐이었다.
아빠는 그냥 또래들보다 뇌가 조금 줄었을뿐, 아무 이상 없댔으니까. 그리고 차를 탈 때 쯤, 아빠는 서류를 예쁘게 봉투에 넣는데 성공해 있었다.
그리고 나는 가게에 돌아와 아빠의 처방전을 살폈다.
거기에 나온 진단명, [상세불명의 알츠하이머].
나는 그걸 보며 '왜 우리아빠가 치매 진단을 받은거지? 그냥 뇌만 줄었다고 했는데?'란 생각이 들어, 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병원에서는 "치매 약을 처방받으려면 당연히 치매 코드가 있어야 해요. 치매가 아니면 그 약이 안나가요. 처방을 못드리죠."라고 말했고, 나는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 이 이야기는 저희가 겪은 일을 진솔히 담았습니다. 저희와 같은 실수나 마음고생을 반복하시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여러 상황을 되도록 그대로 표현하고자 하였으니 비난이나 억측은 자제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