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닿은 GV
평소 친분이 있던 한 작가님이 독립영화 GV(관객과의 대화) 참여를 권유했다. 그것은 요 며칠 우리가 나누었던 대화의 결에 닿아 있었다. 독서 모임 운영 방식, 진행자의 역할, 말의 흐름을 잡는 법에 관한 고민들. 잘 진행되고 있는 사례를 보면 도움이 될 거라는 작가님의 따뜻한 배려였다. 마침 두 번째 영화의 사회자가 그분이 잘 아는 분이라 한번 지켜보면 좋겠다고 했다.
일정 때문에 잠시 망설였지만 작가님의 순수한 취지가 고마웠다. 무엇보다 한때 영화의 전당 인디플러스를 일부러 찾아가던 기억이 떠올랐다. 거창한 '배움'의 의도 없이 그저 오랜만에 독립영화를 보고 싶다는 마음이 조용히 피어올랐을 뿐이었다.
행사는 온라인 줌(Zoom)으로 진행되었다. 화면 앞에 앉는 것만으로 충분히 참여할 수 있었다. 독립영화 GV도 이제 이렇게 자연스럽게 온라인에서 이어지는구나 하는 작은 변화를 감지했다. 첫 번째 영화는 GV부터 두 번째 영화는 작품과 GV 모두를 온전히 보았다. 두 시간 남짓의 시간 동안 나는 내가 예상하지 못했던 것들을 얻었다. 감독과 사회자의 문답을 지켜보면서 질문 하나가 장면을 어떻게 다시 살아나게 하는지 깨달았다. 사회자는 작품의 결을 크게 흔들지 않으면서도 감독의 의도를 가장 잘 드러내는 지점을 정확히 짚어 질문했다.
질문을 듣는 순간 떠오르는 장면들, 감독의 답변을 통해 다시 겹쳐지는 의미들, 그리고 다른 관객들의 질문에서 이어지는 생각들까지 모든 흐름이 내 안에서 확장되었다. 질문할 때의 표정과 말투, 상대를 배려하는 적당한 거리감, 작품을 충분히 고민한 태도 등 사회자의 모습은 과하지 않은데 오래 남는 깊은 여운이 있었다.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기에 시나리오가 어떤 마음으로 구성되었는지 어떤 의도가 장면 속에 숨어 있는지 유심히 보게 된다. 이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참여한 자리조차 앞으로의 내 작업에 큰 자양분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GV에 참여하는 내내, 거창한 의도 없이도 얻게 된 소중한 깨달음을 대변하는 문장이 자연스럽게 마음속에 떠올랐다.
물러나서 조용하게 구하면
배울 수 있는 스승은 많다.
사람은 가는 곳마다 보는 것마다
모두 스승으로서 배울 것이 많은 법이다.
— 맹자.
나는 어떤 것을 배워야겠다는 의도 없이 이 자리에 앉았다. 그러나 미처 스승이라 부르지 않았던 것들이 배움의 이름으로 하나씩 드러남을 느꼈다. 평소 만나는 작가님들, 가족, 낯선 이, 책 한 권, 실패, 기쁨, 스쳐 지나간 문장, 그리고 오늘처럼 우연히 열린 작은 자리까지—이 모든 것이 조용히 나를 가르치고 있었다.
현대 사회는 '정답을 가진 사람'에게만 귀 기울이기 쉽다. 오늘의 시간은 그 반대편을 보여주었다. 눈에 잘 드러나는 성공이나 명성보다 매일 마주치는 사소한 순간 속에 더 깊은 배움이 숨어 있다. 실패나 고통, 반복되는 일상 또한 성찰의 기회가 될 수 있다. 공식적인 교육이나 자격이 전부가 아니며 심지어 배우겠다는 결심 없이 참여한 사소한 경험 속에서도 겸손한 마음만 있다면 배움이 가능하다. 오늘의 GV는 그 단순한 진리를 다시 조용히 상기시켜 주었다. 화면을 끈 뒤에도 필사 문장은 한동안 마음에서 저물지 않았다.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얻게 된 소중한 깨달음을 따라서 나는 우연히 열린 이 자리에서 걷고 또 걸었다.
나비의 끄적임에 머물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진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