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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증인 앞에서

가장 고독하고도 엄격한 연말 정산

by 꿈꾸는 나비

오래전 기록해 둔 글에 뒤늦은 '좋아요'가 달렸습니다. 그 덕분에 한 해를 마무리하는 지금 니체의 문장을 다시 펼쳐봅니다. '오직 자신만이 증인인 시련'에 대한 니체의 준엄한 메시지가 연말의 성찰과 완벽하게 맞닿아 있는 것 같습니다.


12화 에필로그. 흔들림 속에서도, 언제나 나답게



연말의 시계는 무심히 흘러간다. 바깥세상은 화려한 조명과 북적이는 약속으로 가득하지만, 해가 지고 방 안에 홀로 남겨지는 고요함 속에서는 나 자신과 마주해야 하는 시간이 찾아온다. 우리는 흔히 타인의 시선이 닿는 영역에서 삶의 성패를 가늠하곤 하지만 니체의 이 문장은 나를 가장 은밀하고 엄격한 법정, 일명 '양심 감사팀'의 자리로 조용히 불러 세운다.


한 해가 빠르게 감긴 필름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갈 때 나는 니체의 문장을 새로운 잣대로 삼아 회상한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나는 과연 정직하게 살았을까? 냉장고 문을 열 때도 '이걸 오늘 다 먹어도 되는가?'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했을까? 마감 기한 직전에 '혹시 이 핑계가 티끌만큼의 거짓말은 아닐까'라며 스스로에게 변명하지 않았는지 되짚어본다. 아, 특히 엘리베이터 문 닫힘 버튼을 누르며 눈빛으로 '나는 당신을 못 봤다'라고 외쳤던 그 순간까지도 말이다.


니체가 말하는 '시련'은 거창한 사건보다는 '나와 한 약속을 지키는가'라는 지극히 사적인 퀘스트로 바꿔본다. 새벽 3시 30분, 어둠 속에서 이불을 박차고 나와 어제보다 30분을 더 읽고 쓰는 일에 할애하겠다는 약속. 이것이야말로 '고독한 시련'이었다. 만약 지키지 못했다면 그날 하루는 왠지 모르게 나 자신과의 약속이 어긋나 관계가 서먹서먹해지는 벌칙이 뒤따랐다. 타인이 주는 보상이나 칭찬을 배제한 채 오직 내면의 기준에 따라 행동했던 그 모든 순간이 바로 나만의 법정에서 치러낸 시험이었던 것이다.


이전에는 자신감을 외부의 성취나 인정에서 찾으려 했고 그 자신감은 바람에 흔들리는 촛불처럼 쉽게 꺼지곤 했다. 하지만 이 '고독한 시련'을 이겨낸 자에게 주어지는 보상은 다르다. 그것은 스스로를 고상한 존재임을 깨닫는 내면의 확신, 즉 진정한 자존심이다. 이 자존심은 외부의 평가, 예를 들어 누군가 나를 보고 '저 사람 오늘 피곤해 보이네'라고 말해도 전혀 흔들리지 않는(사실 어제도 그 소리에 마음이 와르르 무너졌다마는) 뿌리 깊은 자신감으로 진화한다. 나는 나만의 증인 앞에서 '내면의 검증을 마친' 고귀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내년 이맘때 다시 이 글을 펼쳐보고 싶어진다. 그때 나는 부디 '작년의 맹세대로 살았다'라고 스스로에게 떳떳하게 말할 수 있기를. 다음번 연말 정산에서도 미소를 지을 수 있는, 이 가장 고독하고도 엄격한 심사를 통과하기 위해 나는 오늘부터 다시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



나비의 끄적임에 머물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진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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